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라샤 (문서 편집) ||<-3> '''{{{#ffffff {{{+1 가라샤[br]}}}ガラシャ}}}'''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02200275_0386048211466502507.jpg|width=100%]]}}} || ||<-3> {{{-1 가라샤 상상화}}} || || '''{{{#ffffff 본명}}}''' ||<-2>호소카와 가라샤[br](細川ガラシャ, Hosokawa Gracia) || ||<|2> '''{{{#ffffff 출생}}}''' ||<-2>[[1563년]] || ||<-2>에치젠국 [br] (現 [[후쿠이현]]) || ||<|2> '''{{{#ffffff 사망}}}''' ||<-2>[[1600년]] [[8월 25일]] (향년 37세) {{{-2 (음력 7월 17일)}}} || ||<-2>셋쓰국 [br] (現 [[오사카부]] [[오사카시]]) || ||<-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3px" || '''[[이름|{{{#ffffff 이름}}}]]''' ||<-2>타마(玉), 타마코(玉子) || || '''[[가몬(일본)|{{{#ffffff 가문}}}]]''' ||[[아케치]] || || '''{{{#ffffff 부모}}}''' ||아버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br] 어머니 츠마키 히로코(妻木煕子) || || '''{{{#ffffff 배우자}}}''' ||[[호소카와 타다오키]] {{{-2 (1578년 결혼)}}} || || '''{{{#ffffff 자녀}}}''' ||장녀 고초(御長) [br] 장남 호소카와 타다타카(細川忠隆) [br] 차남 호소카와 오키아키(細川興秋) [br] 차녀 타라(多羅) || || '''{{{#ffffff 종교}}}''' ||[[기독교]] [br] {{{-2 ([[가톨릭]] | (세레명: [[그라시아|가라샤, ガラシャ, 그라시아, Gracia]])}}} || || '''{{{#ffffff 묘소}}}''' ||코토인(高桐院)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0500075014964265346.jpg|width=100%]]}}} || || {{{-1 {{{#ffffff ▲ ''' 가라샤 동상[* 왼쪽에는 남편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동상이 있다.] '''}}}}}} || [목차] [clearfix] == 개요 == >'''散りぬべき 時知りてこそ 世の中の 花も花なれ 人も人なれ''' >'''져야 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 되고 사람도 사람이 된다.''' >---- >가라샤의 [[사세구]]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정실부인]]이자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게 한 [[아케치 미츠히데]]의 셋째 [[딸]]이다. == 생애 == 원래 성명은 [[아케치]] [[타마코]](明智玉子)이다. 후에 [[가톨릭]]에 귀의해 가라샤(ガラシャ)[* [[그라시아#s-1|Gratia]]의 당시 일본식 표기.]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현재와 달리 혼인 후에도 [[부인]]은 [[부부별성|원래 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크리스천]] [[부부동성|중에서는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있어 가라샤도 남편의 성을 따랐다.]] 그래서 아케치 타마코, 호소카와 가라샤로 구별 지어 부르기도 한다.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의 소문난 [[미녀]]'''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루이스 프로이스]]는 "천성적으로 매우 탐구심이 많고 또한 뛰어난 재원"이라고 평했고, 일본서교사(日本西教史)에는 "용모가 미려하고 비교할 수 없이 정신활발, 예민, 과감, 고상하고 재치는 탁월했다"라고 적혀있다. [[http://bible.sakura.ne.jp/kirishitan/gracia-2.htm|#]] 가라샤가 어린 시절, 미츠히데와 친한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미소녀]] 가라샤를 보고 너무 귀여워서 "아저씨한테 한 번 안길래?" 했더니 고개를 젓길래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안아주실 거면 손을 옷자락으로 덮고서 안아주세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이때 미츠히데가 구두로 약속했던 허혼이 나중에 진짜가 되어 후지타카의 아들]]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 시집가게 된다.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타도한 미츠히데가 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야마자키 전투|패해 죽자]], 가라샤는 주군을 배신한 [[반역자]]의 딸이 된다.[* 이 여파는 생각보다 굉장해서 아케치 미츠히데는 [[일본사]]의 대표적인 배신자, [[역적]]이 되었다. 후에 아케치 미츠히데와 똑같은 관직(휴가노카미)을 받게 된 자가 '''재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거절한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한때 [[다케다 신겐]]이 아들 [[다케다 카츠요리]]한테 작은 관직이라도 하나 얻어주려고 온갖 고생을 다했을 정도로 관직은 당시에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거절할 정도라면 얼마나 아케치 미츠히데에 대한 인식이 안좋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 집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신하였고, 그가 노부나가 사후 거병한 명분도 일단은 주군의 가문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호소카와]] 가문의 존속을 위해서는 가라샤와 연을 끊고 추방해야 된다는 의견이 가문 내에서 나왔으나 [[애처가|타다오키는 가라샤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가라샤를 유폐하는 정도에 그쳤다.[* 보통이라면 호소카와 가문이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호소카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음에 들었던 덕분에 히데요시의 허락을 맡고 가라샤를 데려온다.] 전국 시대에 금슬이 좋은 [[부부]]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것이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의 경우인데, 타다오키와 가라샤도 그에 뒤치지 않을 만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 타다오키는 [[첩|애첩]]을 두고 있었고(...), 돌아와 이를 접한 가랴샤는 남편과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유폐되어 있던 동안 불안하고 힘들던 가라샤는 [[시녀]]들의 영향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곧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 온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신매매]]'''를 하거나 [[선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간 [[다이묘]]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사찰을 멋대로 부수고 승려들을 내쫓는 등의 물의를 빚은 바]] 결국 가톨릭이 금지되고 선교사들과 상인들은 추방된다. 타다오키도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했는데 가라샤는 신자 중에서도 특히 모범이 될 만큼 가톨릭에 빠져 있었다. 때문에 타다오키는 가라샤의 [[시녀]]들의 코를 자르거나 [[유곽]]에 팔아치우기도 했다고 한다. [[얀데레|가라샤에 대한 타다오키의 애정은 병적인 집착이나 다름없었는데 그 집착을 보여주는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가라샤가 정원에 나와 [[대야]]에 손을 씻고 있는데 정원사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이를 본 타다오키는 매우 분노하며 뛰어가서 당장 정원사를 '''베어 죽였다.''' 가라샤는 타다오키의 집착에 이미 진절머리가 난 상태여서 대야에 피가 튀어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타다오키가 "'''넌 [[뱀]] 같은 여자다'''"라고 하자, "'''[[악마]]의 아내로는 뱀이 제격이겠지요.'''"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또한 잘못을 저지른 가신을 가라샤가 감싸자, 타다오키가 아예 그 가신을 죽여버린 일도 있었다. [[부창부수|이런 식으로 타다오키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 그리고 가라샤는 이렇게 죽은 이들의 머리를 모아 장식하였다고 한다.]](...) 결국 타다오키와 시아버지인 호소카와 후지타카까지 사과해서 이 머리들을 간신히 치웠다고 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타다오키가 동군에 가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시다 미츠나리]]는 병사를 보내 가라샤를 인질로 잡았다. 가라샤는 남편에게 해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자살을 하려 했는데, 자살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리 때문에 자살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가신]]인 오가사와라 히데키요에게 자신을 죽이고 주거에 불을 붙이라고 명했다. 시신은 [[이탈리아인]] 선교사가 수습해 염을 했다고 전해진다. 타다오키는 이 사건으로 격분했는데, 가라샤가 죽었음에도 아들인 타다타카의 [[정실]]은 살아서 도망치자 아들에게 이혼을 명했고 아들이 그것을 거부하자 아들을 폐적했다.[* 다만 아들의 폐적에 관해서는 며느리가 [[마에다 토시이에]]의 딸이었기에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한데, 정작 본인은 반역자 아케치의 딸을 평생 끼고 살았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 이 사건으로 [[이시다 미츠나리]]가 놀라서 인질 정책을 관뒀다. 또한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타다오키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자 누구보다도 먼저 동군에 가담했다. 가라샤의 시녀가 후에 증언한 바에 의하면, 가라샤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군대를 보내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녀가 다시 그녀에게 와보니 이미 그녀는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타다타카의 정실과 가라샤의 딸, 타다오키의 [[여동생]] 등은 도망치는데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만 남편에게 해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도망치지 않고 자살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가라샤를 죽인 오가사와라 히데키요의 두 자녀도 키리시탄이었고 [[예수회]] [[선교사]]들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히데키요가 예수회 선교사들의 지시로 도피하려는 그녀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또한 상술했듯이 부부 생활이 하도 피폐했기에 그냥 인질극을 계기로 평생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 자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존재한다. 사후 가라샤의 다른 아들들 중 타다토시는 [[오사카 전투]] 당시 아버지를 따라 [[도쿠가와 막부|도쿠가와]] [[막부]]군에 참가하고 오키아키는 [[도요토미]] [[콩가루 집안|군에 참가한다.]] == 여담 == *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가라샤의 사이에서 태어난 차녀 타라는 이나바 카즈미치의 정실이 되고, 그 자손은 [[닌코 덴노]]에 연결된다. 그래서 현재 [[일본 황실]]에는 가라샤와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피가 전해지고 있다. [[https://ja.wikipedia.org/wiki/%E7%B4%B0%E5%B7%9D%E5%BF%A0%E8%88%88#%E7%B3%BB%E8%AD%9C|#]] * 가라샤의 죽음을 안 [[사제]] 오르간티노는 여성 신도에게 명해서, 불탄 자리에서 가라샤의 뼈를 주워 사카이의 크리스찬 묘지에 매장했다. 남편 타다오키도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1주기를 겸해 치러진 기독교회장에 참석해 눈물로 지새웠다고 한다. 전국 시대의 대표적인 [[크리스찬]] 중 한 명으로 몇몇 성당에서는 그녀의 동상을 설치하고 있다. [[오사카]]에 있는 주교좌성당인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다카야마 우콘]] 석상과 함께 가라샤의 석상이 세워졌다. 가톨릭 신도의 조각가인 아베 마사요시의 제작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A959BB932454ABFB17C9C7A860355DB_L.jpg|width=100%]]}}}|| * [[교토부]] [[미야즈시]] 가톨릭 미야즈 교회에도 가라샤 동상이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10118114810.jpg|width=100%]]}}}|| * 그녀를 제신(祭神, 신사에 모신 신)으로 모신 [[신사(신토)|신사]]도 있다.~~[[고인드립]]~~ 호소카와 가문의 당주들을 모신 [[구마모토시]]에 이즈미 신사(出水神社)가 그러하다. 후에 다른 역대 [[번주]]와 가라샤도 합사되었다. * 교토부 [[나가오카]]쿄시에는 나가오카쿄 가라샤 축제가 있다. 그녀가 시집간 사실을 딴 축제로, 매년 11월 둘째주 일요일에 개최된다. 시주행렬, 혼례의식 등이 행해진다. * 2017년 설문조사한 '가장 좋아하는 전국 시대의 [[여성]] 랭킹'에서 3위를 차지했다. [[https://shuchi.php.co.jp/rekishikaido/detail/3748|#]][* 1위는 [[코다이인|네네]], 2위는 [[오이치]], 4위는 [[요도도노]], 5위는 [[이이 나오토라]].] == [[가라샤/기타 창작물|창작물의 가라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가라샤/기타 창작물)] [각주] [[분류:센고쿠 시대/인물]][[분류:일본사/여성]][[분류:1563년 출생]][[분류:1600년 사망]][[분류:후쿠이현 출신 인물]][[분류:아케치 가문]][[분류:인물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