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무 (문서 편집) [[분류:국악]][[분류:한국의 전통무용]] [include(틀:한국의 전통무용)] || [[파일:우용곡 재현 고구려무.jpg|width=600]] || || 역사만화가 [[우용곡]]이 재현한 고구려무 [[https://twitter.com/Woo_yong_gok/status/1387224255901835264/photo/1|출처]] || ||[youtube(A0FOw4EwohY)]|| || 2009년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 재현공연 속 고구려무 || == 개요 == 조선시대 후기 [[순조]] 때 효명세자의 명으로 제작한 향악정재 무용들 중 하나로, [[고구려]]와 관련한 시를 무용과 창사로 표현한 것이다. 해당 무용이 단절되어 전해지지 않았으나 [[2009년]]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 재현공연에서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 상세 == [[고구려]]라는 이름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고구려무'는 고구려 당시의 춤이 아니라 고구려와 관련한 옛 시[* 이 시를 언제, 누가 지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를 조선 후기에 창사로 부르면서 [[전성기|옛날]]을 회상하는 무용이다. 현재 이 무용을 누가 어떻게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불명이지만, 조선 후기 순조 때 [[효명세자]]로 인하여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당 무용의 배경이 되는 창사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2 [ruby(金花折風帽, ruby=금 화 절 풍 모)] }}} 금화 절풍모 쓰고 >{{{+2 [ruby(白馬小遲回, ruby=백 마 소 지 회)] }}} 백마로 더디 도네 >{{{+2 [ruby(翩翩舞廣袖, ruby=편 편 무 광 수)] }}} 번득이는 넓은 소매 >{{{+2 [ruby(似鳥海東來, ruby=사 조 해 동 래)] }}} 해동에 새가 온 듯하네 이 시는 순조 진작의궤(進爵儀軌)에 의하면 [[수나라]]의 [[양제(수)|양제]]가 지은 것, 또는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고구려 사람들의 춤을 보고 지은 작품이라고도 전해지는데, 고구려와 관련한 시인 것은 틀림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포|넓은 소매]]와 절풍모를 언급하였기 때문에 그 가치 또한 매우 높게 볼 수 있다. '고구려무'는 6명이 한 구성원이 되어서 추었던 무용이다. 조선 [[고종(대한제국)|고종]] 연간에 작성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라는 예술서에 적힌 '고구려무' 부분에서 보자면, 이 무용에서 춤추며 상대하는 절차는 조선시대 또다른 무용이었던 '엽무'와 동일하다고 적혀 있었다. 여기에 적힌 곡들 중 하나인 '엽무'의 경우 과거에 기록된 '첨수무(尖袖舞)'의 속칭이라고 한다. 이는 조선후기 문화적 르네상스를 열었던 [[영조]]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쳐져 부르게 지시한 것이다. 또한 [[효명세자]]가 만들었다고 추정되던 곡 치고는 무용이 상당히 신기한데, 그 이유는 무동과 여기가 칼을 들지 않고 오로지 맨손으로 추는 춤이기 때문이다. 이 무용의 주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향당교주'로, 이 곡은 다른 무용에서도 자주 쓰이던 곡이다. 순조무자진작의궤에 의하면, 고구려무를 출때 무동의 복식은 아래와 같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외에도 이 무용이 실려 있는 무보로는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궁중정재무도홀기'가 전해지고 있다. >무동은 금화첨립을 쓰고서 회색괘자와 남천익에 홍광대를 띠고, 오혜를 신는다. 여기는 화관을 쓰고, 초록단의와 황초단삼을 입고, 속에는 남색상, 겉에는 홍초상에 홍단금루수대를 띠고, 오채한삼을 매고, 초록혜를 신는다. >---- >순조무자진작의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