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백화 (문서 편집) [include(틀:역대 주 국왕)] || '''[[시호]]''' || - || || '''군주호''' || 공백(共伯) 또는 간왕(干王) || || '''[[성씨|성]]''' || [[희]](姬) || || '''[[성씨|씨]]''' || [[공]](共)(?) || || '''[[휘]]''' || 화(和) || || '''생몰 기간'''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841(?) ~ 기원전 828(?) || [목차] [clearfix] == 개요 == 공백(共伯) 또는 간왕(干王) 화(和)는 고대 [[중국]] [[주나라]] 시대의 제후로 공(共)나라[* 지금의 [[허난성]] 신샹시.]의 군주(백작)였다. 주나라의 [[공화]](共和)시기에 집권했다고 전해지며[* [[죽서기년]]의 기록.] 간왕(干王)을 칭했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도 그의 정체는 논의가 분분하다. == 문헌에 등장하는 공 화 == [[사기(역사책)|사기]](史記)에 의하면 기원전 841년 [[여왕(주)|주여왕]]의 폭정으로 국인(國人)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주여왕은 도망가고 태자(희정, 훗날의 [[선왕(주)|주선왕]])는 [[주나라#s-1.6|소주(小周)]]의 제후 소목공(召穆公)의 집으로 숨었다. 그 후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천자(天子)를 대신해 함께 정무(政務)를 관리하면서 제후들이 공동통치를 했다는 의미인 공화시기라 불렸다 한다. 그런데 [[죽서기년]](竹書紀年)에 의하면 공백 화가 국인들의 폭동을 주도하여 주여왕을 쫓아냈고 이후 제후들의 추대를 받아 천자를 대행하게 되어 그의 이름에서 공화시기가 유래했다고 한다. 4년 뒤 공백 화는 정권을 주선왕에게 넘기고 자신은 공산(共山)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공위시대#s-2|공화시기]] 참조. [[분류:동성 제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