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천시 (문서 편집) [include(틀:함경남도의 시군)] [include(틀:단천시의 행정구역)] ||<-4> {{{-2 {{{#000000,#ddd '''[[북한|[[파일:북한 국기.svg|height=15]]]] [[함경남도|{{{#000000,#ddd 함경남도}}}]]의 [[시(행정구역)|{{{#000000,#ddd 시}}}]] '''}}}}}}[br]{{{#!wiki style="margin: -10px -10px" || {{{#000000,#ddd '''{{{+1 단천시}}}'''[br]端川市[br]Tanchŏn City {{{-2 }}}}}} ||}}}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단천시, 높이=250px, 너비=100%)]}}} || ||<-2> {{{#fff '''시소재지'''}}} ||<-2> 미상 || ||<-2> {{{#fff '''지역'''}}} ||<-2> [[함경도|관북]] || ||<-2> {{{#fff '''면적'''}}} ||<-2> 2,170㎢[* [[경상북도]] [[안동시]]는 물론, 1,820.58㎢로 남한에서 가장 넓은 기초자치단체인 [[강원도]] [[홍천군]]보다도 넓다!] || ||<-2> {{{#fff '''광역행정구역'''}}} ||<-2> 39동 39리 || ||<-2> {{{#fff '''시간대'''}}} ||<-2> UTC+9 || ||<-2> {{{#fff '''인구'''}}} ||<-2> 345,875명 || ||<-2> {{{#fff '''인구밀도'''}}} ||<-2> 명/km² || ||<-2> {{{#fff '''시당 책임비서'''}}} || [[조선로동당|[[파일:wpk.jpg|width=25]]]] || 미상 || ||<-2> {{{#fff '''인민위원장'''}}} || [[조선로동당|[[파일:wpk.jpg|width=25]]]] || 미상 || {{{+2 端川市 / Tanchŏn City }}} [목차] [clearfix] == 개요 == [[함경남도]]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 역사 == 대한민국 역사에서 고대 시대에는 동[[옥저]]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 아래에 있었다. 6세기 신라 전성기에는 일시적으로 [[신라]]의 영토에 속하기도 했으며, 이는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 기록되어 있다. 남북국 시대에는 [[발해]]의 5부인 [[남경남해부]]의 일부였다. 발해 멸망 이후 [[여진족]] 치하에 있어 오림금촌(吳林金村)이라 불리다가 [[고려]]시대 여진정벌 때 윤관이 이곳에다 복주성(福州城)을 축성함으로써 한때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원나라]]의 영역으로 독로올(禿魯兀)이라 불리다가 공민왕대에 다시 수복하였다. 원래 이름이 '단주(端州)'였던 것을 [[조선]] 시대([[태종(조선)|태종]])에 들어와서 고려 시대에 지명으로 많이 사용했던 '주(州)'의 상당수를 '천(川)'이나 '산(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단천'이 되었다. 1930년에는 이 지역에서 농민운동이 일어났고, 1년 후에 해체되는 신간회가 이 농민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까지 북한 행정구역상 [[허천군]]의 남동쪽 절반까지 총 1읍 9면을 관할했었으며, 면적 2,386㎢였다. 광복 후 [[소련군정]]을 거쳐 북한의 통치하에 들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 수하면을 잘라서 새로 신설되는 허천군에 내어 주고, 광천면, 남두일면, 북두일면을 새로 신설되는 [[광천군]]에 넘겨주었다가 1974년 광천군을 다시 흡수하였다. 북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지역이 구 광천군 지역이다. == 지리 == [[함흥]] 이북 함남 해안지역이 다 그렇지만 북고남저형 지형이다. 최고점은 군 최북단으로 혜산군과 접하는 두류산(2,309m)이다. 군내를 흐르는 주요 하천은 북대천(北大川), 남대천, 복대천(福大川)이 있다. == 산업 == 대흥청년영웅광산(마그네사이트)과 룡양광산이 있는 전형적인 [[광산]] 도시다. 조선 시대 최대 은광이 있었던 곳으로, [[연은분리법]]이 이곳에서 개발되었다. [[마그네사이트]](매장량 37억 톤)나 [[코발트]], [[아연]](검덕광산), [[인회석]](동암광산)이 풍부하고 [[철광석]]도 채굴되는 등 지하자원이 많다. 특히 비철금속광물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 때문에 광물, 기계, 화학공업도 어느정도 발달해있다고 한다. 연대리에는 허천강수력발전소·제4발전소가 있는데, 최대출력 6만 5400㎾에 이른다. [[2017년]]에는 예상 발전용량 약 200만㎾에 달하는 거대 수력발전소인 [[단천발전소]]가 착공식을 가졌다. [[https://www.news1.kr/photos/details/?6078755|마그네사이트 공장 내부 근로자 모습]] [[2009년]]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도시기도 하다. [[2010년]] 초 하루에 각 인민반마다 1~2명씩 사망하는 등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2위는 북한의 "도매시장" 역할을 하던 청진시). [[http://www.goodfriends.or.kr/introduce/introduce5.html?sm=v&p_no=1&b_no=10508&page=8|#]] == 교통 == 교통은 [[평라선]]과 [[금골선]], [[단풍선]]이 지난다. [[금골선]]은 80km가 넘어가는데도 단천시 내부로만 다니며, 금골선 주변에는 광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탈북한 새터민들 중 철도업에 종사한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평라선의 견인기(기관차)는 대부분 단천역에서 교대한다고 한다. 과거 경부선 선구에서 동대구역 기관사 교대와 비슷한 개념인데, 평라선은 그 총연장만 경부선의 2배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일본의 도카이도 본선이나 도호쿠 본선처럼 견인기 교체가 필요한 노선 중 하나이다. 거리상 평양과 청진-나선지구의 중간쯤에 위치한 공업/광업도시이기 때문에 교체 및 정비보수에 이롭다는 장점이 있다.[* 조차장 자체는 함흥과 흥남 사이에도 함흥조차장역이 있다.] 단천역 구배에서 탈선사고가 일어나 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탈북민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사항. == 특징 == 1970년대의 [[삼척시|삼척군]]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천시는 현 [[태백시]] 일대와 동해안으로 시가지가 분리되어 있었던 옛 삼척군과 마찬가지로, 시가지가 한 군데에 몰려 있는것이 아니라 동해안, [[검덕지구]], 무학 등의 여러 군데에 분산되어있다. 그래서 인구는 34만명이나 됨에도 각각의 시가지의 크기는 읍의 크기와 비슷하다. 또한 둘다 광업도시라는 점도 있고 동해안이라는 점이 있다. [[2020년]]에 [[태풍]] '[[마이삭(2020년 태풍)|마이삭]]'이 덮쳐서 대규모 수해가 나자 [[김정은]]의 지시로 산악에 급하게 [[검덕지구|신도시]]를 세웠다. 하지만 상수도 공급도 제대로 안 되는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 [[이북5도위원회|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함경남도의 하위행정구역)] ||<-4> '''[[파일:함경남도(이북5도위원회) 휘장.svg|height=15]] [[함경남도|{{{#000000,#dddddd 함경남도}}}]]의 [[|{{{#000000,#dddddd 미수복 행정구역}}}]]'''[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파일:단천군 상징.png|height=65]]}}}||{{{#!wiki style="margin: -5px 0;" '''{{{+1 단천군}}}'''[br]端川郡[br]{{{-1 Dancheon County}}}}}} ||}}}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함경남도 단천, 너비=100%, 높이=100%)]}}} || ||<-2> '''군청 소재지''' ||<-2> 단천읍 서상리 || ||<-2> '''상위 행정구역''' ||<-2> [[함경남도]] || ||<-2> '''하위 행정구역''' ||<-2> 1[[읍]] 8[[면]] || ||<-2> '''면적''' ||<-2> 2,385km² || ||<-2> '''인구''' ||<-2> 160,130명[* 1944년 인구총조사] || ||<-2> '''인구밀도''' ||<-2> 67.14/㎢ || [[파일:단천군기.png|width=50%]] {{{+2 端川郡 / Dancheon County }}} || [[파일:단천군.jpg|width=100%]] || 광복 당시에도 인구 '''18만 명'''이라는 흠좀무스러운 인구를 자랑했던 곳으로, 당시 도내의 중심지였던 '''[[함흥시]]'''보다도 인구가 많았다! 읍내 인구만 따져도 동시기 '''[[수원시|수원읍]]''', '''[[포항시|포항읍]]''', '''[[김천시|김천읍]]'''[* 이 지역들이 '''1949년'''에 시로 승격된 지역들이라는 점을 보면, 정말 인구가 많은 것이다. 즉, 남북분단이 안 되고 대한민국령으로 남아있었으면 비슷한 시기에 '''단천읍을 단천시로 승격시켜''' 단천군과 분리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과 비슷한 '''4만 1천명'''의 인구를 자랑했던 곳이다.[* 의외의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함경남도에서 제일 인구가 많았던 도시는 다름아닌 '''[[흥남시]](14만!)'''였다(...) 그 다음이 원산시와 함흥시(각각 11만명). 함경도 전체 중에서는 [[청진시]]가 제일 컸는데, 당시 '''23만 명'''으로 무려 '''당시 [[인천광역시|인천시]], [[대구광역시|대구시]]'''와 맞먹던 인구였다. 이 두 지역이 각각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가 되었다는 점을 본다면(...)] 광복 당시 1읍 8면이 있었고, 군청은 단천읍 서상리에 있었다. * '''단천읍'''(端川邑) * 관할 리 : __서상(西上)__, 고령(古靈), 기평(碁坪), 내문(內門), 대성(大成), 대흥(大興), 덕천(德川), 독평(獨坪), 동상(東上), 동하(東下), 동현(東峴), 동호(東湖), 두언대(豆彦臺), 문호(文湖), 복천(福川), 봉양(鳳陽), 사동(社洞), 상서(上西), 상직절(上直節), 송동(松洞), 송평(松坪), 신창(新昌), 영산(靈山), 오몽(吾夢), 외문(外門), 용성(龍城), 용암(龍巖), 용현(龍峴), 은호(銀湖), 주남(州南), 증산(曾山), 하서(下西), 하직절(下直節) * 면적 50㎢. [[부군면 통폐합]] 당시 파도면(波道面)이었으나 1937년 단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43년 복귀면 두언대리와 오몽리, 1944년 복귀면 용암리를 편입했다. [[1943년]] 일제가 단천읍 두언대리와 오몽리 일원에 신도시를 건설하려 했으나 기초 공사가 진행되던 도중 광복이 되었다. 1945년 당시 인구 4만을 돌파한 상태였으며 만일 남북분단이 안 되었으면 최소 '''[[1949년]]'''에 단천부→단천시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읍 중 하나였다. [[평라선]]을 중심으로 [[오몽리역]]에서 우회철도인 [[두언선]]이 분기하며 [[두언역]](구 두언대역)이 있다. [[단천청년역|단천역]]에서 [[단풍선]]이 분기하며 [[동대역]]이 있다. * '''광천면'''(廣泉面) * 관할 리 : __용잠(龍岑)__, 덕산(德山), 덕천(德泉), 동암(東巖), 동원(東元), 영평(永坪), 운천(雲川), 와동(瓦洞), 용전(龍田), 장항(獐項), 창흥(昌興) *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광천군]] 소재지. * [[금골선]](함남선) 철도가 지나며 관내에 가응역(구 용령역), [[광천역(금골선)|광천역]](구 용잠역), 운천역, [[동덕역]], [[동암역]]이 있다. * '''남두일면'''(南斗日面) * 관할 리 : __보거(堡巨)__, 신평(新坪), 신풍(新豊), 신흥(新興), 운송(雲松), 이상(梨上), 이파(梨坡), 이하(梨下), 증산(甑山) * [[금골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수촌역]], 신평역, [[리파역]], [[신증산역]], 돈산역(구 운송역)이 있다. * '''복귀면'''(福貴面) * 관할 리 : __용포(龍浦)__, 기암(奇巖), 노동(路洞), 대로동(大蘆洞), 복상(福上), 송오(松塢), 복평(福坪), 용강(龍崗), 용연(龍淵), 장내(場內) * 단천군의 남부 해안지역으로 최남단이다. 작봉에 둘러싸여있는 형상이었다. 복대천을 경계로 단천읍, 신만면과 접하고 남쪽에 [[이원군]]이 있다. 주요 인프라는 단천읍에 의존했다.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기암역]], [[신단천역]](구 용강역)이 있다. * '''북두일면'''(北斗日面) * 관할 리 : __대신(大新)__, 남별(南別), 대흥(大興), 덕응(德應), 신덕(新德), 양천(陽川), 용양(龍陽), 용천(龍川), 학선(鶴仙) * 단천군의 북부 산악지역으로 현재의 검덕 지역이다. 용양리에서 [[76번 국도|국도 제 76호선]]과 [[73번 국도|국도 제 73호선]]이 만나 학선리에서 갈라진다. [[금골선]] 철도가 이곳에서 시종착하며 관내에 백금산역(구 용양역)[* 일제강점기에는 이 역이 시종착역이었으며 남한에서 발행된 지도에는 백금산역까지만 표기되어 있다. 나중에 북한 당국이 노선을 연장한 것으로 추정.], [[금골역]], 상금골역, 신덕역, 대신역, 대흥역, 무학역(시종착역, 양천리 부근)이 있다. * '''수하면'''(水下面) * 관할 리 : __고성(古城)__, 내촌(內村), 만덕(滿德), 상농(上農), 상운승(上雲承), 용원(龍源), 은흥(殷興), 응덕(鷹德), 인풍(仁豊), 중평(仲坪), 하농(下農), 하운승(下雲承), 황곡(黃谷) * 단천군의 서부 산악지역(1)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허천군]] 소재지. [[단풍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하운승역]], [[상농역]], [[중촌역(단풍선)|중촌역]], [[농촌역]], [[추동역]], [[허천역]](구 수하역), [[수의역]]이 있다. 장파역부터 시종착역인 홍군역까지는 풍산군 천남면 소재. 또한 허천역에서 산업철도인 [[만덕선]]이 분기하며 [[부동역]], [[만덕역(만덕선)|만덕역]]이 있다. * '''신만면'''(新滿面) * 관할 리 : __정동(貞洞)__, 개평(開坪), 석우(石隅), 신동(新洞), 안시동(安時洞), 용천(龍川) * 단천군의 서부 산악지역(2)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허천군]]의 남서부에 해당한다. * '''이중면'''(利中面) * 관할 리 : __답동(畓洞)__, 가산(嘉山), 가응(加應), 낙인(樂仁), 덕주(德州), 돌산(乭山), 동평(東坪), 두연(斗淵), 두우(斗牛), 문암(門巖), 신덕(新德), 영천(永川), 용산(龍山), 인산(仁山), 창동(昌洞), 천곡(泉谷), 하전(荷田), 화장(華藏) * 단천군의 남동부 해안지역으로 단천읍의 동북부 교외지역이다.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문암역]], [[여해진역]]이 있다. 여해진역에서 [[두언선]]과 [[금골선]]이 분기하며 금골선 [[천곡역]]과 [[답동역]]이 있다. * '''하다면'''(何多面) * 관할 리 : __연대(蓮臺)__, 가원(加元), 개장(開墻), 고읍(古邑), 달전(達田), 백자동(栢子洞), 송파(松坡), 쌍룡(雙龍), 쌍상(雙上), 양평(陽坪), 원동(元洞), 좌역(佐驛), 풍화(豊和) * 단천읍의 서쪽 교외지역으로 [[단풍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장덕역]]이 있다. == 출신인물 == [[성제]] [[이동휘]] [[분류:함경남도]][[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북한의 도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