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브라힘 라이시 (문서 편집) [include(틀:역대 이란 대통령)] ||<-2> '''{{{#fff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제13대 대통령[br]{{{+1 에브라힘 라이시}}}[br]ابراهیم رئیسی | Ebrahim Raisi}}}'''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에브라힘 라이시.jpg|width=100%]]}}} || || '''본명'''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솔사다티[br]سید ابراهیم رئیسالساداتی[br]Sayyid Ebrahim Raisolsadati || ||<|2> '''출생''' ||[[1960년]] [[12월 14일]] ([age(1960-12-14)]세) || ||[[팔라비 왕조|이란 제국]] 라자비호라산주 [[마슈하드]] || ||<|2> '''재임기간''' ||제13대 대통령|| ||[[2021년]] [[8월 3일]] ~ [[현직]]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배우자''' ||자밀레 알라몰호다[* 이슬람 성직자인 아마드 알라몰호다의 딸이다.] || || '''자녀''' ||2명 || || '''학력''' ||샤히드 모타하리 대학[br]콤 신학대학 || || '''종교''' ||[[이슬람교]]([[시아파]]) || || '''신체''' ||170cm || || '''소속 파벌''' ||[include(틀:원칙파)] || || '''소속 정당''' ||[[전투적 성직자회|{{{#!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9900; font-size: .9em" {{{#ffffff '''전투적 성직자회'''}}}}}}]]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란]]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제13대 [[이란 대통령]]이다. 본명은 '''에브라힘 라이솔사다티'''지만 흔히 '''에브라힘 라이시'''로 알려져 있다. 현재 [[알리 하메네이]] 사후 차기 [[라흐바르]]가 될 유력한 인물이다. == 생애 == [[마슈하드]]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5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맘 레자 사원]]의 [[이맘]]이자 마슈하드의 금요기도 이맘인 [[아흐마드 알라몰호다]]의 사위이기도 하다. === [[법조인]] 경력 === 1980년 [[카라지]]에서 [[검사(법조인)|검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하마단]]에서도 검사로 활동했다. 서로 무려 '''30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용케도 멀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무리 없이 활동했다. 이쯤 되면 [[체력]]은 꽤 대단한 듯. 1985년 수도 [[테헤란]]의 [[검찰청]] 차장으로 임명되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간 [[종합검사실]]장을 지내다가, 이후 [[대법원]] 차장으로 임명되어 10년 간 재직했다. 그 후에는 2년 간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며, 2019년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 까지 [[대법원장]]직을 맡고 있는 중이었으며. 2021년 8월 3일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물러났다. 법조계를 잠시 떠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공익신탁 [[아스탄 쿠드스 라자비]]의 관리인 및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 [[정치]] 경력 === 과거 [[이슬람공화당]] 소속이었으나, 이 당은 1987년 해산되었다. 현재는 [[전투적 성직자회]] 소속. 2006년 [[남호라산]] 주 전문가 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이 또한 2021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물러날 예정. 2017년 대선에 [[이슬람혁명군인민전선]] 후보로 출마했으나, 38.3%의 득표율로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 밀려 낙선했다. [[알리 하메네이]]가 내심 지지하던 후보였고,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이 라이시를 지지하며 사퇴했는데도 큰 표차로 낙선한 것. 다만 여론조사에서 일찌감치 로하니에게 뒤지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낙선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 후 [[2021년 이란 대통령 선거|2021년 대선]]에 다시 출마했다. 사실상 범여권 및 중도파[* 이란은 [[대한민국]]처럼 분명한 [[정당]]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냥 중도파와 보수파/원칙파로 구분하는 것이 특징. 이 때문에 대통령이 속한 정파가 실질적인 [[여당]]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대선 시점에서는 루하니 대통령이 중도파이므로, 중도파 후보가 사실상 여당 후보라고 볼 수 있는 셈.]가 일찌감치 [[압돌나세르 헴마티]] 전 [[이란 중앙은행|중앙은행]] 총재로 단일화한 반면, 보수파들은 여러 후보가 난립한 상황이라, 로하니의 낮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보수파의 분열로 중도파 헴마티가 당선되는 것이 아니냐는 보수파 일각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우려 자체를 할 필요가 없이 라이시가 약 62%에 가까운 득표율로 초압승했으며, 그나마 대항마로 출마한 [[모흐센 레자이]]도 라이시와 마찬가지로 보수파였는데다가, 11.79%로 크게 낙선했다. 무려 '''50%'''에 가까운 격차로 초압승한 셈이다. 정작 중도파 및 범여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헴마티는 10%도 안 되는 8.38%의 득표율로 광탈했다.[* 이를 대한민국에 대입할 경우, 10%도 득표하지 못 한 후보는 선거비용을 그대로 까먹는다(...).] 이로서 보수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후보 등록 과정에서 개혁파 후보들은 다 탈락시키는 등 이란 당국의 답정너 행태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1/05/513382/|투표 보이콧 운동]]까지 일어났다. 실제로 2017년 대선보다 투표율 자체가 크게 떨어져 (73.33% → 48.78%)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으며, 그나마도 표 중 14%인 417만표가 무효표였다.[* 직전 2017년 대선에서 무효표는 120만표] 반라이시 성향 유권자들은 투표를 보이콧하거나 무효표를 찍었으니 당연히 라이시가 초압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란의 대통령은 그럴싸한 타이틀과는 달리 별다른 실권이 없다. [[실권]]을 쥐고 있는 자는 바로 [[라흐바르|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다. 다만 라이시가 하메네이의 신임을 받는 것으로 보아서 큰 무리는 없을듯하다. 2023년 현재 하메네이가 80을 넘긴 고령이라 후계자를 물색해야 하는데, 어지간한 역대 대통령들이 재선까지 한 것으로 보아 라이시도 이변이 있지 않는 한 2025년 재선은 확실하며, 이 시점에서 하메네이는 86세가 된다. 이런 점으로 보아 라이시는 사실상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이미 내정되었다고 봐도 무관하지 않다. 사실 하메네이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 보수파들로부터 인기가 높다는 점에서 2019년 전후로 후계자 후보군에 오른 상황이었다. 호메이니 사후 대통령이었던 하메네이가 라흐바르를 계승한 점에서 하메네이 사후까지 라이시가 대통령이라면 하메네이처럼 라흐바르를 계승할 가능성은 있다. === 대통령 취임 후 === [[2021년]] [[8월 3일]], [[하산 로하니]]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국영기관 세타드(Setad)의 수장 모하마드 모크베르를 신임 부통령에 임명했다[[https://m.yna.co.kr/view/AKR20210809013200009?section=international/all|#]] [[2022년]] [[2월 21일]]에는 카타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과 회담을 갖고 JCPOA(이란 핵합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2022년 9월부터 2023년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2022년 이란 시위|반체제 시위]]로 인해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2023년 1월 17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속적인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이란과 러시아가 제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협력기구를 설립하고 함께 맞설 군대도 동원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301181644001|#]] == 논란 == === [[인권]] 탄압 === 테헤란 검찰청에서 활동하던 [[1988년]] 기소위원회 위원 4명 중 하나였는데, 이 위원회는 [[정치범]] 및 반대파 처형으로 [[서구권]] 언론 및 재야로부터 "살인위원회"라는 낙인이 찍힌 바 있다. 이 때 처형된 인사들은 대게 [[이란 인민전사기구|인민전사기구]] 및 [[이란 민중당|민중당]](Tudeh) 등 공산주의자들이었다. 호메이니, 하메네이 같은 [[이란 혁명]]을 일으켜 집권한 이들은 '''[[반공]] 성향'''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과 서방 진영을 반대하기 때문에 친소, 친공산주의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란 신정 정부는 단순 반미, 반서방이기만 할 뿐, 엄연히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애초에 공산주의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슬로건인데, 이슬람 시아파를 대놓고 국교로 삼고 있고 그걸 명분으로 집권한 게 현 신정 정부이므로 당연히 공산주의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제사면위원회]]의 지탄을 받았으며, [[미국]] [[해외자산통제국]]의 제재 대상에도 올랐다. 아무리 반미국가의 ~~페이크~~ 수장인 이란 대통령이라지만 대놓고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것은 처음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대통령 및 총통 일람)] [[분류:이란 대통령]][[분류:이란의 무슬림]][[분류:1960년 출생]][[분류:법조인 출신 정치인]][[분류:마슈하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