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구치 무네타카 (문서 편집) [[분류:LOUDNESS]][[분류:1958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나라시 출신 인물]][[분류:간암으로 죽은 인물]] ||<#dcdcdc> '''영원한 [[LOUDNESS]]'''의 멤버 || || '''히구치 무네타카''' || ||<-7><#dcdcdc> '''역대 [[LAZY]]'''의 리더 || || 밴드 활동 시작 || → || '''히구치 무네타카'''[br](1977년~1981년) || → || 밴드 공백기[br](1981년~1997년) || → || [[이노우에 슌지]][br](1997~)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UNETAKAHIGUCHI1.jpg]] '''樋口宗孝''' [[1958년]] [[12월 24일]] ~ [[2008년]] [[11월 30일]] [[일본]]의 [[드러머]] 겸 음악 [[프로듀서]]. [[나라현]] [[나라시]] 출신. [목차] == 생애 == 중학교 시절 [[레드 제플린]]의 [[존 본햄]]을 동경하여 드러머가 되기로 결심했고,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드럼에 입문했다. 이후 [[레인보우]]의 [[코지 파웰]], [[토토(밴드)|토토]]의 [[제프 포카로]], [[더 폴리스]]의 스튜어트 코플랜드, [[러쉬(밴드)|러쉬]]의 닐 피어트 등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프로 밴드에게서까지 가입 제의를 받았으나, 같은 학교 후배 [[타카사키 아키라]]의 권유로 [[LAZY]]에 가입했고 1977년에 메이저로 데뷔한다. 1981년, LAZY가 음악성 문제로 해체될 때 타가사키 아키라와 함께 [[LOUDNESS]]를 결성해 다시 데뷔했다. 멤버 중 최연장자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리더였다고 한다. 1994년, '현재의 음악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LOUDNESS를 탈퇴해 원 보컬인 [[니이하라 미노루]], EARTHSHAKER의 멤버였던 [[이시하라 신이치로]][* 니이하라와 이시하라 모두 EARTHSHAKER 출신이다.], 블리자드의 멤버인 테라사와 코이치의 4명으로 [[SLY]]라는 밴드를 구성해 1998년까지 활동하게 된다. 1998년에 SLY의 사실상 해체를 선언한 이후 LAZY를 재결성했고,[* 다만 실제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고, 재결성 이후 사실상 리더는 프로듀서 역할을 겸하던 이노우에 슌지가 맡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2001년에는 라우드니스에도 복귀해 왕성하게 활동한다. 2008년 3월에 간세포암 때문에 활동을 중지하고 재활치료를 해 왔으나, 2008년 11월 30일, 구토를 한 상태로 쓰러진 것을 가족들이 발견하고 오사카의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당일 오전 10시 44분에 향년 4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그의 사망 소식은 일본 전역에 방송되면서 큰 충격을 안겼다. 영결식은 고인의 생일인 12월 24일에 도쿄 아오야마 장의소에서 거행되었고, [[니이하라 미노루]], [[야마시타 마사요시]]를 비롯한 라우드니스의 멤버와 [[카게야마 히로노부]], [[이노우에 슌지]] 등 LAZY 멤버, 그의 옛 연인이며 유명 록 보컬리스트였던 하마다 마리, 그리고 [[이이지마 나오코]]등을 비롯한 저명인사 1,500명이 참가해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라우드니스와 LAZY의 기타리스트인 [[타카사키 아키라]]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아직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되자는 약속도 못 이뤘는데 먼저 가다니 너무하다"는 그의 추도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 그의 사망은 LAZY의 광팬이던 [[오쿠이 마사미]] 등 유명한 뮤지션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VOW WOW]]의 기타리스트 [[야마모토 쿄지]]나 44magnum, Ziggy의 드러머 미야와키 '죠' 사토시, [[호테이 토모야스]] 등이 각자의 사이트에 그의 사망에 대한 애도의 글을 올렸으며 [[B'z]]와 [[TUBE]]는 사망한 당일 멤버 전원이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왔을 정도. 2006년에 LAZY의 멤버이자 절친한 친구인 [[타나카 히로유키]]를 먼저 보냈던 [[카게야마 히로노부]]는, [[JAM Project]] 공연 준비 중에도 그의 묘지를 직접 찾아 고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인의 묘지는 [[오사카]]시가 내려다 보이는 산에 있다. [[http://www.airblanca.com/paseo/diary/archives/1206.html|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직접 다녀왔다.]] [[골프]]를 즐겼고, 실력은 프로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애용한 차는 [[BMW]]의 [[BMW M6|M6]]이었다고 한다. 엄연히 말해 라우드니스의 리더는 아니었지만, 흔히 대중들에게 그렇게 알려진데다가 아키라도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 음악적 평가 == '''생애 내내 전성기 드러머'''라는 평을 들었던 인물. 드럼에 관해 '''연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으며 '''히구치 드러밍''', '''라우드 드러밍'''이라 불리는 그만의 스타일을 정립할 수 있었다.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을 좋아해서 언제나 베이스 드럼을 하나만 세팅하는 원 페달 세팅으로 연주했고, 플로어 탐을 적절히 이용해 더블 베이스 페달과 유사한 뉘앙스를 내기도 했다. 그를 사사한 제자들 역시 명 드러머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이다. 일본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걸즈 록]] 밴드 '[[PRINCESS PRINCESS]]'의 토미타 쿄코, [[LUNA SEA]]의 신야, 전 SEX MACHINEGUNS의 히마와리, [[La'cryma Christi]]의 레빈~~, SIAM SHADE의 준지~~ [* 준지의 경우는 LUNA SEA의 신야의 제자다. 인디즈 시절에 루나씨의 로디도 했었다고.]등. == 기타 == 2009년 이후 고인을 추도하는 라이브가 열렸는데 첫 라이브부터 그 면면이 상당히 화려했으며, 고인이 홀로그램으로 나와 다른 드러머들과 드럼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LAZY]] 멤버인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이노우에 슌지]], [[타카사키 아키라]], 제자인 신야, 전 [[LOUDNESS]]의 베이시스트 타이지, LAZY의 팬 [[오쿠다 타미오]] 등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드럼 실력만큼이나 훌륭한 인품으로,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록계의 수많은 후배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음악 동료인 [[타카사키 아키라]]가 불 같은 성격에 다소 메탈 씬에 한정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데 비해, 히구치는 실력있으면 장르 불문하고 누구든 포용했었다. X JAPAN에서 넘어와서 기존 라우드니스 팬들에게 반감을 사던 [[TAIJI]]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격려한 장본인이었으며, 90년대 자파메탈 암흑기 시절 [[니이하라 미노루]]가 "이제 나 같은 가수는 설 곳이 없다"며 은퇴하려던 걸 간곡히 설득해 말리기도 했다. 그가 생전에 매우 싫어했던 사람은 굉장히 드문데 [[X JAPAN]]의 [[Yoshiki]]와 기타리스트 켈리 사이먼스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한 인성 하는 사람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만큼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고. [[LAZY]]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란티스]] 소속 아티스트들 중 두 번째로 연장자였다.[* [[하야미 쇼]]와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히구치의 생일이 4개월 늦다.] 첫번째는 당연히 [[미즈키 이치로]].[* 잼 프로젝트 한정 활동.] [youtube(_Nm6G5hTJzY)]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의 영결식 때의 So Lonely. == 어록 == * 음량이 안 나오면 빠르게 쳐 봐야 쓸 데 없다. * 심장이 울릴 것 같은 드럼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드러머는 아무나 해도 되는 게 돼 버린다. * "역시 히구치가 치면 이렇게 되는구나"로 끝나고 싶지 않다. * 기초를 연습할 때도 항상 그루브를 느끼며 연습했으면 한다. * 나는 드럼 장인이 아니라 록스타이고 싶다. * 드럼 튜닝에 익숙해지려면 레코딩을 경험할 것. 마이크를 통해서 나오는 자기 소리가 얼마나 촌스러운지 깨달아야 한다. * 심벌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로 드러머의 가치는 결정된다. * 연주에 집중하면서도 공연장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것. 그것이 좋은 라이브를 할 수 있는 드러머의 조건이다. * 중요시하는 건 '혼'. 분명히 소리에 남기 때문이다. * 현재 음악에서는, 같은 템포 안에서도 어떤 뉘앙스로 연주하느냐가 중요하다. * 무슨 소리야, 전곡을 쳐줘야지.(히구치 덕에 프로 세션맨이 될 수 있었던 [[마츠모토 타카히로]]가 [[B'z]] 결성 이전 제작한 자신의 첫 솔로앨범에서 한 곡만 드럼 연주를 부탁했을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1곡만이라면 난 하지 않아' '나 이외의 녀석이 들어가는 건 설령 리듬머신이라도 용서못해' '다른 사람과 같이 취급받는게 싫은거야' 라고 했다고도 한다.]) * 록의 부흥은 한두 명 잘 나간다고 될 게 아니야.(그 신념대로, 그는 수많은 후배들의 프로듀싱과 세션을 맡았다.) * 뮤지션은 칭찬만 들으면 현상 유지에만 머무르게 돼. 모두들 계속 노력해서 날 뛰어넘길 바라거든.(그는 후배 뮤지션들을 면전에서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다만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 저 녀석은 '멋진 드러밍'이 뭔지 잘 알고 있어.(그의 제자인, 라크리마 크리스티의 레빈을 두고 한 말.) == 참가 음반 목록 == 본인 저작 목록은 편의상 한글을 적고 뒤에 일본어 원문으로 기재한다. * 感じてKnight와 Reckless를 제외한 [[LAZY]]의 모든 음반. 전자는 고인이 생전에 녹음했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원곡은 1980년대 초에 발표된 感じてナイト.] * Ghetto Machine 3부작을 제외한, THE EVERLASTING까지의 [[LOUDNESS]]의 모든 음반, 단 THE EVERLASTING은 고인이 생전에 녹음했던 드럼 트랙을 사용하였다. === 본인 저작 === * Destruction~파괴개선록~{ディストラクション ~破壊凱旋録~}(1983년 12월 10일) * 히구치 무네타카 with dream castle~free world{樋口宗孝 with dream castle~free world} (1997년 2월 21일) * MUNETAKA HIGUCHI DRUM COLLECTION(2006년 8월 23일) === 프로듀싱 작품 === * 하마다 마리「LUNATIC DOLL」、「Romantic Night」 * Blizard - Show Me The Way(1988) * COZY POWELL FOREVER ~ TRIBUTE TO COZY POWELL(1998년 9월 19일) === 레코딩 참가 === * 아타카 미하루「IMAGE DOWN」(原曲:BOØWY) * [[ANIMETAL]] 싱글「アニメタルサマー」 * [[JAM Project]]「疾風になれ」、「CRAZY REVOLUTION」、「TORNADO」 * 하마다 마리「LUNATIC DOLL」、「Romantic Night」 * 마에다 노부테루([[TUBE]])「Feel Me」「SMASH」「GAMBLE」 * 마츠모토 타카히로([[B'z]])「Thousand Wave」、「Rock'n Roll Standard Club」 [각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