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8년 (문단 편집) == 개요 == || [youtube(MO03sFyVqk8)] || || KBS 영상실록 1988년편 || * [[https://www.youtube.com/watch?v=6dL9KepCgck&feature=emb_title|1988년 일어난 국내외 사건들 연대기 영상]]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240009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12-24&officeId=00009&pageNo=3&printNo=7022&publishType=00020|매일경제 선정 1988년 10대 뉴스]]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며 희망이 가득했던 [[198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연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정부수립 40년 이래 최대의 이벤트였던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2002년과 함께 한국의 상징적인 해이며 이를 계기로 '한강의 기적'은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림픽 당시 오후 수업이 있으면 올림픽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유치원]]의 수업도 오전 수업만 했다고 한다. 반면 철거민이나 노점상 등 도시빈민들은 올림픽 준비를 위한 '보여주기식' 강제철거와 이주로 한동안 고통을 받아 왔다. 4월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전년도인 1987년 6월 29일 이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새로 발족한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서 상왕 노릇을 하려 했지만, 후임 노태우의 '5공 색깔 지우기'로 형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 등 5공 비리의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됐고, 이에 따라 대국민 사과를 해서 민정당 명예총재 및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10월 유신]] 이후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 이어 [[광주학살]], [[일해재단]] 비리, 1980년 언론대학살의 진상 등을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 1988년 11월의 일해(日海) 청문회]가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재벌총수, 언론인, 정치가 등 유명 인사들이 출석하여 TV로 생중계되는 등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 국민적 화제를 낳았으며, 국회의원 중에서는 [[노무현]] 등이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1월, [[전두환]] 부부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외교 면에선 헝가리 상주대표부 설치를 시초로 공산권 수교를 골자로 한 '북방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사회운동 면에선 학생 운동권은 6.10/8.15 남북학생회담 개최투쟁에 주력했고, 이를 전후해 대학가에선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퍼져갔다. 올림픽 폐막 뒤에는 각 재야단체들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체포결사대'를 조직해 연희동이나 백담사까지 가서 가두시위를 전개했고, 시위가 벌어지는 곳은 언제나 최루탄 가스로 범벅이 됐다.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 [[서울랜드]]가 개장하였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COEX]]에 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가 완공되었다. tvN의 인기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는 가장 먼 시대이기도 하다. [[쌍팔년도]]라고 자주 지칭되는 해이다. 하지만 쌍팔년도라는 단어는 원래 서기 1988년이 아닌 '''[[단군기원]] 4288'''년인 [[1955년]]을 뜻하는 단어로, 1988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어휘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1300032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1-30&officeId=00032&pageNo=3&printNo=9335&publishType=00020|50년대를 쌍팔년도로 표현했던 70년대 신문기사]] 대표적으로 이 해에는 한자가 자주 사용된 사실상 마지막 해이며, 읍니다체가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주 사용된 마지막 해이다.[* 이듬해를 기점으로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 9가 모든 문자를 한글로 표기하면서 한자 사용의 마지막 해가 되었다.][* 읍니다체 또한 1988년 맞춤법 개정을 통해 이 해까지 존재했다가 1989년에 폐지되어 습니다체로 바뀌었다.][* 1981년생까지는 읍니다체가 통용되던 시절에 학교에 재학한지라 국민학교 수업시간때 선생님이 칠판에 읍니다라고 판서하던 시절을 알 것이다.] 이 해에는 유난히 농작물이 풍작을 맞이했고, 해외여행 연령도 종전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확장됐고, 부부동반 여행도 허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