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2년 (문단 편집) === [[제2연평해전]] 발발 === 월드컵 3, 4위전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6월 29일, 서해에 위치한 연평도 부근에서 북한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한 해군을 향해 포격 도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윤영하 대위, 황도현 중사, 조천형 중사, 서후원 중사가 현장에서 전사하였으며 박동혁 병장과 한상국 중사는 중태에 빠져 2~3개월간 치료를 받다가 전사하였다. 또한 18명의 장병들이 부상을 입고, 참수리 357호가 반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1999년 제1연평해전 이후 3년만의 대남 도발이었으며, 이 사건 때문에 당시 평화 무드로 가던 남북관계가 잠시 악화되었다. 월드컵 열기로 한창 달아오르던 시기에 벌어진 참극이었기에 시민들이 느끼는 충격과 안타까움은 컸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NSC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대응을 규탄하였고, 국방부 역시 북한의 도발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이틀 뒤인 7월 1일 국군수도병원에서 합동 영결식이 열렸고, 김 전 대통령은 월드컵 결승전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한 상태였기에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7월 23일 서해교전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불러 면담을 하며 위로했다. 일본 정부 역시 월드컵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비난성명을 냈고,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 정부 역시 연평해전을 북한의 도발행위로 못 박으며 깊은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2000년대에는 '서해교전' 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나, 이 후 99년 발생한 제1연평해전과 함께 '''제2연평해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현재까지 추도식도 이 이름으로 열고 있다. 2015년에는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