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5년 (문단 편집) === 다케시마의 날[* 유일하게 KBS에서는 일본의 의도에 말리지 않기 위해 뉴스상에서 '''독도의 날'''이라고 지칭하였다.], 결국 갈등으로 치달은 한일관계 === >지방의회에서 제정하는 일이라 (일본)정부는 이에 개입할 수가 없다. 지방자치에 따라 정부의 간섭이 불가하다. >- 호소다 관방장관 >이로서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한 안건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 >- 일본 시마네현 의회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하고 냉정하게 판단하길 바란다. >- [[고이즈미 준이치로]] >한국놈들은 다케시마에서 나가라! 다케시마는 우리 일본국의 고유영토이다! >- 시마네현 의회 앞에서 소란을 피웠던 일본 우익들 이 해에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강행하게 되자 어느 때보다도 한일관계가 갈등으로 치달았던 시기였다.[* 최대최악의 갈등으로 치달았던 시기는 2006년이라 볼 수 있다. 퇴임을 앞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다른 날도 아니고 무려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으며, 독도 영유권을 가지고 두 나라가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갔던 해이기 때문.] 일본 정부는 시마네현 지방의회 고유의 권한이라며 부인하였지만 사실상 시마네현의 입장을 지지하며 독도를 일본땅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편. 결국 이 같은 일본 [[시마네현]]의 강행에 대한민국 전체는 일본에 대한 경악과 분노로 치달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일본을 규탄하며 반일시위가 벌어졌고 시마네현과 자매결연을 맺은 [[경상북도]]는 이에 대한 항의로 시마네현과 단절선언을 하였으며 그 이외에 국내 지자체들도 일본 지자체와의 교류를 보류하거나 연기하였다. 정부 역시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경대응에 나섰으며 대통령 노무현은 '''대일 독트린'''을 발표하며 일본의 태도에 맞불을 놓았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독도를 신청만 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입도를 허용하겠다고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낭독 하에 발표하였다. 또, [[1990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생활을 하면서 교수직을 지낸 [[미즈노 슌페이]]가 TV프로그램에서는 친한파인척 행세를 하다가 일본 잡지와 신문 기사에서는 혐한파적인 발언을 해서 사람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미즈노 슌페이는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한국 TV프로그램에서 굉장히 많은 호감을 받은 인물이었다.]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신고만 하면 누구나 독도 입도를 할 수 있습니다. >- 유홍준 문화재청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