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저호황 (문단 편집) === 단군 이래 최대 호황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저 호황.png|width=100%]]}}}|| ||[[파일:3저호황_역대대통령물가상승률.jpg|width=100%]]|| ||[youtube(l8wMCieScIk)]|| [* [[1993년]]의 서울 [[중구(서울)|중구]] [[명동]] 거리] 저금리·저유가·저달러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나타나면서 한국경제는 1986-1988년까지 연평균 12.1% 성장하고 통계작성이 시작된 60년대 이후 처음으로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며 실업률도 4.0%에서 2.5%으로 떨어지는 호황을 누린다. 한국뿐만 아니라 태국, 대만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도 수출이 급증하여 이 기간에 연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였다.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하락(896원-->667원)에 힘입어 85년 GDP의 59.3%를 차지하여 '외채망국론'마저 불러일으켰던 외채가 1989년에는 GDP의 18.1% 수준으로 급락했다. 게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임금 상승이 이루어지면서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된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고,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자동차가 크게 보급되면서 '마이카 시대'가 열리는 등 내수시장도 폭발적으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다시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주식시장도 활황을 보여 종합주가지수가 85년의 130포인트에서 89년 3월의 1000포인트로 7배 넘게 상승하고 주식투자인구도 20배 넘게 늘어나는 대기록을 세웠다.[[https://www.google.com/amp/s/www.hankyung.com/finance/amp/2018110905421|출처]] [youtube(6O4lnFOOUGQ)] [[파일:1980년대~2000년대 지니계수변화.jpg|width=700]] 시장 개방 및 자유 무역에 따른 국내 농/축산업 수입 장벽 완화로 인해 농민들의 혈압이 오르기도 하였지만, 이 시절에는 고도성장으로 인해 국격이 크게 상승하였고, 나라 전체에 일자리가 넘쳐났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괜찮은 상업, 공업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에 큰 무리가 없었고 대학만 졸업하면 기업에서 모셔간다는게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이는 대학진학률이 현재보다 낮았던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후술할 기업의 과잉투자 때문이었다.] 열심히 하면 계층이 상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고 [[https://mnews.joins.com/article/3006167#|국민의 '''81.3%'''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했으며]][* 2018년 설문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 응답한 비율은 48%에 머물렀다.] [[지니 계수]] 또한 0.2 후반으로 북유럽 수준의 우수한 소득분배를 보였다. 물론 [[금융실명제]] 이전 시기라서 이 조사를 그대로 믿는것은 곤란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차이가 아주 큰 시대는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근로자들의 천국이었던 시절이었냐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우선 3저 호황 당시에는 노동시간이 평균 3,000시간에 육박했고,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조가입률이 일시적으로 늘어났지만 노조를 결성한 계층은 주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등 야당지지층이었던지라[* 물론 재야진보단체가 영향력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민중의 당]]이나 민중당 등 진보정당들이 총선에서 줄줄히 물을 먹었던 결과를 보면 노조를 결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지지성향은 대체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쪽에 쏠려있다고 보는것이 맞다.] 정부에서 노조가 주요 야당의 거점이 되어서 민정당의 조직력에 맞설까봐 노조에 대해 적대시하는 관행은 여전했고,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었고,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한들 언론사내 데스크진들이 갈아치워진것도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에 대해서 냉담한 논조는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크게 상승은 했지만 그에 걸맞추어서 근로환경이 개선된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라는것이다. 거기에다가 노태우 정부때는 고물가까지 겹쳐서 체감 임금상승률이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 때의 선거결과를 보면 민정당의 득표율이 경제성장률이 높았음에도 30%대에 그친 이유 중 하나가 이 당시의 유권자층이 젊은층들이 압도적인 다수였던데에다가, 이들 중 대다수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래도 노동시간을 감축하기 시작한것도 이때부터의 일로 1989년도부터 야3당 합의로 노동시간 축소법안이 통과된 이후로 그해부터 주 44시간 노동제도가 시행되었으며(다만 몇년간은 주 46시간으로 운용되었다.) 1990년대 전반기에 경제성장률이 일시적으로 6%로 떨어지자 1시간 더하기 운동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딱히 자발적인것도 아니라서 흐지부지 되었다. 1988년도에 노동시간이 2,900시간이었던것이 1990년대에는 2,500~2,600시간으로 줄어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