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886899678 (문단 편집) == 문제점 == 가장 큰 문제점은 한화 이글스가 근 5~10년 동안 신인 육성, 인프라 개선 등 기본적인 투자가 너무 미비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2009년 동안 다른 구단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행사했던 것과 달리 [[한화 이글스]]의 경우에는 1년에 '''겨우 4~6명의 선수만 뽑고 패스'''했을 정도로 근시안적으로 팀을 운용했고, 그러다 보니 그 때 뽑은 선수들이 성장해 전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할 현재 기본적인 전력조차도 없는 게 당연하다. 2005년~2007년 423 시절이 오히려 독(5886899678)이 된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나 선수가 없는지 '''[[SK 와이번스]]는 [[정근우]]의 보상선수를 지명하지 않고 그냥 보상금만 받았을 지경이었다.'''[* 본래 SK는 [[한승택]]을 지명하려고 했지만 [[KIA 타이거즈]]에서 [[이용규]]의 보상선수로 먼저 선택하는 바람에 별 수 없이 보상금으로 받았다고 한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669559|기사]]][* [[배영수]]를 보낸 [[삼성 라이온즈]] 역시 결과적으로는 보상금 300%를 받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상선수 [[정현석]]의 건강 문제로 인해 지명 취소를 시도헀다가 곤란해지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정현석을 돌려보내는 대신 배영수 연봉만큼의 돈을 더 받아간 것이라 경우가 약간 다르다.] [[정병희]], [[윤규진]], [[신주영(야구선수)|신주영]], [[안영명]] 등 싹수가 보였던 쓸만한 신인들은 [[김인식]] 시절 혹사로 빠르게 전력에서 사라졌다. 특히 [[김인식]] 감독 초기에 혹사당한 [[정병희]]는 이제는 제대로 기억하는 팬들조차 없는 게 현실이며, 결국 FA로 풀린 [[김민재(내야수)|김민재]]를 영입하면서 [[SK 와이번스]]에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한 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2010년]] 말 SK에서 방출당했다. 혹사 - 재활의 반복을 거친 [[윤규진]]은 팬들에게 [[새가슴]] 의혹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인식 시절부터 이어지던 문제점인 방출생이나 타 팀의 잉여자원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일은 여전해서[* 기아에서 [[김인철(야구인)|김인철]] 자유계약 영입, SK에서 [[조원우]] 트레이드 영입, [[윤재국]], [[최상덕]] 자유계약 영입 등.] [[정원석(야구선수)|정원석]], [[강동우]], [[장성호]], [[이대수]], [[박찬호]]를 데려와[* 사실 엄밀히 보면 [[강동우]]와 [[이대수]]는 방출생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강동우]]의 트레이드 상대인 [[신종길]]의 경우는 한화 시절에는 잉여자원에 불과했으며, [[이대수]]의 트레이드 상대인 [[조규수]], [[김창훈(1985)|김창훈]] 역시 먹튀 신인 1,2 정도의 선수였다.] 1~2년 정도 잘 써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게 신인 선수 육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런 선수들은 나이가 있었던 탓[* 이대수는 예외이다. 약간 노안이기에 이대수의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으나, 트레이드로 한화에 입단할 당시 갓 30줄에 접어들었으니 젊은 축에 속했다.]에 언제 부진해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신인 지명이나 관리도 엉망이었는데 기껏 뽑은 선수들은 [[박상규(야구선수)|박상규]]나 [[최우석(야구선수)|최우석]], [[김원석(야구선수)|김원석]] 같이 멘탈이 문제가 되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고[* 결국 셋 다 2015~2017년에 정리된다. 그나마 김원석은 실력이 그나마 받춰졌지만 인성 논란이 너무 강렬해서 야구계 복귀가 불가능해졌다.], [[신민기(1980)|신민기]]처럼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거나 [[최진호(1984)|최진호]]처럼 [[뺑소니]] 사고를 저질러 흑역사가 된 케이스도 있었다. 또한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나 [[윤기호]]같이 자질이 모자라고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라인|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명한 경우도 있었는데, [[윤기호]]는 부상이 있는 걸 알면서도 북일고 출신이란 이유 하나로 '''[[전준우]]'''를 지명할 기회를 버리고 뽑았다.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는 북일고 시절의 혹사도 있었고, 고교 야구에서도 한계가 빤히 보이는 선수였는데도 1지명으로 뽑았다.[* 결국 저 선수 중에서 김용주를 빼면 모두 한화에서 방출당했다. 그리고 2017년 2차 드래프트에서 [[kt wiz]]가 김용주를 지명함으로써 전멸.] '''특히 투수진 육성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김인식]]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수 지명을 줄이고 투수만을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선발 투수의 경우 2007년 [[세드릭 바워스]]가 11승, [[정민철]]이 12승과 2.90의 평균자책을 기록한 이후로 2008 시즌부터 '''류현진을 제외하고 풀타임으로 평균자책 3점대 이하를 기록한 선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류현진을 제외하고 2008년 이후 유일하게 시즌 10승에 성공한 [[안영명]]이나[* 말이 10승이지, 5.18에 달하는 평균자책점 등 세부 기록은 처참했다. 물론 2009년은 타고투저시즌이였다는걸 감안해야 하며 당시 한화의 불펜진이 불이나 질러대던 탓에 분식회계를 당하기도 했다.] [[양훈]], [[김혁민]] 등이 한 시즌이나마 희망을 보여주나 했지만 혹사 등으로 인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원상 복구되기를 반복. 그렇다고 불펜진 육성은 성공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이 같은 기간 동안 한화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불펜 투수는 2010 - 2011 시즌의 '노망주' [[박정진]]과 2012 시즌 이후의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저 둘 모두 '''기존의 자원'''[* [[박정진]]은 1999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해 큰 기대를 받고 처음에는 기회를 받았으나 부상과 성장 미진 등으로 인해 포텐이 터지지 않다가 35세가 되어서야 포텐이 터지기 시작,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은 [[2004년]] 입단해서 첫 해부터 전천후로 굴려지다가 팔꿈치 부상과 혈행장애를 연달아 겪으며 잠시 야구를 그만두었다가 복귀한 사례이다.]을 어찌어찌 키운 수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박정진]]은 나이 때문에 언제 부진해도 이상하지 않고,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은 2013 시즌의 혹사 후유증으로 2014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2016~2017년이 되고 기존의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 [[박정진]], 삼성에서 사 온 [[권혁]], [[이동걸]], [[정대훈]]이나 [[심수창]], [[윤규진]], [[안영명]]등이 불펜으로서 뛰고 있지만 이 들의 나이는 30대~40대의 베테랑으로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그나마 서산구장이 생긴 지금은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야수 지명을 줄여 부족해진 야수진을 타 팀 방출선수나 [[육성선수|신고선수]]로 때웠지만 그것도 [[2009년]]을 끝으로 한계에 이르렀고, 이 와중에 투수진조차도 붕괴되면서 결국 현재의 빈약한 팀 전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매 년 한 명씩을 지명한 포수진에서도 주전 포수 육성에 실패하면서 노장 [[신경현]]이 계속해서 포수 마스크를 써야 했을 정도였다.[* 당장 이 시기에 [[박노민]], [[최연오]], [[이희근]], [[정범모]] 같은 젊은 포수 자원은 많았지만 모두 신경현에 비해서 '못해서' 신경현이 계속해서 나와야 했다. 2017년 시점에서 보면 정범모 빼고 모두 은퇴했으며, 그나마 정범모도 2군에 처박혀서 사실상 자리가 없다가 NC로 팔려갔다.]멀리 보면 이 신인 육성의 문제점이 1990년대부터 보였는데, 실제로 한화가 1996년 [[홍원기]], [[이영우]], [[송지만]], [[임수민(야구선수)|임수민]]으로 대표되는 신인 4인방 이후부터 제대로 육성에 성공한 선수는 끽해야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 정도에 불과하며, 특히 상위 순위로 지명해서 키워낸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 중에서 [[류현진]], [[김태균]]은 까놓고 말해 육성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고졸 1년차부터 1군 리그를 폭격한 천재였고, 1년 반짝을 제외하면 약빨인 것으로 판명난 [[최진행]]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남는 건 [[이범호]] 단 1명 뿐이다. [* [[안영명]]이나 [[윤규진]] 정도도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안영명]]의 경우는 나름 이닝은 먹어주지만 방어율이 높고, [[윤규진]]은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잔부상이 잦아지며 시즌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군 입대 선수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타 구단의 경우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이후부터 신인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었다. 보통 신인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며 미래를 내다보기 마련인데, 한화의 경우에는 2년 연속으로 드래프트에서 4~6명의 선수만 뽑은 걸로도 모자라 [[김인식]] 시절부터 쓰지도 않을 유망주를 군대도 보내지 않고 2군에다가 썩혀놓으면서 기본적인 선수 군 복무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병역비리 사건 연루 선수 중 [[한상훈]]은 2008년이 되어서야 병역문제를 해결했다. 다른 팀의 연루선수들이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한 것을 생각하면 대조적인 부분.] 그 결과가 [[2010년]] [[송광민]]의 '''시즌 도중 현역 입대 해프닝.'''[* 결국 이것도 SK에서 방출된 [[손지환]]을 급하게 데려다가 쓰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만 그 손지환도 몇 개월 써 먹고서 부상으로 인해 방출시켰다.] 그나마 구단이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것인지 감독이 한대화 - 김응용인 시기에는 이런 점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는 있다. 또한 팀 특성 상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이상군]], [[강석천]], [[이정훈(1963)|이정훈]], [[이강돈]], [[한용덕]], [[장종훈]], [[송진우(야구)|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이영우]], [[신경현]], [[제이 데이비스]][* 말이 용병이지 2003년을 제외하고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한화에서만 무려 7년을 뛰었다. 그리고 데이비스가 있을 때 그만 믿고 외야수, 특히 중견수 육성엔 손 놓고 있었고 이는 이용규가 오기 전까 외야수비에 문제가 생기는 결과로 귀결되었다.]와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굉장히 많았고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선수들이 1990년대 후반~2013년에 모두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나마 이강돈과 이정훈의 자리는 1996년에 입단한 송지만과 이영우가 대체했다. 그러나 그 이영우도 은퇴한 시점에서 그의 대체자원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장종훈 역시 2001년에 입단한 김태균이 공백을 메꾸었지만, 그 김태균도 벌써 30대 중반의 노장선수인지라, 거포 육성이 필요한 현실이다. 그나마 이 야수진의 상황은 나은편이다.][*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이 은퇴한 투수진의 경우는 신인투수들이 대체해 주어야겠지만, 문제는 조규수, 김창훈, 유원상, 양승진, 김혁민 같은 투수자원들의 성장이 영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규진과 안영명이 두각을 드러내나 싶었으나, 혹사로 인해서 전성기의 기량에 비하면 아쉬운 상황이다.] 전력에 균열이 생겼고, 가뜩이나 신인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과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가 겹쳐져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모습들이 드러났는데, 일단 [[김인식]] 시절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1번의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 이미지에 가려진 '''무차별 투수 혹사와 노장 선호'''[* 사실 이건 그래도 한화가 어느정도 잘 나가던 2005년~2007년 당시에는 가장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그게 도를 지나쳐서 문제가 된 것이다.''']로 인하여 이미 주축 선수들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던 한화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한대화]] 경질 이후 선임된 [[김응용]] 또한 [[2004년]] 이후 10년 가까운 현장 공백으로 인해 어제 등판한 투수를 다음날 선발투수로 등판시키는 등 1980~1990년대 야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고, 팬들의 성원 속에 취임한 [[김성근]] 역시 불펜 투수에게 100이닝 이상을 소화시키는 등의 혹사와 무리한 작전/팀 운용 등으로 최신 야구관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팀의 평균 연령층이 높고 뒤늦은 [[리빌딩]]에 나서고 있는 한화와는 처음부터 전혀 맞지 않는 인물임을 증명했다. 사실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되는 조짐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실 한화는 빙그레 이후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번의 우승과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7번 정도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정규리그 3~4위 턱걸이에 불과했고, 그 외의 시즌은 대개 하위권에 그치고 있었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2000년]]에는 [[정민철]]의 [[일본]] 진출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 잠깐 4강에 들기도 했지만 승률은 겨우 4할 후반에 불과했고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와는 단 2경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 이 해는 하위권 싸움이 박터졌기로 유명했었다. 1위와 3위의 승차가 3위와 8위의 승차보다 많았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10승 투수도 없던 3위 두산이 우승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 무렵에 리빌딩에 착수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프런트에서는 당장의 성적만을 바라보며 내일이 없는 팀 운용을 감행했다.[*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운용했으면 2001년 시즌 중 외국인 투수를 무려 '''5번'''씩이나 바꿔댔다. 결국 이듬해부터 한 시즌 팀당 외국인 선수 교체 횟수를 2번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다.] 그래도 2002~2004년에는 비록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깔아주는 팀들([[두엘롯]])이 있어서 그럭저럭 꼴찌만은 하지 않으며 적당히 중하위권에서 놀았다. 이후 [[2005년]]부터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06년 [[류현진]]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번의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송진우(야구)|주]][[구대성|전 ]][[정민철|선]][[신경현|수]]들의 고령화가 심각했고, 결국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는 2012년까지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친환경 구장이라고 까였던 [[KIA 타이거즈]]도 어쨌든 [[함평군]]에 2군 훈련장이 있었고[* 심지어 2012년 기아 2군은 [[박철우(야구)|박철우]] 총괄코치 체제에서 퓨처스 남부리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당시 매년 선수 팔아서 운영하던 [[넥센 히어로즈]]조차도 연고지에서 머나먼 [[강진군]]이라 해도 자기네 2군 훈련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재활시설이 부실하긴 했어도, 전유수나 임창민 같은 사례를 보면 육성 자체는 정명원 코치가 잘 해내기라도 했다.] 이 때문에 한화 2군은 [[계룡대]] 연병장이나 인근의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른 팀들은 전용 구장에 웨이트 시설에 기숙사에 식당에 재활 센터까지 갖춰놓고 1년 내내 연습시킬 때 한화는 그때그때 남의 운동장 빌려서 눈치보면서 연습하고, 심지어 구장을 못 구해서 [[KBO 퓨처스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설령 2000년대 중반 패스했던 신인지명을 모두 행사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이 된다면 그건 기적이다. [[8888577|비슷하게 암흑기를 헤메던]] [[롯데 자이언츠]]가 2007년 상동야구장이 완공된 이후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구단이 얼마나 투자에 미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단, 한화도 조금은 할 말이 있었던 것이 2군 훈련장 건설이 늦어진 것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의 탓이 크다. 2007년 대덕구 덕암동에 2군 훈련장을 짓기로 양해 각서까지 체결해 놓고 행정 절차 핑계대며 무려 4년 넘게 질질 끌어 삽마저 못 뜬 것. 결국 팀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참다 못해 [[서산시]]에 짓겠다고 발표해 버리니 그제서야 [[대덕구]]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며 반박 보도 자료까지 돌렸다.[* 이 당시 구청장은 한나라당 [[정용기]]로 구청장 재선을 한 후 국회의원도 내리 재선을 했다.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그의 숨겨진 과오라고 봐도 될 정도.] 다행히 2012년 초 [[서산시]] 성연면 서산테크노밸리에 2군 훈련장 착공 계획이 수립되었고, 2012년 12월에 드디어 [[서산전용연습구장|서산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여담으로 대덕구 덕암동의 그 부지에는 2015년에 [[대전 시티즌]]의 클럽하우스와 연습장이 들어섰다. 거기에다 앞에서 얘기한 몸 상태, 기량 미달 선수임에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명하는 것과 같이 '''선수 시절 이름을 날렸거나 프랜차이즈 출신 선수들을 대우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연수도 없이 코치진에 무혈 입성한 [[이상군]], [[송진우(야구)|송진우]], [[조경택]], [[정민철]] 등 능력 없는 코치들인 속칭 '''[[칰무원]]'''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 육성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도 문제를 키웠다.[* 쉽게 말해서 '''[[으리]]축구로 까였던 [[홍명보호]]'''를 생각하면 딱 좋다. 김응용이 능력있는 일본인 투수 코치를 쓰자고 부탁하는 걸 능력도 없는 주제에 씹은 건 덤이다.][* 결국 투수코치는 한화 출신 [[정민철]], 김응용이 영입한 원로야구인 [[신용균]]이 맡았지만 마운드 상황은 기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정민철]]은 투수 기용, 교체 타이밍 등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상군]]은 투수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들의 구위, 제구, 투구폼 등을 망가뜨리고, 용병 스카우터로도 [[브라이언 배스|배스]]나 [[션 헨]] 같은 수준 미달 용병을 데려와 무능력함을 증명했다. [[송신영]]의 FA영입은 덤. [[조경택]] 또한 배터리 코치로는 무능력해서 명포수라는 반어법[* 조경택 항목 참고. 유래는 본인 스스로 명포수라고 자칭했던 인터뷰에서 시작된 것.]이 등장할 정도였으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외에도 타이거즈 출신 등 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서 수혈한 코치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체적으로 한화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들은 줄곧 자리를 지키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감독과 같이 부임한 코치들도 함께 바뀌는 구조였다.[* 단, 김응용에서 김성근으로 바뀔 때는 프랜차이즈 코치진들도 싹 잘려나갔다. 그리고 빈 자리는 김성근 사단이 채웠다.] 신인 드래프트의 실패와 무능력한 코치진의 시너지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매년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에서 지옥 훈련을 한다고 하는데 시즌 초에 보면 오히려 퇴보해 있고, 시즌 말 즈음 가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싶다가 다음 해에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희망고문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2014 시즌에도 8월 들어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9월~[[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휴식기 이후 또 다시 시즌 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여기에 2011년부터 신생팀 [[NC 다이노스]], [[kt wiz]]가 창단하는 변수가 발생하면서 꼴찌하고도 전체 1순위로 신인을 지명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는데, 그렇게 북일 팜의 [[윤형배(1994)|윤형배]](윤호솔로 개명), [[류희운]], 청주고의 [[주권(야구선수)|주권]]을 NC, KT가 지명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단, 윤형배의 경우 당시 신인 지명은 전면 드래프트였으며, 넥센이 맨 먼저 우선지명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애매한 감이 있다. 하지만 NC의 창단이 없었다면 북일고 윤형배나 대전고 [[조상우]](동산고에서 전학왔기 때문에 순수 충청팜 출신은 아니지만) 중 한 명을 지명할 수도 있었던 상황.][* 그나마 한화로서는 다행인게 윤형배가 [[사이버 투수]]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윤형배는 NC에서 제대로된 등판을 하지 못하고 [[정범모]]와 트레이드되어 돌아왔고 뒤늦게나마 재능이 만개했다. 그리고 류희운은 [[이시원]]을 트레이드로 주면서 데려왔다만 조금이나마 더 지켜봐야 할 수준.] 또한 LG 트윈스가 2008 드래프트에서 대학진학이 예정된 [[나성범]]을 쓸데없이 지명하는 바람에 2012 드래프트에서 대졸 최대어 [[나성범]]을 1라운더 1픽에서 뽑을 수 없었고 결국 2라운드 1픽으로 NC에 빼앗겼다. [[강승호]]나 [[심재윤]] 등 북일팜 야수들을 [[LG 트윈스]]에 뺏기고 나서 지명한 야수들 중 [[조정원]]이나 [[한승택]] 등을 빼면 1군 경험이 없으며 그나마 [[한승택]]은 경찰청 입대를 앞두고 [[KIA 타이거즈]]에 FA 보상선수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조정원 역시 김성근이 제대하는 하주석, 오선진을 써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경찰청이나 상무는 못가고, 현역으로 가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승택이 KIA에서 안정적인 백업포수로 자리잡은 점, 조정원이 일찍 방출된 점을 생각하면 한화의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ㄹ자 드래프트의 피해를 보았다는 평이 많다. 보통 드래프트는 상위픽의 가치가 하위픽의 가치보다 훨씬 높은데, 대부분 아마야구 풀은 강백호급의 특급 인재가 나오지 않는 한 상위 20번의 픽 중 1번, 20번을 받는 최하위팀이 10번, 11번을 받는 우승팀에 비해 큰 메리트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결국 ㄹ자 드래프트 제도는 다시 Z자 형태의 드래프트로 바뀌었다.] 또한 2013년 드래프트에서도 제주도 + 대졸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신인 지명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이것은 한일 월드컵 특수로 인해 당시 체육계 유망주들이 전부 축구로 몰려가 버린 탓에 특급 신인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현재의 하위권 팀들은 치고 올라가는 데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용병 선정(특히 투수용병)에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 된 이후로 한화는 타자용병에선 재미를 많이 봤지만 투수쪽에선 영 꽝이였다. 한화 역사상 10승 이상 혹은 30세이브 이상을 거둔 투수용병이 [[키버스 샘슨]](13승), [[세드릭 바워스]](11승)와 [[미치 탈보트]](10승), [[알렉시 오간도]](10승), [[브래드 토마스]](31세이브),[[워윅 서폴드]](12승,10승), [[채드벨]](11승)정도밖에 없을 정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2군 구장 부재, 군 입대 선수 관리 부실 등 팀의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짜여 있지 않았던 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중인 암흑기 탈출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부족한 시스템을 보강하는 등의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팬과 회장도 문제인데 리빌딩을 하려고만 하면 성적이 안나온다고 온갖 비난을 해대고 야구계 사정에 잘 모르는 기업인인 [[김승연]] 회장이 여론만 듣고 마음대로 해대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레전드 트레이드 하지말라고 전화로 훼방 놓고 결국 돈먹는 잉여가 된 사건은 유명하다. 가장 최근 사건이 김성근 감독 영입건인데 프런트의 의견은 무시하고 김성근사단을 어마어마한 거액을 주고 앉혀왔는데 당연히 김성근은 30년간 해왔던 본인스타일대로 하고 한화는 그걸 버틸 팀이 아니었다. 리빌딩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팀에 단기적으로는 강한 듯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팀 뎁스를 아예 때려부수는 자칭 야신을 명장이랍시고 앉히고 절대 권한을 쥐어주었다.[* 다만 이건 결과론적인 평가이다. 2014 시즌이 종료되고 김응용 감독이 물러났던 시점 프런트는 분명히 내부 승진을 우선으로 했었고, 그 후보군 중에 한용덕이 있었다! 이 문서의 2014년 단락 막바지에도 분명히 써 있다. 그러나 이 당시 이에 대한 팬덤의 분위기는 너무나 험악해서 도저히 이들을 무시하고 내부 승진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절대다수의 한화 팬들이 김성근을 외쳤고, 시위까지 해가며 영입을 주장했었다. 물론 김승연이 난데없이 김성근을 꽂아버린 게 잘 한 일은 아니지만, 이미지와 그룹 홍보효과로 먹고사는 크보에서 이걸 무시하고 내부 승진을 강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성근 데려온게 삽질이었음도 모든 것이 지난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2014년까지 김성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다. 김성근 항목으로 가서 2015년 이전 버전을 보면 그야말로 오그라드는 찬사들과 야신, 명장이라는 말만 가득하다. 노리타들만 빨아대던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그 당시 감독이 뻘짓하던 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던 말이 ‘짜르고 김성근 데려와라’였다. 그만큼 당시 김성근의 이미지는 절대적이었고, 어쨌든 SK 감독 시절 성적이 나왔으니 한화 윗선에서도 그를 데려왔던 것이다.][* 또한 야인시절 김성근은 한화 감독을 맡으면서 보인 행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도 했다. 육성보다는 승부에만 급급한 모습이라며 한화를 지적하거나, 투수가 없으면 키워써야지 변명이 될수 없다거나, 넓어진 한화 외야를 비판하며 지옥에서 던지는 한화 투수라는 등 나름대로 한화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분석이었다. 다만 본인이 부임하자마자 귀신같이 본인이 지적하던 모습을 보여줬다.] 2016년 9월 기준 한화 선수진의 평균 나이는 31세다.[* 리빌딩을 외치고 각종 무리수를 일삼던 김응용이 물러날 시기의 한화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8,7세였다. 젊은 선수들로 채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선수들 나이를 무려 2살이나 불려버린 것이다.] 그나마 올해 주목받은 젊은 선수는 [[양성우(야구선수)|양성우]], [[하주석]], [[이태양]], [[김민우(1995)|김민우]], [[김재영(야구선수)|김재영]] 정도로 아예 없지는 않지만, 양성우와 하주석은 최진행의 부상과 권용관 등 내야진의 부진이 아니었다면 올라와보지도 못했을 선수들이고, 둘 다 군대에서 몸을 만들어 온 것이지 김성근이 딱히 뭘 해준 것은 없다. 이태양은 김응용이 밥 지어 먹이며 키운 걸 2015년 김성근의 과도한 훈련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된 뒤 바로 다음 해에 '''[[순페이|재활]] [[이동현(1983)|등판]]'''의 명목으로 올렸음에도 겨우겨우 잘 던져주는 것이고, 불펜 알바를 간혹 할 때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한화의 10년을 책임질 수 있었을 김민우는 안 그래도 두 번의 수술과 부상 위험이 큰 투구 폼과 구종을 가진 선수임에도 작년부터 보직없이 굴려지고 특투와 투구 폼 교정을 받다가 '우완 류현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깨 관절와순 손상으로 고인이 되어버렸다. '''5년간 어깨 재활로 신음하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전병두]]가 그 예다.'''[* 물론 한화팬들은 재활에 성공해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지 최악이 되길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감독 팬들이 자신들의 신이 실패한 감독이 되자 혹사 논란마다 '선수가 진짜로 아프길 바라는 거냐, 예의없는 것들아?' 투로 시비를 걸고 있는데 혹사 논란 후 선수들은 거의 다 부상에 시달리거나 구위를 잃어버렸고 설사 심수창처럼 포크볼을 주 무기로 5이닝을 먹어 전날 불펜 등판 후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148km대의 속구를 뿌려준다 해도 '''무사히 경기를 하는 것이 다행인 것이지 절대로 걱정이 헛된 것이 아니다.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시범경기에서 4경기 15이닝 ERA 0.60의 무시무시한 피칭을 보여준 대졸신인 사이드암 투수 김재영은 잦은 퀵후크와 보직 변동으로 본래의 구위와 제구력을 잃고 2군에 주로 머물렀으며, 여러 차례 병살타를 유도하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점수 차가 7~10점 정도로 크게 벌어지지 않으면 나오지조차 못하고 있다. 17시즌 김성근 감독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되고[* 자진사퇴라면 구단이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위로금 형식으로 김성근에게 잔여 연봉을 주려고 하였다. 김성근도 일단 받지는 않았다. 뭐 이미 20억 중 2년차까지의 돈도 받았고, 원더스 시절 강연 세금으로 수천만원~억대의 돈을 내는 사람이라 크게 돈이 궁할 입장은 아니긴 하다. 게다가 야구계에서 은퇴한 지금, 김성근은 100억대 자산가이다.], 이상군 대행에 의해 김재영이 선발로 제대로 된 기회를 받기 시작했고, 노장 선수들을 연달아 웨이버 공시 형태로 방출시키며 그 빈자리를 신인급 투수, 야수들을 정식 선수로 등록하거나 1군 무대에 올리는 등 리빌딩이라고 할만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만 신인포수 박상언을 데뷔시키고는 얼마 안 되어 2군에 보내고는 다시 주전으로 써먹지 않았고, 번트용 대타, 의미없는 히트 앤 런 등 [[서정환|제대로]] [[김한수|먹히지도 않는]] [[이종운|스몰볼식]] [[양상문|작전을]] [[김성근|남발]]하고, 송창식을 또 혹사시키는 등 리빌딩을 추구한다기엔 의문이 드는 행보도 적지 않았다.] 이 중 그나마 가능성을 보여준 건 후반기 5연속 QS를 기록한 김재영 정도가 있었다. 2018 시즌 이정훈 스카우터의 주도 하에 신인 드래프트에선 즉전감 대졸 선수를 아예 뽑지 않고 10명을 모두 고졸 선수로만 채우는 등 연령대 감소에 힘쓰고 있다. 그 노력은 2018 시즌 드래프트에서 뽑은 [[정은원]]이 2018년 조상우에게 뽑아낸 홈런으로 이름을 알린 이후, 2021년 뛰어난 출루 능력으로 최고의 2루수가 되고, 19시즌 드래프트에서 뽑은 [[노시환]]이 2021년 [[장종훈]]-[[김태균]]의 계보를 이을 가능성이 높은 거포로 떠올랐고, 20시즌 드래프트에서 뽑은 [[강재민]]은 비록 대졸 출신이지만 20시즌 좋은 활약을 보여졌고, 2021년 전반기 직전까지 0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최강 불펜으로 자리잡는 등, 한화도 유망주 육성이 조금씩 희망으로 차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