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84부대 (문단 편집) == 대우 및 실상 == 실미도 부대에는 월간 총 공작비로 주식비 60,000원, 부식비 280,000원, 봉급 120,000원[* 모집책이 공작원을 모집할 때 언급한 월급 16만원의 75% 정도의 금액이다.] 등 총 460,000원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공작원들에게 봉급은 최초 3개월 동안 월 3,200원[* 월 16만원의 50분의 1.]이 지급되었을 뿐 이후에는 위에서 다 떼먹었다. 그나마 받은 월급은 사용할 때가 없어 조장이 갖고 있다가 소대장과 교관에게 외출비로 바쳤다고 한다. 공작원들 까지 내려오지 않아서 문제였지 월급은 1971년 부터는 5,000원[* 월 16만원의 32분의 1.]으로 인상되었고 중앙정보부에서 실제로 지출되었다. 주·부식은 최초 1개월간 쌀밥에 쇠고기국이 나오고 계란도 하나씩 나왔지만 이후에는 된장국 또는 소금국에 보리밥, 1971년 7월부터는 밀밥이 나왔다. 너무 배고파서 개밥이나 돼지먹이를 몰래 훔쳐서 먹을 정도로 비참한 지경이었다. 위에서 다 떼어먹다 보니 기간병의 사정도 열악했는데 10개월 근무하면서 고깃국은 1~2번 뿐이었다는 증언이 있다. 다만 기간병은 밥은 더 퍼먹을 수 있고 매점에서 빵과 라면을 사먹을 수 있어 굶주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관과 소대장은 쌀밥만 퍼주고 기간병들은 보리밥 중 쌀 위주로 퍼주다 보니 남은 건 보리뿐이어서 훈련병들은 이것밖에 먹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훈련병들은 잘 먹고 기간병들은 부러운 듯 바라본 것은 허구다. 즉 첫달은 양쪽 다 잘 먹었고 이후부터는 다 못 먹어 똑같이 보리밥에 소금국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장부상으로는 매일 계란 1개, 두부 월 10~20상자와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이 나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실미도 부대는 배고파서 [[청와대]]로 쳐들어갔다고 이유를 밝혔고 대중매체에서는 관심이 식으며 지원이 열악해진 것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그러나 따져 보면 주부식비와 월급은 처음이든 나중이든 계속 지출되고 있었으며 열악해지긴 커녕 오히려 지출액이 늘어 났다.[* 훈련 대장이 김응수에서 한총으로 바뀌며 주부식비가 2배 더 보급담당자에게 지급되었다고 한다. 전임자인 김응수가 너무 심하게 해먹었기 때문에 후임인 한총이 깜짝 놀라 자기는 좀 덜 해먹고 남은걸 보급담당자에게 넘긴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다 떼먹어서''' 가장 아래까지는 내려온 게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가장 먼저 중앙정보부에서 크게 떼먹고 이후 지휘 계통에 따라 조금씩 덜 떼먹었다. 가장 말단인 교관에서까지 싹싹 해먹고 나면 훈련병은 커녕 기간병이 먹을 밥도 없었다. 영화에서는 안성기가 교육대장역을 맞아 엄격하지만 인자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모델인 김순웅 상사는 훈련병과 공작원들이 '악질'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먹을 주부식과 월급을 마지막 단계에서 횡령한 범죄자였다.[* 다만 수차례 북파공작 임무를 수행한 켈로부대 출신인 것은 영화의 고증이 맞다.] 그리고 폭력의 수준이 매우 심각했는데 몇몇은 패죽이고 시신은 임의로 처분하였다. 최종적으로 반란이 일어나는 원인도 김순웅이 소주 사건 때문에 훈련병 조장 3명을 교관실로 불러 과도하게 구타하자 그동안 쌓인 원한이 폭발하여 발생한 것이다. 시스템 탓, 상급자의 탓도 적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김순웅 상사의 개인적 악행은 가려질 수 없다. 그러나 후대에 가서는 [[실미도(영화)|영화]]까지 만들어 그를 미화하고 있으니 20세기판 [[원균]]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