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8운동 (문단 편집) === [[페미니즘]]에 미친 영향 === 68혁명은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페미니즘의 역사 자체가 68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만큼,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은 68혁명 이후 큰 변동을 겪었다. 68혁명 이전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법적인 투쟁 혹은 경제적인 투쟁을 중시하며, 법적/경제적 권리가 달성될 시 여성의 권리 역시 쟁취될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1950년대 이후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여성학자들은 그러한 방식만으로는 여성 해방이 쟁취될 수 없으며 보다 개인적이고 생물학적, 문화적 요인에서 여성 차별이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흐름은 1960년대까지 이어져오다가, 1968년 혁명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이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에 미친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애초에 래디컬 페미니즘이라는 이론 자체가 68혁명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형성되었으며, 래디컬 페미니즘 3대 고전인 <[[성의 변증법]]>, <[[여성, 거세당하다]]>, <[[성 정치학]]>이 모두 1968년 혁명 이후 3년도 안되는 기간 내에 출판되어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초기 래디컬 페미니즘은 성 해방주의, 가부장제 반대, 낙태 허용, 동성애 허용, 삽입 중심 섹스 반대[* 다만 이는 초기 래디컬 페미니즘 내에서도 어느정도 입장이 갈렸다.], 남성 중심의 문화 변혁 등 68혁명 도중에 나온 의제들을 그대로 흡수하였다. 다만, 우리가 아는 현재의 래디컬 페미니즘과 이때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어느정도 다르다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1970년대 여성주의 성전쟁이라는 큰 사건을 통해 래디컬 페미니즘이 성적 해방을 중시한 [[성 긍정 페미니즘]]과 남성중심주의 타파를 중시한 [[안티 포르노 페미니즘]]으로 분열되었고, 이를 통해 래디컬 페미니즘이 초기의 담론에서 벗어나 보다 복합적이고 정교한 논리로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맥키넌]], [[안드레아 드워킨]]으로 대표되는 "안티 포르노 페미니즘"[* 사실 한국에서 알려진 페미니즘은 주로 이쪽인데,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무작정 검열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쪽의 정 반대라고 볼 수 있는 [[마광수]], [[장정일]]도 성해방주의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된다.]은 포르노 금지를 위해 68혁명 최대의 적수였던 극우 기독교 단체와 적극적으로 동맹을 맺는 등(...) 여러모로 래디컬 페미니즘에 큰 변혁을 불러왔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의 이런 변화를 비판하며 등장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도 68혁명의 큰 영향을 받았고[* 이들은 68혁명의 직접적 영향력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68혁명 세대의 철학, 특히 상술한 프랑스 탈근대 철학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이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기수인 [[주디스 버틀러]]가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탈서구-탈근대"라는 68혁명의 의제가 상호교차성 페미니즘과 굉장히 잘 들어 맞는 점이기도 하다.],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 역시 나름대로의 논의 전개를 통해 68혁명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왔기에, 여전히 페미니즘 계열에서 68혁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도 68혁명 이후 크게 변화했다. [[배티 프리단]]의 사상적인 변동, 그리고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의를 흡수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발전시킨 [[앨리슨 재거]], [[줄리엣 미첼]]을 그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