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6세대 (문단 편집) === 병역 === [[파일:conscriptionRate.jpg|width=40%&height=40%]] [[파일:현역판정율현황.png]] 이들은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병역의무]]의 징병률이 낮은 대신 복무 기간이 길었다. 많은 인구수와 지금에 비해 긴 복무 기간 덕분에 징병률이 낮았기 때문에 병역면제를 받는 비율이 1990년대 이후에 비해서 높았다. 당시 징집대상 남성들 중에서 현역 병역을 수행하는 비율은 40%대~60%대에 불과했다.[[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19/2014101900486.html|#]][* 참고로 2019년에는 징집대상 남성의 94.3%가 [[현역]] 또는 [[보충역]]으로 징병되었다.[[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44&tblId=TX_14401_A031|#]]] 다만 현역 복무기간은 30개월이었고, 1990년대 이후에 비하면 꽤 길었고, 현재에 비하면 군인월급도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군 가혹행위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신체검사에서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에 18개월 [[방위병]] 복무 판정이나 면제 판정을 받는 비율이 1990년대 이후에 비해 높았고, 2대 독자 등의 경우에는 6개월 [[방위병]] 복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병역에 있어 대학생 우대 제도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대학원에 진학한 고학력자의 경우 현역복무 판정을 받아도 6개월 [[석사장교]]로 입대하는 방법도 있었다. 다만 석사장교는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수와 비슷한 숫자인 매년 평균 1000명 정도의 인원만 선발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역시 석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인물)|조국]] 역시 석사장교 출신.] 이들의 징병율이 낮은 진정한 이유는 '''엄청나게 높은 출산율''' 때문이었다. 한 해 100만 명씩 태어났기 때문에 인적자원 하나만큼은 끝장나게 넘쳐 흘렀다. 그래서 신체검사를 하더라도 1급만 현역으로 복무하고 2급이 [[방위병]]으로 복무할 정도였으며[* 현재 기준으로는 3급조차 받기 어려울 정도의 경증 저시력자도 적지 않은 수가 방위병으로 복무했다.] 어딘가 조금만이라도 불편한 곳이 있다면[* 가령, [[평발]]의 경우 현재는 발 뼈의 각도를 세세하게 따져 가면서 급수를 나누고 어지간히 심하지 않은 이상 2~3급 현역이 나오며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있을 정도로 심해도 면제가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을 내리는 것이 절대다수지만, 당시에는 그냥 서 있을 때 발바닥에 아치가 보이지 않기만 하면 무조건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면제였다. 또한 이 시절에는 대학 1학년때 문무대 일주일, 2학년때 전방입소 일주일을 하게 되면 복무기간을 90일 단축해줬다. 즉 당시 대학생들의 실질적 복무기간은 27개월이였던 것. 절대 복무기간은 1990년대보다 길었지만 대학 재학자와 최종 고졸이하 간에 복무기간이 달랐다는 점에서 이는 아래 용어 비판에서 서술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세대들의 박탈감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군필자는 잘 알겠지만, 선임보다 먼저 전역하는 후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 제도는 1989년에 없어져서 1989학번 이후는 복무단축이 없다. 1988학번은 문무대만 갔다왔기 때문에 45일 단축. 이 뿐만 아니라 당시 병역법의 입영의무 연령도 모든 병역의무자는 만 30세가 되는 해까지였으며 만 30세가 되는 해를 넘긴 경우에는 소집면제처리가 되도록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