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6M (문단 편집) == 개요 == || [youtube(wTHq_tJ_7Gk)] || || [youtube(m0qpynHQb_U)] || || '''A6M 비행 영상''' ||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해군]]의 주력 함상전투기. [[A5M|96식 함상전투기]]의 차기 전투기로서 [[미쓰비시 중공업|미쓰비시社]]가 설계한 기체로 날렵한 기동성과 긴 항속거리, 그리고 취약한 생존성이 특징이다. [[중일전쟁]] 당시 [[국부군]]의 공군기와의 교전 경험 및 전훈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육군기와 대등한 성능을 갖춘 [[함재기]]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진주만 공습]] 당시 보여준 활약으로 미군으로부터 '동양의 신비'라고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붐앤줌|대응 전술]]이 개발되고, 기체가 노획되어 분석됨에 따라 열세에 몰리게 된다.[* 정작 일본 항공기술의 결정체라고 부를 물건은 [[Ki-84|따로]] [[N1K-J|있다.]]] 제로센의 [[프로펠러]]는 미국제 프로펠러를 스미토모 사에서 라이센스 생산했다가 전쟁이 시작되자 그걸 복제해서 썼는데, A6M을 노획했던 미군이 이걸 보고 당황하기도 했고, 전후에 일본 정부가 해밀턴 사에 라이센스비를 지급하겠다니까 "그럼 1달러로 합시다."라는 회답을 받았다는 [[http://en.wikipedia.org/wiki/Hamilton_Standard|일화가 있다.]] 물론 쓸모없게 된 것이라서 1달러로 했다는 것보다는 적국의 무기 개발에 협력했다고 비난받을까봐 명목상으로 받았다고 보면 된다. 해밀턴 스탠다드사의 프로펠러는 독일도 한 수 접어줘야 하는 물건이긴 한데, 일본이 우려먹었던 건 구형 모델이며 이탈리아는 비행기 자체는 괜찮았지만 공랭식 엔진만 고집한 탓에 전투기의 제 성능을 뽑지 못했다가 독일제 벤츠사 수랭식 엔진을 라이센스 받아서 생산성을 제외하고 원본 못지 않게 만들어냈다. 크게 나누어 초기생산형인 11형[* '십일형'이 아니라 '일일형'이라고 읽어야 한다. 각각 기체 버전과 엔진 버전이므로 별개다.]과 이후 본격적으로 양산된 21, 32, 52형의 네 가지 변형이 있고 이 중 태평양 전쟁에 주력기로 투입된 기종이 21형. 중국 전선에 11형이 투입되어 첫 실전을 거쳤고 개전 당시에는 중일전쟁에서의 실전 데이터와 함께 함재기에 맞게 개수한 21형이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엔진을 강화시킨 32형은 과도기적 기체였으며 이후 개량된 52형은 무장과 방호력을 강화시켰으나 근본적인 설계와 엔진의 한계로 결국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원래는 항공모함 운용을 전제로 개발되었으나 일본이 여러 섬을 점령하면서 섬에 건설한 육상기지에서도 많이 운용되었다. 유명한 제로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가 대표적인 육상기지 요원이었다. 또한 바퀴 대신에 플로트 장비를 한 수상기 버전[* A6M2-N 2식 수상전투기다.]도 존재한다. 실전 투입 초기에는 신흥 열강이자 말석에 불과했던 일본이 이런 전투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서양에게 대단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연합군, 특히 미군 조종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제로 공포증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해낸 '타치 위브'라는 기동을 고안해낸 와일드캣 에이스인 지미 타치 대령은 자신이 올린 보고서에서 "제로 전투기는 [[외계인 고문|외계인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만든 전투기였다."고 보고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A6M은 강력했던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다는 점과 남방 사령부의 유능한 에이스 파일럿들이 탔다는 이유로 전후 일본 사회의 자존심 회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현재도 종종 우익이던 아니던 '''가장 아름다운 전투기'''라고 칭송하는 일본인들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