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6M (문단 편집) == 실전 == || [[파일:Zerosen_A6M2_Thumbnail.jpg|width=100%]] || ||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제국 해군 산하 5항전 즈이카쿠 함 소속 A6M2''' || 이후 중일전쟁의 데이터를 통해 함재기로 개량된 A6M은 진주만 공격과 함께 태평양전쟁이 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합군과 겨루게 된다. 중일전쟁을 거치며 실전경험을 많이 쌓은 일본군 파일럿들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동남아시아 전선 등에서 아직까지도 남아 있던 [[F2A 버팔로]]나[* 심지어 지상기지에서는 미드웨이 해전까지도 버팔로를 몰고 출격해야 했던 해병대 조종사들이 있었다.] 고공 성능에 문제가 많았던[* 고공성능에 기반이 되는 과급기를 [[NACA]]가 빼버렸기 때문.] [[P-40]], [[P-39 에어라코브라]]에 탑승한 초짜 파일럿들을 압도, 연합군을 '''제로 쇼크'''에 빠뜨렸다. 부랴부랴 F2A 버팔로를 교체해 투입된 [[F4F 와일드캣]]조차 A6M과 간신히 맞먹는 정도였던지라 연합군의 충격은 쉽게 가실 수 없었다. 연합군 파일럿들은 A6M을 처음 조우하고 2,000마력의 전투기를 개발해온 것이라 생각했다. 말 그대로 쇼크였다.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와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4F 와일드캣을 비교한 미군측 보고서를 인용해보자면 제로는 1000ft 이상의 모든 고도에서 F4F-4에 비해 속도와 상승률, 가속도, 실용작전고도와 항속거리에서 모두 우위에 있었고 해수면 고도에서 일반 과급 상태의 F4F-4와 비교할 때 두 기체의 수평속도는 동일했으며 두 기체의 일반 강하성능은 비슷했다. 즉 대전 초기 A6M은 동시기에 배치된 F4F에 대해 비행성능 대부분의 항목에서 확실하게 앞서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세세한 사항으로 들어가면 이 우세는 일방적이 아니게 된다. 마이너한 단점으로는, 이를테면 제로의 경우 강하를 위해 기수를 숙이면 엔진에 컷아웃 현상이 발생하는 탓에 일반 강하에선 약간 늦게 가속이 붙는 약점이 있었다.[[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intelsum85-dec42.pdf|#]] 좀 더 큰 단점으로 대표적인 것은 [[붐앤줌]] 기동의 핵심이 되는 급강하 속도에서의 열세. A6M은 기체 강도의 부족으로 F4F등에 비해 적잖이 느린 급강하 속도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제로의 급강하 제한 속도는 21형의 경우 정확히 629km/h, 32형은 650km/h, 52형 甲형이나 전폭기 타입인 A6M7 62형에서도 740km/h인데 비해 F4F 와일드 캣의 급강하 속도는 772km/h.[[http://pwencycl.kgbudge.com/F/4/F4F_Wildcat.htm|#]][* 물론 이 역시 사실은 두 기체가 맞붙던 1941-1943 기준으로 쳐도 '2부 리그' 전투기들의 도토리 키재기에 해당했다. 일례로 유럽전장의 [[Bf109]]나 [[Fw190]]같은 독일전투기들의 급강하 속도는 마하 0.75(918km/h)까지 이르렀고 그에 못미쳐서 유럽전선에선 잉여 취급을 받던 [[P-38 라이트닝|P-38]]의 급강하 속도는 마하 0.68(833km/h). 하지만 유럽전장에선 잉여스럽게 여겨진 라이트닝이 태평양 전선에선 '미 육군항공대 소속 전투기들 중 가장 많은 숫자의 일본기를 격추한 기종'으로 악명을 떨쳤다... [[P-47 썬더볼트|P-47]] 정도가 되면 제한 속도가 마하 0.8, 즉 960km/h에 이른다.]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는 900km/h대의 급강하 속도를 지녔다. 또한 에일러론 등의 문제 때문에, 저속에서의 뛰어난 기동성에 비해 대체로 300km/h 이상의 고속에서는 롤 성능이 제약되었고[* 전쟁 초기 1942년 미군의 [[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intelsum85-dec42.pdf|분석]]에선 제로의 선회성능 약화가 시속 300마일, 즉 480km/h 부터 발생한다고 판단되었으나 1944년 10월 미 해군이 노획된 A6M5-52를 테스트 해 본 결과 대략 시속 180마일 이상 부터 에일러론이 급격히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Division of Naval Intelligence, 1944, p. 1.) [[http://www.pacificaviationmuseum.org/pearl-harbor-blog/how-fast-was-the-zero|#]]], 특히 롤성능은 대체로 250km/h 정도를 경계로 급격히 떨어졌다.[* [[http://naca.central.cranfield.ac.uk/reports/1947/naca-report-868.pdf|NACA Report No.868]] 미해군의 제로에 대한 분석에서도 제로에 대응한 전술개발에서 반드시 참고할 사항으로 '고속에서의 제로의 느린 롤-레이트'를 언급한다. F4F 와일드캣으로 제로를 상대할 때엔 '급강하에서의 우위'나 '고속에서의 롤 성능의 우위에서' 또는 '둘을 결합'하여 이득을 얻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intelsum85-dec42.pdf|#]]] 아무튼 당시 처음 제로를 맞닥뜨린 미군이 받은 충격은 장난이 아니여서 엔진 출력 1000마력의 A6M을 보고서 '기어코 쪽바리 놈들이 2000마력의 전투기를 만들어버렸다.'라고 오해를 했을 정도. 물론 그 기동력의 실체는 엔진 출력이 아닌 지나친 경량화였고, 결과적으로 미군은 이 오해 덕분에 전투기 엔진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일본과의 기술력 차이를 넘사벽으로 벌려버리게 된다.(..) 심지어 1941년 아프리카 전선에서 차출해 태평양전선에 배치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스핏파이어]]마저 압도적 교환비[* 일본의 202항공대와 영국군 제1전투항공단의 교차검증을 보면, 8번의 전투에서 영국은 26기의 항공기를 손실, 일본은 5기의 항공기를 손실했다.]로 손쉽게 격추시키며 대전 초기 연합군 파일럿들의 악몽이 됐었다. 다만 영문위키에는 아태지역에 최초로 배치된 스핏파이어가 1942년 인도에 배치된 사진정찰기형 PR IV 2대라고 등재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Supermarine_Spitfire_operational_history#South_West_Pacific|#]] 일본측이 기종을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령 일본군은 [[페어리 풀머]]같은 복좌전투기를 격추시킨 것도 스핏파이어 격추라고 보고한 적이 있다. 태평양 전쟁 초기 동남아시아의 영국군의 주력 항공기는 [[F2A 버팔로]]같은 더 구형 전투기들. 당시 영국은 영국 본토항공전과 북아프리카 전투에 사력을 다하던 상태라 '그 흔한' [[호커 허리케인]]조차도 1942년에, 그나마 터무니없이 적은 수만 배치되었고, 그것조차도 조기경보체계같은 지원을 받지 못해 30기 이상이 지상에서 격파당했다. 스핏파이어의 함상형인 시파이어는 1942년의 [[횃불 작전]]에서 데뷔했으니 일본군이 신바람을 내던 시절에는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스핏파이어와 제로가 공식적으로 맞붙은 전투는 1942년 일본군의 오스트레일리아 [[다윈 공습]]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 파견된 스핏파이어 Mk.Vc와의 교전. 1942년 일본군이 다윈 공습을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서북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에 지원을 요청, 당시 영국군에 파견되어 있던 자국 항공요원들의 귀환과 전투기 지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1943년 2월 스핏파이어 Mk.Vc 100대가 배치되어 다윈 상공 방어전에 나선다. 전투 기간 전체의 손실율 자체로는 분명 제로가 앞섰다.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9차례의 전투에서 38기를 손실하며 일본기 5기를 격추하는 졸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 전과를 가지고 제로가 스핏파이어 상대로 우위였다고 하는건 무리다. 당시 일본측 비행대장이 대놓고 스핏파이어가 제로를 상대로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고 경계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경험이 많은 파일럿들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했었다. || [[파일:SpitfireVctp.jpg]] || [[파일:external/i150.photobucket.com/F8-Fig1_zps6abf2744.jpg|width=300]] || || 보크스 필터가 장착된 스핏파이어 Mk. Vc Trop || 보크스 필터가 장착된 사막형 기수와 일반형 기수의 구조 || 첫번째로, 당시 A6M과 교전한 스핏파이어는 북아프리카에서 굴리다가 슬슬 교체를 준비중이었던 Spitfire Mk.VC Trop이었는데, 이 버전은 사막의 모래먼지로부터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 비행성능과 연비 면에서는 대단히 손해가 큰 보크스 필터를 장착하고 있었다. 속도만 따져도 시속 32km까지 더 느려지니 태평양에서는 당연히 제거했어야 하지만 이 필터는 기체 하부 거의 전체와 관련있는 부품이라 탈착이 쉽지 않았고,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군은 보크스 필터가 장착된 기체들을 그대로 전투에 투입한다.[* 참고로 싱가포르 전투 당시, 급하게 북아프리카로부터 차출되어 파견된 호커 허리케인들도 이 보크스 필터를 붙인 채 (게다가 폭격기 요격을 위해 기총을 12정으로 증설, 여러모로 뚱뚱해진 상태로) 전투에 투입되어 역시 피를 보았다고 한다. 반면 자바전투에서 네덜란드군은 보크스 필터를 제거하고, 기총도 8정으로 다시 줄인 허리케인을 사용, [[Ki-43 하야부사]]를 상대로 선회전 맞짱을 뜰 수 있었다고. 그래봐야 12기 밖에 되지 않아 전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겠지만.[[https://en.wikipedia.org/wiki/Hawker_Hurricane#Burma.2C_Ceylon.2C_Singapore.2C_and_the_Netherlands_East_Indies|#]]] 두번째로, 이 시기 스핏파이어를 운용한 조종사 등 병력은 북아프리카에서 P-40등을 이용, 대지 공격 임무를 주로 맡던 지휘관과[* 그나마 1비행전대장인 클리브 칼드웰 대령은 28기의 격추를 기록한 에이스이기는 했다.] 조종사들로 스핏파이어 운용은 물론 공대공 전투 경험도 거의 없던 병력이었다. 세번째로, 안 그래도 스핏파이어 운용 경험이 없는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에 의해 운용되는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전투는 스핏파이어를 최초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운용하는 전투로서 여러 문제를 빚었다. 특히 유럽이나 서아프리카에 그랬듯 많은 조종사들이 발진 직후 저공에서 고공으로 급상승을 시도했는데 훨씬 고온다습한 태평양 전장에서 기체를 습하고 더운 저공에서 저온의 고공으로 급상승시키면 엔진 냉각계통을 비롯한 기체의 여러 부분이 얼어붙어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곤 했다. 특히 기관포가 얼어서 발사가 안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핀란드와 소련도 공통적으로 스핏파이어를 여름밖에 못 써먹을 전투기, 어쩔 수 없이 쓰는 기체로 똑같이 평가했다. 여기에 더해 급하게 전투기는 공급되었지만 교환 부품이 모자라 수리조차 제대로 받기 어려워 엔진 트러블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일련의 항공전에서 공중전에서 직접 격추된 스핏파이어는 최대 7기로 전투기간 동안 손실된 스핏파이어의 70%는 엔진고장에 의한 손실이었다.[[http://egloos.zum.com/redbeowolf/v/3014543|출처]] 나아가 국지방공 전투기 성격이 강한 스핏파이어에 보크스필터의 악영향 덕분에 연비가 더 떨어져 연료 부족으로 추락하거나 불시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즉 이 전투기간 중 스핏파이어 손실 대부분은 사실상 비전투 손실인 셈이었다.[[http://ultan.egloos.com/201694|#]] > "영국군 조종사들은 독일과 이탈리아 전투기를 효과적으로 상대하는 방법을 완벽히 훈련받아 왔지만 그것은 곡예비행을 벌이는 일본군들을 상대론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 > - [[클레어 리 셰놀트]] 중장. [[플라잉 타이거즈]].[* 이는 영국 및 동맹국 파일럿들이 독일공군을 상대로 강하성능에서 소폭 우세가 있던 Bf109에 비해 선회율에서 소폭 우세한 스핏파이어의 특징을 살려 곧잘 선회전으로 대응하던 버릇을 말한다. 그러나 스핏파이어의 선회성능 우세는 어디까지나 Bf109와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고, A6M은 그 몰락했다는 대전 말에도 선회전 성능만은 일류였다. 셰놀트는 태평양에서는 유럽과 반대로 스핏파이어가 고속 일격이탈 전술을 썼어야 했는데 습관적으로 선회전을 시도한 과오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제로의 날렵한 기동성은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었고 당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될 수 있던 연합군 전투기 중 어떤 기종도, 설령 정비상태나 조종사의 숙련도가 양호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인 방식대로 A6M과 선회전을 하며 교전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구형화된 저성능의 기체나 정비불량의 기체가 아니라 고성능의 [[P-38 라이트닝]]이나 심지어 [[F4U 콜세어]] 초기형으로 출격한 미 육군항공대와 해병대 조종사들조차 잘못된 전술 선택으로 선회전을 시도한 경우 거의 예외없이 졸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연합군 조종사들은 제로에 대처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한다. 충분한 고도를 확보한 상태에서 급강하해 속도를 얻고 잠깐의 사격기회 동안 사격 후 다시 급상승 혹은 그대로 이탈하는 [[붐앤줌]] 전술이 도입된 것이다.[* 물론 유럽전역에서는 이미 기본전술로 사용되고 있었던 전술이었으나, 당시까지도 마땅히 2차 세계대전 수준의 '현대적인 공중전'에 대한 경험이 없던 미국으로선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붐앤줌]] 전술의 채택에는 전쟁 초기 동남아시아에서 A6M과 유사한 오스카 전투기와의 전투를 치른 [[플라잉 타이거즈]]의 경험을 바탕한 클레어 센놀트 소장의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 [[플라잉 타이거즈]]는 A6M과 교전했다는 보고를 올린 적이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말이다. 당시 플라잉 타이거즈가 배치된 지역에는 일본 육군 항공대만 있었기 때문에 해군 소속인 제로와 교전했을 리는 없다. 당시 일본군이 이 지역에 배치해두었던 전투기는 P-40B보다도 훨씬 구식 전투기인 [[Ki-27]] 네이트로 랜딩 기어도 고정형이고 일본군의 2~3선급 전투기였기 때문에 P-40B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후 일본군은 더 고성능인 [[Ki-43 하야부사]]를 이 지역에 배치하지만, 이때 즈음이면 플라잉 타이거즈의 조종사들도 매우 숙련된 상황이라서 Ki-43을 상대로도 호락호락하지 않고 거의 대등한 전투를 펼쳤다. 재밌는 사실은 하야부사와 조우한 플라잉 타이거즈의 조종사들은 이 신형기(?)의 외형과 특성을 보고 오스카가 아닌 제로와 교전했다고 보고했다는 것.] 또한 미 해군 항모 요크타운의 와일드캣 비행대대장인 존 타치 소령이 고안한 '''"[[타치 위브]]"'''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타치 위브]]는 2기 1편대로 두 대가 나란히 날면서, 한쪽이 제로에게 꼬리를 잡힐 경우 서로를 향해 교차 선회비행하며 동료기를 추격하는 제로를 사각에서 공격하는 전술이다. 또한 규모를 늘려 2기 단위의 두 편대로 실행할 수도 있다. 이 전술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처음 선보이며 제로 10기를 격추하며 와일드캣은 4기 밖에 잃지 않는 전과를 거두는 데 기여한다. 이후 미 해군 조종사들의 주요 대 제로 전술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이 전술이 잘 먹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방의 목표를 주시하는 동안, 시야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와 더불어 (이를 막으려면 다른 방향의 위험요소에 대해선 동료가 경고해 줘야 하는데 제로의 통신 성능은...) 아무리 상대에 비해 우수한 기체를 타고 있어도, 상대의 꼬리를 물고 조준선에 넣으려면 '상대를 따라서' 날아야 한다는 것. 더 빠른 전투기도 더 느린 상대만큼 날아야 하고, 더 날렵한 전투기로도 더 둔한 상대만큼 밖에 날 수 없다... 부분적으로는 제로보다 더 고성능 기체를 몰고 선회전을 벌이다 망신을 당한 미숙한 연합군 파일럿들의 오류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즉 A6M은 와일드캣보다 민첩하지만 와일드캣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경우는 와일드캣만큼만 날 수 있다. 물론 어디서든 강조되지만 이런 전술을 쓰려면 '맷집과 통신기'가 받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 부분은 독일공군 등이 일찌감치부터 '닥치고 [[붐앤줌]]'을 외친 이유와도 연관된다. 즉 꼬리를 물고 쫒아다니는 쪽보다는 순식간에 돌입해 말 그대로 적기를 순삭하고 역시 순식간에 이탈하는 쪽이 애써 달성한 성능의 우세를 풀로 발휘하는 데 좀 더 낫다는 것.) 이 상황에서 급강하 폭격대까지 끼어들면 어떻게 될 지는 [[미드웨이 해전]] 문서에서 ''''운명의 5분'''' 항목을 볼 것.] 이러한 대응전술이 자리잡기 시작하며, 제로의 악명도 점차 꺾이기 시작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 + 미 육군 항공대의 혼성 부대 [[캑터스 항공대]]는 저공성능이 좋은 육군의 [[P-39]] 에어라코브라나 [[P-40]] 워호크가 미끼 역할을 하고, 일본기가 미끼를 물면 고공에서 대기하던 해병대의 와일드캣이 [[붐앤줌]]으로 공격하는 낚시성 전술로 괴롭히기도 했다. 무전기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제로인지라 이런 식의 유기적인 협동전술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전술변화의 결과가 특히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 결과가 '취약한 방어력, 저효율의 무장, 쓸모없는 수준의 통신장비, 저속에선 우수하지만 고속에선 저하되는 기동성'이라는 제로의 약점과 '견고한 기체구조와 충실한 방어력, 효율적인 화력구성, 조직적 전투를 가능케 하는 신뢰성 있는 통신장비, 우세한 고속 기동성'이라는 F4F 와일드캣의 상대적 강점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단엽기의 탈을 쓴 복엽기.-- 본래 전략/전술이란 것은 나의 약점/상대의 강점은 최소화하고 상대의 약점/나의 강점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술책이다. 적어도 전쟁 초반까지는 적기를 1:1의 선회전투에 끌어들이기만 해도 제로는 무적에 가까웠고 적어도 저속의 선회전에서는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가 등장한 후에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싱가포르 전투 당시, 급하게 북아프리카로부터 차출되어 파견된 호커 허리케인들도 이 보크스 필터를 붙인 채 (게다가 폭격기 요격을 위해 기총을 12정으로 증설, 여러모로 뚱뚱해진 상태로) 전투에 투입되어 역시 피를 보았다고 한다. 반면 자바전투에서 네덜란드군은 보크스 필터를 제거하고 기총도 8정으로 다시 줄인 허리케인을 사용, Ki-43 하야부사를 상대로 선회전 싸움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봐야 12기 밖에 되지 않아 전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 했겠지만 말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Hawker_Hurricane#Burma.2C_Ceylon.2C_Singapore.2C_and_the_Netherlands_East_Indies|링크]])] 제로의 선회성능이 본질적으로 저속영역에서만 뛰어난 것임에도 선회전이 필살병기가 되는 이유는 애초 지속 선회라는 기동 자체가 지속적으로 고도와 속도를 잃게 만드는 기동이기 때문이다. 즉 선회를 계속하면 항공기는 느려지며, 동시에 하강하게 된다. 꼬리를 잡혀 격추당하지 않는다 해도 어느 시점에선 다시 고도를 올려야 하는데, 상승은 급속하게 속도를 잃게 만드는 기동이기도 하다. 이미 속도를 많이 상실한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까딱하면 스톨에 빠지기 좋은 상황이다. 가벼운 기체에 큰 날개를 지녀 뛰어난 저속선회력과 더불어 지속 상승력이 우수한 제로가 선회전의 강자가 되는 이유이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초기, 경험이 미숙한 연합군 조종사들은 단지 저속에서의 기동성의 열세 뿐 아니라, 그 선회전 중에 상승하는 제로를 쫒다 스톨에 빠져 자멸하는 일도 적잖았고, 이러한 상황을 유도하는 '에너지 트랩'은 특히 A6M을 모는 숙련된 일본군 조종사들의 주요 전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만일 적기가 이런 선회 교전상황에 말려드는 걸 회피하고, 급강하로 가속하여 빠져나가버리면 제로는 쫒아갈 방법이 없다. 같이 급강하해서 따라가려다간 공중분해될 수도 있으니까... 이는 실제로 제로를 몰던 일본군 조종사들에게도 꽤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었고, 과감한 전투기동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때문에 아예 미군의 제로 대응 교본에조차 대놓고 '기체 강도와 가속에 대한 심리적 영향으로 제약받는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여라.'라고 써놓고 있다.[[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intelsum85-dec42.pdf|#]][* 물론 상승력은 꽤 열세고, 수평비행 속도로도 다소 뒤처지는 와일드캣 정도가 아니라, [[P-38 라이트닝]]처럼 아예 수평속도와 상승력조차 제로보다 한참 빠른 상대라면, 언제 어떻게 전투를 벌일 지에 대한 주도권은 거의 완전하게 상대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고, 심지어 전투를 회피하고 빠져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아진다. 뿐만 아니라 '''고속 기동 한번 했다가 기체가 산산조각날 수도 있기에''' 제로 조종사들 입장에서 연합군 기체가 이런 기동을 하면 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전술로 전과가 향상되기는 했어도, A6M이 미해군이 사용하던 와일드캣에 비해 비행성능에서 우위에 있었던 점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때문에 미드웨이에서 A6M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음에도 미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모는 와일드 캣, 특히 F4F-4에 심각한 불만을 표출했으며 "엿같은 점"들을 보고했다. USS 요크타운의 함장의 F4F-4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 전투기 조종사들은 F4F-4의 기동성과 한결같은 화력에 대해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습니다. 제로는 손쉽게 F4F-3의 선회각과 상승속도를 압도했고, 새로 개량된 F4F-4를 몰아본 대다수의 전투기 파일럿들이 F4F-4가 F4F-3보다 훨씬 굼뜨고 느리다는 의견을 표시했습니다. 또한 F4F-4에 기관총 6정을 장착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총 수가 늘어난만큼 기관총 하나하나의 장탄 수가 감소되면서 호위기를 상대하다 일본군 급강하폭격기가 내습할 때 쯤이면 아군 전투기의 대부분이 탄약이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참고로 이는 경험 많은 파일럿들이 전투 후 보고한 것이며, 초보 파일럿들의 탄약 낭비가 아닙니다.[* 다만 이 반응은 F4F-4가 F4F-3에 비해 더 굼떠진 것에 대한 파일럿들의 불만에 맞춰져 있다는 것에 주의하자. 애초 와일드캣이 제로보다 상승력이나 선회력을 앞선 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그리고 F4F-4가 F4F-3에 비해 비행성능이 떨어지게 된 더 큰 이유는 기관총이 6정으로 늘어난 것 자체보다는 접히는 주익 탓이 더 컸다. 이후 프롭시대 그루먼 함재기의 특징이 되는 극도로 작게 접히는 날개는 접히지 않는 날개에 비해 무게도 더 무거웠고 저항도 컸으며 F4F-4의 경우 특히 증설된 기총이 외익에 장착되어 발사반동에 더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비행성능의 악화는 항모 한 척당 전술적 이점에 의해 충분히 상쇄되고 남았다. 그러나 사실 어느 조종사가 기본적인 비행성능이 적기보다 떨어지는 비행기를 모는 상황에서 기분이 좋겠는가? 게다가 그게 뭔가 탐탁치 않은 업그레이드의 결과로 안그래도 별로이던 비행 성능이 더 나빠진 것이라면? 어느면에서 미 해군 조종사들의 F4F-4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일선 조종사의 관점과 지휘부의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대전 후반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 등이 일선에 배치되자 주로 호위항모 탑재용으로 생산된 FM-1/2 버전에선 다시 기관총 4정으로 돌아갔다. 애초 이 기관총 증설이 독일군을 상대하던 영국해군의 요구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사실 방어력이 떨어지는 일본기를 상대하는 미 해군 파일럿들 입장에선 비행성능에도 마이너스요 무엇보다 지속사격시간이 급감한 부작용을 생각하면 괜한 [[옆그레이드]]로 여겨지는 것도 일리가 있다. 덧붙여 엔진 출력이 1200마력에서 1350마력으로 증가하고, 반면 중량은 F4F-3 때보다도 가벼워진 와일드캣 FM-2는 비행성능도 꽤 향상되어 일부 미군 조종사들은 '제로 후기형보다도 우수하다.'라고 약간 과장섞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FM-2와 A6M 52형 사이의 후기형 리턴매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그땐 이미 헬캣과 콜세어들의 등쌀에 태평양의 일본군 항공전력이 남아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1달 가량이 지난 1942년 7월 10일, [[알류샨 열도]]의 아쿠탄 섬에서 A6M이 온전한 상태로 [[노획]]되면서 그동안 미지에 싸여 있었던 제로의 기동성의 실체가 비로소 베일을 벗게 되었고 이후 미군측은 각 기체별로 제로에 대한 상대지침을 파일럿들에게 하달했다. 물론 이 부분을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은 이를테면 [[타치 위브]] 같은 성공적인 대응 전술이 등장한 것은 이미 [[미드웨이 해전]]시기. 즉 제로를 노획하기 이전이었기 때문. 실제로 이 시기에도 미 해군은 악전고투이기는 했지만 격추 비율로는 살짝 우세한 전투를 했었다. 그러나 어쨌든 상대 전투기를 실제로 시험해 본 결과 대응전술이 확고하게 자리잡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덧붙여 후대의 연구자나 밀리매니아들이 '아쿠탄 제로'를 자주 언급하게 되는 것은 한때 무성했던 '제로 신화' 탓도 있지만, [[타치 위브]] 등의 대응 전술이 제로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 현장 파일럿들의 경험에 기반해 응급처방으로 등장한 것과는 달리 '아쿠탄 제로'에 대한 미군의 분석과 대응은 실제 기체의 테스트를 통해 문서로 기록된 보다 확실한 '근거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술변화에 의한 전세역전을 두고 '그건 어디까지나 전술이 좋아서 이긴 거지, 항공기 자체의 우열과는 무관하다.'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오류이다. 모든 병기에는 언제나 그 병기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전술 운용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체첸전쟁#s-3.1|'전차를 보병 없이 단독으로 시가지에 밀어넣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혹은 기관총으로 방어선을 구성할 때, 각 기관총들이 그냥 정면으로 펼쳐진 대형의 적을 상대로 사격하는 것 보다 서로 사선방향으로 교차해 적 대열을 '세로'로 사격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던가. (덕분에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과 철조망이 조합된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교착된 참호전이 되었다.) 전술선택에 의한 차이가 좀 더 작아질지는 모르지만, 이는 동종의 병기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실전을 치러 본 군대'가 강력한 이유 중 하나다. 자신과 적군의 장비가 지닌 장단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적이 싸우자는 방식대로 말려들어 패배한 미숙한 군대의 미숙한 전술운용의 결과로 '우리 무기 그 자체가 그냥 세서 이긴 거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 전시의 [[프로파간다]]에서나 사용될 이야기다. 이를테면 독소전쟁 초기에도 분명 900여대 정도로 '소수'이긴 했지만 이미 [[T-34-85|T-34]]가 일선에 배치되어있었다. 비율로도 소수고, 무엇보다 허를 찔려 완전한 전선 붕괴상태에 처한 소련군의 상황에서 소수의 T-34야 있으나 없으나 거의 아무 차이도 만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전선의 독일군은 소련군의 위협적인 신형전차에 대한 보고서를 쏟아냈고 전선시찰 중 노획된 T-34를 조사해 본 구데리안은 '심각한 위협'이라 평가하며 신형 중전차 [[6호 전차 티거|티거]] 배치를 종용했고 더 나아가 '''[[5호 전차 판터|판터]]'''는 T-34에서 입증된 '''경사장갑을 대폭 적용한 설계로 변경'''되었다. 반면 제로의 경우는? 연합군이 노획된 A6M을 통해 그동안 현장의 전투경험에 기반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알음알음 입안되던 대응전술을 보다 완성된 형태로 체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로의 (기술적) 영향을 받은 신형기' 같은 건 없었다.''' 일본 우익성향 밀덕들의 대체역사 판타지 속에서가 아니라면. 연합군이 제로를 실물로 보고 깨달은 바는 제로가 '밸런스 파괴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들이 상성에 대한 이해 없이 늅늅한 대응을 해왔다는 것에 더 가깝다. 뭐 사실 티거나 판터의 기술적 영향을 받은 연합군 전차도 실패한 AMX-50 같은걸 빼면 없는건 마찬가지이긴 한데.] 미군은 서서히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제로에 대해 실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제로의 속도의 원천이 자신들의 전투기보다 훨씬 더 높은 마력(약 2,000마력)을 가진 엔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제로의 엔진은 940마력이었고, 오히려 뛰어난 기동성은 듀랄루민을 사용한 경량화 동체로 무게를 극단적으로 낮춘 것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규정된 최대속도를 초과하면 기체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사실 제로는 연료탱크 주변에 한 발만 맞아도 치명적이었다. 알아낸 사실들을 바탕으로 대응법을 개발하며 전세는 역전되어 결국 교전비를 따져보면 제로:와일드캣의 교전비는 1.5:1로 오히려 와일드캣 1대당 제로 1.5대가 격추됐다. 물론 이 교환비는 전쟁 전 기간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1943년 중반이면 미 해군의 일선 항모 항공대 대부분의 주력 전투기는 와일드캣이 아니라 [[F6F 헬캣]]으로 교체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교전비의 상당부분이 주로 1942년-43년 초, 즉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까지의 전투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제로의 전성기로 인식되는 기간이자 또한 와일드캣이 미 해군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로 가장 크게 활동했던,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까지 1942년 5월에서 11월 까지의 기간 동안의 전적을 살펴보면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까지 와일드캣과 제로 사이의 공중전에서 손실은 제로 14 : 와일드캣 10, 과달카날 전투에선 일본 라바울 항공대와 미 해병 1항공대 (캑터스 비행단) 사이의 공중전에서는 각각 제로 72기와 와일드캣 70기를 손실했고 함재기간 공중전에서는 제로 43기 손실에 대해 와일드캣 31기 손실로 1942년 5월에서 11월 사이의 A6M과 와일드캣의 공중전에서 제로 129기가 손실된 것에 비해 와일드캣은 총 111기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Edward Young, "F4F Wildcat vs A6M Zero-sen: Pacific Theater 1942] 즉, A6M이 가장 눈부시게 활약했다는 대전 초기조차도 따지고 보면 실제 전투에서는 전쟁 초기 A6M이 잠시 악명을 떨쳤지만 그 우세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역전되었던 것. 결국 제로 vs 와일드캣 교전의 결과는 전쟁 전 기간의 전투손실비 1.5:1, 1942년의 주요 회전에선 1.16:1 로 결국 교전비는 와일드캣이 좀 더 우세했다. 심지어 대전 초기 와일드캣의 조종사들은 실전경험은 커녕 일부는 전투기 자체를 처음 조종하는 초보 수준의 조종사인데 반해, 제로 조종사들은 1937년 중일 전쟁부터 전투기를 몰고 실전을 치러온 프로중의 프로였는데도 이런 비율이 나왔다!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에는 A6M과 3대1로 맞짱떠서 1대를 격추시키는 제임스 서덜랜드 소령과의 공중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누적된 데미지 때문에 결국 서덜랜드가 패배하지만 사카이 사부로의 A6M과 선회전으로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은 알려진 것처럼 선회전에서 압도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어차피 선회전도 넓은 의미로 볼 때 에너지 전투이다. 적 기체가 깊은 각도로 선회를 한다고 쳐도 롤 기동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면서 쫓아가면 선회 반경이 넓은 전투기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A6M이 고속에선 선회능력이 크게 감소된다는 특성을 이해하고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이는 전술 등등이 개발된 것도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제로의 경우, 고속에서 선회능력만 급감하는 게 아니라 급강하 문제도 있는데, 만든 재료부터 취성이 너무 강하다 보니 기체 강도가 종이비행기 수준이라 고속에서 급강하 기동을 할 경우 '''기체가 산산조각난다.'''] 그동안 많이 퍼져있던 제로의 일방적 우세라는 세간의 속설에 비하면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이러한 실제 전과를 따져본다면, 실상 (함상)전투기로서 A6M과 와일드캣 두 기종은 어느 한 쪽이 특별히 우세했다보다는 서로 장단점이 극과 극에 가까울 만큼 매우 달랐던 기체였을 뿐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두 전투기 사이의 대결을 쉽게 정리한다면 이런 식이다. 즉, 제로의 입장에선 와일드캣을 조준선에 올려도 기총 몇 방에 떨어져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함정이었고, 반대로 와일드캣의 입장에서는 일단 조준선에 제로를 올리기만 하면 그대로 불덩이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러기가 정말 쉽지 않은 상대였다는 식인 것이다. 그래서 몇몇 대담한 와일드캣 조종사들은 제로를 상대로 '''헤드온을 걸어서 박살 내버렸다'''. A6M이 손실비로는 결국 손해를 본 기대 이하의 전과를 기록하게 만든 마지막 변수는, 아마도 미군이 타치 위브를 비롯한 유기적 팀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었던데 반해 A6M은 존재가치 제로의 잉여스런 무전기 덕분에 상대의 전술적 발전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조직적 전투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에서 연유한 전술적 열세의 결과였을 것이다. 베테랑들의 각개전투가 초짜들의 팀웍에 막힌 것. 서로 장단점이 매우 다른 기체였던 A6M과 와일드캣의 대결에서, 비행성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A6M이 열세에 처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제로의 근본적인 한계, 즉 애초 제한된 기술적 조건에서 오직 극단적인 경량화에 의해 비행성능을 향상시킨다는 설계사상 자체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제로에 대한 와일드캣 조종사들의 대응 매뉴얼은 다섯 가지 상대적 장점에서 나온 것이다. 1. 더 견고한 기체 구조와 방어력, 2. 우세한 급강하 성능, 3. 고속영역에서의 롤, 선회 등의 우세, 4. 효율적인 화력구성, 5. 조직적 전투능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신뢰성 있는 무전기. 즉 제로의 우세한 상승력에 의해 기선을 제압당하고 불리한 전투상황에 처해도, 와일드캣은 불리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주된 이점은 급강하 속도와 부수적으론 롤 성능이었지만 당연히 제로의 주된 대 전투기용 무장인 7.7mm급 기총에 몇 발 피탄당한다고 곧장 추락하거나 조종사가 사상당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어력 역시 여기에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무선통신상의 강점은 애초 동료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걸 미리 알려줄 수도 있고, 불리한 상황에 처한 기체가 빠져나갈 때 무선으로 주위의 동료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이번엔 추격하던 제로가 때마침 적절한 위치에 있던 와일드캣에게 사각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 이런 상성의 조합을 의식적인 전술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치 위브]]이다. 이 전술은 애초 와일드캣의 우세한 맷집과 화력, 통신능력에 기반한다. 물론 수틀릴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급강하 능력도 포함해서 이다. 이에 비해 제로가 택할 수 있는 수단은 의외로 제약된다. 분명 뛰어난 상승력은 제로에게 전투의 주도권을 지닐 기회를 더 준다. 그러나 이를테면 동세대의 Bf109나 스핏파이어와 비교한다면, 이 기체들은 우세한 고도를 바탕으로 적기에 일격을 가한 후, 적기가 회피하거나, 급강하 가속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해도 마찬가지 높은 급강하 성능을 발휘하며 추격할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속도를 이용해 이탈,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고도를 회복하고 다시 일격을 가할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제로는 주도권을 쥐고 일격을 가해도, 그 일격에 상대가 격추되지 않고 빠져나가면, 전투의 주도권을 지속하는 방법은 상대를 저속선회전에 끌어들이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2차 대전기의 전투기들 중 제로처럼 선회전에 목숨을 거는 기체가 거의 드물었던 이유는, 선회전이 가장 에너지 손실이 큰 전법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기의 전투기와 비교하면 1차 세계대전기의 목재복엽기들은 기체가 낼 수 있는 속도와 기체의 중량에 의해 지닐 수 있는 총량적인 에너지는 얼마 없는 대신 양력과 저속 비행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물론 당연히 더 높은 고도를 차지하는 것의 중요성은 1차 세계대전에서도 강조된 사항이지만 한번 잃은 고도를 회복하는 것에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고도의 우위를 통한 주도권 확보 - 선제 공격 - 선회전이라는 루틴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이미 1차 세계대전 시기 에이스들에 의해 초기적인 형태의 [[붐앤줌]] 전술교리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까지도 한동안 선회기동력을 중시한 전투기 설계가 이어진 이유이다. 물론 2차 세계대전기의 전투기들 역시 레시프로기인 이상 현대의 제트전투기들과 같은 수직기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2차 대전시기의 전금속제 단엽의 고속기들은 적어도 고도-속도-고도라는 방식으로 운동 에너지를 보존해가며 전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일격이탈, [[붐앤줌]] 등 2차 세계대전부터 일반화된 에너지파이팅 전술은 모두 여기에 기초한다. 이는 한 번 주도권을 장악하면 공격이든 퇴피이든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번의 공격이후에도 주도권을 지속할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추력만으로 빠르게 고도회복을 할 수 없는 레시프로기로서는 고도를 회복하기 위한 지속상승이나 속도를 회복하기 위한 직선비행 같은 전술적으로 약점이 많은 기동형태에 덜 의존할 수 있다. 반면 에너지 손실이 큰 선회전에 들어가면 다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전술적으로 불리한 지속상승이나 직선비행 등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기동이 될 수밖에 없는 지속상승을 하고 있는데 교전거리 내에, 특히 같거나 더 높은 고도에 적기가 있었다면? 날렵한 기체와 그걸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뛰어난 조종사라면 어찌어찌 공격을 회피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투의 주도권이 상대에 넘어가버리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진짜로 뛰어난 조종사라면 애초 이런 상황 자체를 당하지 않도록 전투를 이끌겠지만. 하지만 미숙한 조종사일수록 선회과정에서 잃은 고도와 속도를 회복하기 위해 무턱대고 상승[* 지속 상승뿐만 아니라 급강하로 속도를 얻은 이후의 줌상승(Boom and Zoom Climb)까지 모두 포함하는 종합적인 의미다.]이나 직선비행을 하다 격추당하거나, 반대로 에너지 손실을 제때 회복하지 못해 실속하거나 심지어 저공에선 지면에 격돌해 추락해 버리는 경우조차 발생한다. 분명 제로의 우세한 선회능력과 확실한 지속상승력과 낮은 실속속도 거기에 미군 조종사들의 미숙함이 겹쳐, 전쟁 초반 일본군 조종사들은 선회격투전에서 우위를 점했을 뿐 아니라 제로의 우세한 지속상승력으로 적기를 스톨에 빠지게 유도하는 '에너지트랩' 전술 등을 통해서도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선회전에 말려들어준다는 걸 전제로 성립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상대가 최초의 일격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급강하 혹은 급강하-롤기동 등을 이용 선회전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를 회피하고 벗어나 버린다면? 급강하 속도가 낮고 따라서 급강하 가속으로 얻는 에너지를 활용한 줌 상승에서도 상대적으로 효율이 낮은 제로로선, 전투의 주도권을 지속하기엔 애로사항이 꽃피며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 된다. 제로의 장단점을 확인한 후 미군의 전술교리는 당연히 붐 앤 줌의 일격이탈을 중심으로 변화했고, 선회전 등에 말려들 것 같으면 곧장 교전을 회피하고 이탈하는 것이 공식 매뉴얼이 되었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기 전 미국 해군 항공대 소속의 비행단 지휘관 겸 조종사 존 S. 타치 소령이 1941년 9월 22일 Fleet Air Tactical Unit Intelligence Bulletin에 게재된 보고서를 통해 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타치 위브]]를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교전을 회피해 버리면 [[최불암 시리즈|적기는 누가 격추시키나?]] 그러나 이런 의문 자체가 사실은 '''"제로의 입장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군의 답은 '''"동료가"'''이다. 즉, 미군은 1:1의 전투에선 유리할 땐 공격하고 불리할 땐 회피하는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다수 대 다수의 교전에서는 유기적 협동과 조직적 전술을 통해 다수 대 다수의 교전에서 발생하는 기회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A6M과 일본군 조종사들은 1:1의 전투[* 다수 대 다수가 아닌 1:1인 이유는 무전기 문제가 원인이다. 제로의 경우 대규모로 맞붙어도 무전기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기에 동료기와의 연계가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흔히 제로의 맞수로 불리는 [[F4F 와일드캣]]의 경우 제로을 상대하기 위해 통상 두 대 편대로 비행을 하는 걸 원칙으로 하는 '''[[타치 위브]] 전술'''을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 이후부터 정식으로 도입해서 쓰는데 와일드캣이 이게 되는 이유는 무전기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속선회전까지 적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 초기 미군 파일럿들은 왜 제로와의 선회전에 쉽게 말려들어 제로의 밥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실전을 치르기 전, 훈련받은 기본 전술은 1차 대전시기 공중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특히 그 초반은 전간기에 눈부시게 발전한 항공기 성능이 본격적으로 공중전 교리에 반영되던 시점이다. 때문에 루프트바페와 일본군이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을 통해 2차 대전 직전 2차 대전 초기급 전투기를 이용한 공중전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유럽과 태평양에서의 서전의 항공우세에 그들이 운용한 기체의 성능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미 1930년대 초중반부터 전운이 감돌며 무기와 전술을 경쟁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유럽과 달리 대서양 너머 미국에선 상황을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제2차 세계대전 초기만 해도 미국이 갖고 있던 정책은 [[먼로 독트린]]에 의거, 상대가 나를 때리지 않으면 방관한다는 이른바 [[고립주의]] 정책이었다.] 이는 태평양은 물론 유럽전역에서도 미군이 초기에 졸전을 면치 못했고, 그 핵심이 전술적 미숙함에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일례로 2차대전 시기 미 육군의 유럽전역 첫 데뷔전이던 "[[튀니지 전투|카세린 계곡 전투]]"를 떠올려 보라.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시점에서 미군의 전술적 준비상태는 그 정도였다... 항공전이라고 달랐을까?[* 심지어 영국이 이미 일찌감치 1930년대 후반부터 레이더의 가치를 인식하고 레이더망과 효율적인 방공관제 체계에 투자하여 영국본토항공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과 반대로, 멀쩡한 레이더는 갖다 놓고도 결국은 레이더 활용 경험의 미숙으로 앉아서 두들겨맞은 것이 바로 [[진주만 공습]]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진주만 공습의 경우 미군을 옹호할 거리가 있는 것이, 일본 해군 연합함대가 대미선전포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공습을 한 것이니, 얘기가 다르다.] 사실 미군이 전간기 동안 그나마 연구해 놓은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전략폭격의 효용이다. 그래서 미군은 4발의 장거리 중폭격기를 개발하고, 노던 조준경을 비롯 고고도 정밀폭격을 위한 기술을 축적했다. 그러나 실전에서 얻은 첫 결과란 독일을 상대로 폭격기만을 동원한 무리한 주간폭격으로 무수한 탑승원들을 희생시키는 것 아니었던가.[* 물론 그들이 타고 나간 폭격기가 튼튼하고 잘 무장된 [[B-17]]이어서 그나마라도 살아 돌아온 것이기는 하다. 만일 그게 [[G4M]]같은 기체였다면... [[B-24]]가 불이 잘 붙는다는 이야기도 어디까지나 20mm 미넨게쇼스탄이나 나중엔 30mm 기관포를 쏘아대던 독일공군을 상대로 한 이야기다.] 심지어 태평양 전쟁의 이정표라고 말해지는 [[미드웨이 해전]]에서조차 엉성한 전술과 낡은 기체 그리고 [[어뢰 스캔들|엉터리 어뢰]]의 3중 막장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TBD 데버스테이터]] 부대를 떠올려 보라. 그런 미군이 서전에서 1차 대전식 공중전에 집착하다 쓸데 없는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많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성능적, 전술적 상성의 맞물림 속에서 펼쳐진 태평양 전쟁 초반 A6M과 와일드캣의 전투에서의 결과는 결국 대부분의 경우 그냥 해당 전투상황에서 더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는 상당히 평범한 수준의 결과를 기록했다.[[http://ultan.egloos.com/202197|#]] 서로의 장단점이 맞물리며[* 심지어 경험치로는 비교할 바 없이 높던 일본군 파일럿의 개별적 능력치조차, 미군의 조직적 전술 운용의 우위로 상쇄되었다.] 결국 전체적인 '전투능력치'는 엇비슷 했으니 쪽수 많은 쪽이 이기는 건 당연. 결국 연합군이 적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전술의 발전을 이룸과 동시에 제로의 영광은 저물기 시작한다. 일본이 아직 전략적 주도권을 쥐고있고, 태평양 전역에 더 많은 항모와 함재기를 투입할 수 있었으며, 숙련된 조종사들 또한 다수 확보 되어있던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전쟁의 초반동안 조차도 A6M은 서전의 깜짝 승리를 빼고는 아직 미군의 주력이 와일드캣인 시기에 이미 호각열세로 밀리기 시작한다. 산호 해, 미드웨이 그리고 특히 과달카날의 혈전을 거치며 일본 해군 항공대는 짧은 시간에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을 입고, 일본해군의 제공권, 제해권 장악은 실패한다. 다수의 항공기를 상실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조금씩 축적된 숙련된 항공요원 다수를 잃는다. 미군이 입은 피해는 항공기 손실도 일본보다 적었고 특히 항공요원의 상실은 두드러지게 적었다. 게다가 미국은 막강한 공업력과 훨씬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전쟁 초반의 피해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회복할 수 있었다. 서전의 충격에서 회복된 미국이 전시생산체제 전환을 완료하며, 새 항공모함과 거기에 탑재할 신형 전투기를 태평양 전선으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홀로 살아남아 '엔터프라이즈 VS 일본'의 사투를 벌이던 일본 해군의 담당일진 항모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와 '캑터스 항공대'의 와일드캣들의 자리에, 이제 풀빵 찍듯 취역하는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그 격납고를 채운 [[F6F 헬캣]]들이, 해병대의 지상기지엔 [[F4U 콜세어]]들이 속속 배치되기 시작한다. 개전 초기만 해도 [[F2A 버팔로|날아다니는 표적]]에 불과했던 연합군의 항공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F4U 콜세어|더 단단하고]] [[F6F 헬캣|더 좋은 성능으로]] 변했고 에이스 파일럿들이 성장하고 동시에 공중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애초에 미군 전투기들은 우월한 파워를 살린 [[붐앤줌]] 공격방식을 도입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붐앤줌이란 강력한 엔진 출력과 무게, 덩치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살린 공중전 방식을 말하며, 쉽게 말해 급강하 공격의 반복이다. 당연하게도 이 전술에서는 선회전 따위를 할 필요도, 이유도 없고, 선회전이 잘 걸리지도 않기 때문에[* 붐앤줌 전술은 일정 고도까지 올라가 아래쪽에 있는 적기를 겨냥해 급강하를 하고, 적기가 여기에 걸려들지 않을 시, '''그대로 다시 올라가 다음 기회를 노린다.''' 물론, 적기들도 속도가 빠르다면 그야말로 공중전이 벌어진다. 물론, 이 공중전은 1차대전 기체들이나 제로의 특기인 저속 선회전이 아니고 고속(적어도 4-500 mph 이상 속도가 유지되는) 이렇게 되면 먼저 속도를 잃거나 기체 특성상 기동이 느려지는 측이 패배하게 된다. 제로처럼 느리다면 적기를 따라갈 수가 없으므로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 적기가 도망가는 걸 보고 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걸 초 에이스 파일럿이자, '라바울의 마왕' [[이와모토 테츠조]] 마냥 속도조절을 염두에 두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억지로 쫓아가다가는 그냥 __'날다가 산산조각'__나기 십상이다.] 급강하 속도에도 제한이 걸려 있어서 선회전에 상대방을 말려들게 하는 전술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는 제로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당연하게도 격추비율이 [[넘사벽]]급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A6M은 서서히 쓸모없는 전투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1/A6M3_Munda_1943.jpg|1943년 솔로몬 제도의 문다 비행장 주변에 추락한 A6M3.]] 타국 전투기가 두꺼운 장갑과 강한 엔진을 사용하는데 반해 A6M은 경량 전투기라는 태생의 한계로 출력이 강한 엔진을 얹을 수도 없었으니[* 2,000마력급의 고출력 엔진 자체는 1941년 무렵에는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었고 [[Ki-84|이 엔진을 사용하는 항공기]]도 1943년 3월에는 배치되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러나 제로의 경우 기체강도를 보강하지 않고는 해당 엔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장갑은 고사하고 속도도 안 나오는 데다가 구조강도가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문제 때문에 고속도로 급강하할 수가 없었다. 덤으로 무리한 급강하 시도시에는 기체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 문제 때문에 테스트 파일럿도 희생되었을 정도다. 때문에 다른 동시대 전투기들의 공중전 전술이 [[붐앤줌]] 형태의 수직 기동 위주로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선회전에만 목을 매야만 했다. 이 말은 타국 전투기는 전황이 불리하면 물러나고 유리하면 공격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지만 일본 전투기는 철저하게 타국 전투기가 싸움을 걸어와야지만 싸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애초에 속도가 느리고 급강하 기동이 불가능하니 불리한 여건에서도 도망칠 수조차 없다. 그래도 숙련된 조종사들이 모는 A6M은 여전히 위협적인 상대였다고는 하나…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와 과달카날에서의 [[소모전]][* 이는 조종사 교육이 잘못된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현재 공격 목표가 잇는데 괜히 옆에 지나가는 적기를 공격했다가 귀환지점을 상실하고 한 대도 귀환 못 한 일본군 전투비행대 일화도 있으니.(...)]으로 태반의 베테랑들이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으니. 미군 에이스들 개개인의 전과가 독일이나 일본 에이스보다 떨어졌던 것은 이들의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순환 근무 체제가 잘 동작하는 덕분에 굳이 한 사람이 오래 전선에 나가 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출격 횟수를 채우면 후방으로 빠져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복귀하거나, 비행 교관 등으로 근무하거나 전쟁기금 모금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거나 했지만, 추축국 에이스들은 나날이 불리해지는 전황으로 그런 게 사치가 되어버렸다. 당장 사카이 사부로가 한쪽 눈을 실명하고 교관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출격한 전적이 있었고 이와모토 테츠조도 원래 산호해 이후 본토에서 교관으로 일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전황이 격해지면서 라바울로 불려갔다가 종전 때까지 비행기에서 내릴 수 없게 되었다. [[F6F 헬캣]]과 [[F4U 콜세어]]가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1943년 후반이 되면, A6M은 본격적으로 날아다니는 표적으로 전락하고 만다. 와일드캣 후계기로 일선 항모의 주력 함재기가 된 F6F 헬캣과의 교환비는 무려 13:1.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같은 참사까지 겪는 지경에 처한다. 결국 초기에 우위를 가졌던 미군들에게 칠면조 취급을 당하면서 평균 격추비는 11:1(대전기간 전체를 기준으로 볼 경우에는 10:1) 가까이 떨어지는 굴욕 끝에 전쟁을 종결하게 되었다[* 비행슈팅으로 욕먹는 IL-2 1946에 유저 모드를 설치하면 좀 더 자세히 구현된 비행특성을 체험해볼 수 있는데, 같은 미군 기체로 독일군 전투기들과 전투하는 상황과 A6M과 전투하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야말로 고급 AI가 모는 Bf109G-10을 따라가려면 P-51B/D도 전력을 다해 엔진이 과열될 정도로 기동해야 하지만(기총 사격에 속도가 살짝 손실되는 것 마저 아까울 정도로 빠른 속도에서 공중전이 전개된다.) A6M은 P-51보다 느린 헬켓으로도 일격일탈(성패 관계 없이)후 상승해 버리면 A6M은 지가 알아서 되돌아가거나 동료한테 죽어나간다. 그야말로 골라먹기, Turkey shoot 이다.]. 한 번의 전투로 투입 항공전력의 70%를 상실하며 일본 해군항공대의 주력이 붕괴 되어버린 저 유명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은 학살자에서 밥으로 전락한 제로 전투기의 비참한 종말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일본 해군은 멍청하게도 '''제로의 반 이상에 250kg 폭탄을 달고 전폭기 용도로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A6M이 [[P-47 썬더볼트|장갑이 좋다면 모를까]] 장갑이 허약한 제로에게 함선을 공격하라는 짓은 삽질 그 자체였다.그 덕에 둔중해지고 느려진 A6M은 헬캣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 이 날 헬캣을 주력으로 삼은 미 해군 제 58기동함대와 제로를 주력으로 삼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공중전 결과는 단순 격추비만 '''30 : 239'''.[* 더 심각한 사실 하나 추가하면 이 교환비가 필리핀 해 해전 전 기간의 교환비도 아니라 '''단 하루 공중전'''에서의 교환비라는 거다. [[필리핀 해 해전#s-3.5.1|필리핀 해 해전]] 문서 참고] 그리고 A6M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최초의 [[카미카제]] 격침을 기록한다. 그 덕에 A6M은 자살공격기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사실은 카미카제 초창기 '''숙련된 베테랑'''들이 A6M을 쓰는 바람에 그리고 일본군기 중 유명하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알려졌을 뿐이며 정말 많이 쓰인 것은 99식 함폭/97식 함공 같은 구식 공격기나 항공모함이 없어 쓸데도 없는 공랭엔진형 스이세이(정비소요가 큰 수랭엔진형은 당시 일본 사정으로는 카미카제로 쓰기에도 애로사항이 꽃폈다)나 텐잔이었다. 대전 말기가 되면 그것만도 못한 각종 잡다한 연습기 따위를 동원했고, A6M은 얼마 안 남은 베테랑들이 타고 초보들의 특공기를 호위하는 선도기로 주로 쓰였다. 애초에 태생이 경량전투기이므로 폭장용으로는 카미카제를 하든 안 하든 99함폭보다도 비효율적이었다. 애초에 그런 허약한 기체들로 급강하폭격 기동을 하다가는 충돌하기 이전에 급강하 하다가 공중분해되기 십상이니. 그리고 A6M이 카미카제에 비효율적인 이유는 폭장도 폭장이지만 카미카제를 할려면 급강하 수준으로 비행기를 내리꽂아야하는데 A6M은 시속 600km 이상의 속도를 내면 수평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니 급강하를 한다 한들 일저 속도이상으로 가버리면 결국 수평으로 돌아가서 적들한테 선체의 배 부분을 보이게 돼버리니 카미카제 성공확률은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투기를 아예 특공기로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원의 제로]]에서 주인공의 특공기는 A6M 21형이었다.] 물론 이꼴을 당한 것은, 상대는 일찌감치 후계기를 준비 중[* 헬캣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와일드캣이 해군항공대의 주력전투기로 채택된지 얼마 되지 않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었는데, 여전히 제로만 띄운 결과이기는 하다. 하지만, '후계기가 제 때 개발 안 돼서 이미지를 구겼다'는 식의 평가 또한 피상적이다. 애초 제로의 후계기가 제때 개발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엔진기술이었다. 사실 이미 전쟁 초기에도 A6M은 1000마력이 채 되지 않는 엔진을 사용한 반면, 그 굼뜨다는 와일드캣도 1200마력대의 엔진을 사용했다. 후기형은 1130마력대의 엔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시점엔 이미 2000마력대의 엔진을 단 괴물스런 적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덤으로 그 시점에 호위함대에서 운용되던 와일드캣들도 1350마력대의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된 상태. 더 나아가 A6M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스핏파이어와 Bf109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되며 전쟁 말기까지 최일선기의 성능을 유지했다. 특히 최대한 컴팩트하고 가벼운 기체를 지향한 것은 Bf109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기체 전체의 사이즈로는 Bf109 쪽이 더 작다. 하지만 ''''경량화한 기체와 최대한 강력한 엔진''''의 조합을 추구한 Bf109와, 저출력엔진에 맞춰 극단적인 다이어트만으로 비행성능을 짜낸 제로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은 시작부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Bf109는 덩치는 몰라도 무게는 제로의 1.5배정도로 스핏파이어와 동급이다. 즉 후계기의 개발이 지연되는 것도, 제로의 업그레이드가 상대에 비하면 옆그레이드 레벨에 멈춘 것도, 엔진개발의 곤란을 중심으로 한 동일한 문제였다.[* 사실 후계기의 개발은 엔진 자체의 문제보다는 수뇌부의 잘못된 이해와 공업능력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에 가깝다. 일본도 1943년 무렵에는 2000마력급의 출력을 가지는 엔진을 장착한 [[Ki-84 하야테]](프랭크)같은 기종이 배치되기 시작한 단계였으나, 하야테는 본격적으로 생산된 물건들이 잦은 엔진 고장으로 인해 쓸 것이 못되던 상황이었고, 제로의 후계기 [[A7M 렛푸]](샘)는 수뇌부가 익면하중을 낮춰서 격투전 성능을 올려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요구를 밀어붙인 탓에 개발이 지연되었고 그 성능조차 딱히 우수하다고 볼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기 때문.] 다만 독일, 영국의 육상전투기는 항속거리가 제로의 반도 안 된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만약 Bf109의 항속거리가 제로의 2/3만 되었다면 독일은 영국 항공전에서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로센이 너무 과도하게 항속거리에 집착했다는 소리도 되지만... 반대로 일본의 육상전투기는 함상기만한 항속거리를 요구받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힘센 엔진을 달기 수월했고 균형잡힌 성능을 낼 수 있었다. 즉 전반적인 기술수준 자체의 한계로, 제한된 시기에 제한된 방식의 우위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어 미드웨이에서 좌초하고 과달카날에서 몰락하기 시작하는 일본군의 운명과 딱 빼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T-34-85|T-34]][* 다만 육상전투는 공중전과 달리 다른 여러 병과(거기에는 공중지원도 들어간다)가 섞인 전장이 되는 만큼 직접적인 비유는 힘들다. 제아무리 T-34가 숫적 우세가 불가능해도 포격지원, 보병지원, 공격/방어 지형 등 상황에 따라 상당히 경우의 수가 달라진다. 도리어 공중전은 기체와 파일럿 기량이 좌우하는 부분이 더 크다.]의 경우처럼, 개개의 기술수준은 떨어지지만 전체 컨셉의 우위로 쓸모있는 병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이미 2차 대전부터 기술력의 총체라 할 수 있던 항공병기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었다. 나아가 A6M은, 컨셉으로 조차 딱히 앞서 있지 못했다. A6M은 전통적인 선회전을 중시하는 공중전 사상과, 반면 전금속제의 고속 단엽기가 전투기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1930년대 항공기술의 발전을 절충한 '미묘한' 전투기에 더 가까웠으니까. 물론, 이 '미묘한' 전투기가 나온 원인은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한' 수뇌부의 요구 때문이다. 일본군이 제공, 제해권을 상실하고 태평양의 섬이 하나 하나 미군에게 넘어가며, 이제 일본 본토에 [[B-29]] 폭격기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A6M은 [[B-29]]를 잡기 위해 출격했으나 B-29의 고도가 너무 높아서 빌빌거리기만 해야했다. 이는 과급기가 없는 자연흡기 엔진의 기본적인 특성 때문이다. 미리 특별한 조치라도 취하지 않았다면 고고도에서는 공기밀도가 크게 감소하여 엔진에 공급되는 공기량이 급감한다. 공기량이 부족해짐에 따라서 성능이 급감하게 된다. 따라서 이 부족한 공기를 채워주는 과급기(슈퍼차저 또는 터보차저)가 필요한다. 과급기는 공기를 압축하여 엔진에 공급하므로써 이 부족해지는 공기밀도를 보상해 준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서도 고고도 폭격기 요격은 과급기를 장착한 Bf 109가 맡았다. 마찬가지로 미군의 [[P-47 썬더볼트]]는 고공에서 엔진 출력을 보장하는 슈퍼 터보차저(최고급 슈퍼카에 달려 있는 터보엔진) 덕분에 뛰어난 고고도 성능을 발휘했지만, 개량도 제대로 못하는 일본에 그런 걸 기대하는 게 무리였다. 설사 올라갔다 하더라도 제성능을 발휘하기는커녕 B-29의 기관총에 맞고 떨어지기만 했다… 가장 웃긴 건 '''B-29의 최대속도가 제로보다 빨랐다는 것.''' 요격은 고사하고 한 번 뒤쳐지면 따라가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작전 가능 고도 문제도 있는데, [[B-29]]의 제원표를 보면 나오지만 '''B-29의 작전 가능 고도는 제로의 작전 가능 고도 대비 두 배는 더 높다.''' 그래서 B-29 폭격기 탑승원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A6M이 B-29를 쫓아 고도를 올리면 어느 순간 에프킬라 맞은 모기처럼 뚝 하고 추락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B-29의 진행 경로를 미리 파악해 지나갈 길에서 대비하다가 1번 겨우 패스하고 격추를 하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일본군에서도 제로보다 수랭식 전투기나 쌍발기를 이용했다만... 그러나 초기에는 제로보다 성능이 안 좋은 편으로 보았던 육군의 [[Ki-43 하야부사]]의 경우, 비행기 내구도를 높이고 2차 대전에 걸맞는 전투기로 개조하면서 제로에 비해 카탈로그 성능이 구려 묻혔지만 정작 미군들은 제로보다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2차대전 전사 연구가들은 중국 전선이나 동남아 전선에서 A6M과 조우, A6M과 교전으로 보고되었거나 문헌상의 기록으로 남은 것 중 대다수가 Ki-43 하야부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단 오스카나 제로나 모양이나 성능 모두 비슷하고, A6M이 압도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 일단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해당 전선에서 주로 활동하던 기종은 A6M이 아니었다.[* 당장 당시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중국 전선이나 동남아 전선의 경우 육군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해군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이것 때문에 해군이 저지른 게 [[진주만 공습]]이다.)] 여러모로 유럽전선에서 큰 활약을 벌였던 [[P-47 썬더볼트]]와 시작은 비슷하지만 (장거리 요격기[* P-47이 쑥재배에 유명하지만 본디 개발 목적은 고고도 요격기 혹은 엄호기였다. 즉, A6M과 마찬가지로 공중전 능력을 주력으로 쓰기 위해 디자인했다.] vs 장거리 함대 방공 전투기) 결과적으로는 정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기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