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6M (문단 편집) === 과도한 경량화로 인한 방어력 제로 === 제로의 성능을 요구한 일본 해군 수뇌부는 함대 상공에서의 체공시간에 대한 요구를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전투기로서의 성능 밸런스가 개판이 되었다.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허약한 방어력이었다. 물론 방어력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체강성이 개판이 되면서 무장플랫폼으로서의 안정성도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도 심각했고… 당장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조종석 뒷쪽에 설치되는 방탄판조차 없었다. 애초 한 덩치하는 미군 전투기들 뿐 아니라, 그 작디작은 Bf109도 방탄유리와 다른 전투기와 비교해도 두꺼운 13mm 짜리 조종석 방탄판을 우겨넣고 날아다닌 마당에... 그러나 제로의 경우, 극 후반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형식은 이런 최소한의 방탄설비도 없었다.[* 다만 한가지 유념할 사항은, 제로의 허약한 방어력을 말하며 간혹 'A6M은 장갑판이 얇다'고 표현하거나, 또 2차 대전기의 전투기 다수가 장갑판을 설치했었다 말한다고 해서, 2차 대전 시기의 전투기들이 전차나 장갑차처럼 기체에 장갑을 두르고 기본 외판으로 총탄을 튕겨내고 날아다녔다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A6M이 아니라 그 맷집 좋다는 [[P-47]]이든, 심지어 '날으는 전차' [[Il-2]]도 어디까지나 기본 외판은 1mm 내외의 얇은 알루미늄 합금제 판이라는 점에선 큰 차이는 없다. (아니 사실 Il-2는 초반 한 때는 경금속 재료 부족으로 후부 동체 일부를 목재로 만든 적도 었었다...) 따라서 당연히 A6M이 아니라 2차 대전 당시의 그 어떤 전투기 혹은 폭격기도 '기본 외판'으로는 기관총탄, 소총탄이 아니라 권총탄도 막아낼 수 없다. 전투기의 '장갑판'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체의 기본 외판이 아니라 조종석이나 엔진, 연료탱크 등 'Vital Part'에 제한적으로 설치되는 장갑재를 뜻한다. 그러나 제로의 경우, 극 후반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형식에는 이런 최소한의 방탄설비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전투기에 비해선 작은 2차 대전시기의 전투기라도, 기본적으로 길이와 폭이 10m 이상인 구조물이므로, 치명적이 아닌 부분에 한 두 발 피탄하고 관통된다고 곧장 추락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탄환을 저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정도의 피탄은 구조적 내구성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인데, 뒤의 항목에서 다시 언급되겠지만, 사실 A6M은 이 부분에서도 그닥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기체의 생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말해보자면 처음엔 어느 파일럿이든 [[초보]]이기 마련이다. 당장 [[에리히 하르트만]], [[사카이 사부로]] 등의 나무위키에도 등록된 명 파일럿들도 처음에는 초보였고[* 예외적인 사람도 없지는 않다. 사카이 사부로조차 능가하는 일본군 해군 최고의 파일럿 [[이와모토 테츠조]]가 이런 사례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는 여덟기의 적기를 잡는 동안 여섯번 기체를 잃었다. 그런데 생존성이 나쁘다는 것은 그 파일럿들에게 [[에이스]]/베테랑 파일럿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굉장한 손실이 된다. 그뿐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가 되면 이전 계급이 병이든, 부사관이든 닥치고 소위로 진급이 되던 미국과 달리 일본은 그냥 조종사 지원시의 계급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진급에 대해서도 엄청 짜게 굴었다. 당장 [[사카이 사부로]] 같은 병 계급의 에이스가 나오던 판이었으니 이런 일본군의 막장 행태에 대해서는 더 써야 손가락만 아파질 지경. 게다가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군 조종사들이 대부분 숙련병이었던 이유는 운 좋게도 그 전까지 상대했던 게 숙련도 0에 가까운 중국군 혹은 본토가 넘어갈 지경의 열강국들을 상대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전술적으로 넘사벽의 우위를 가진 상황에서 실전 숙련도를 쌓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것. 만일은 없지만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 전부 초짜 파일럿들이었다면 제로의 전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숙련 조종사가 바닥난 과달카날 전역 이후 상황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투에서 조종석 뒤 방탄판 덕분에 목숨을 건진 조종사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가 영국항공전 당시 정비병이 조종석 뒷쪽에 [[마개조]]해준 방탄판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이 있다. 핀란드의 [[한스 빈트]]도 [[계속전쟁]]중의 마지막 임무에서 소련 공군의 함정에 걸려 기체 중앙에 37mm 대구경 기관포탄이 명중, 큰 피해를 입고 급강하로 도망쳐야 했지만 조종석 바로 뒷쪽의 방탄판이 파편 피해를 줄여준 덕에 목숨을 부지 할수 있었다. 비행기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얼핏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비행기 정면에서는 서로 고속인 관계로 총알을 맞을 가능성이 적고, [[헤드온]]은 공중전시 어지간하면 피하는 기동일 뿐만 아니라, 맞아도 프로펠러기는 엔진이 앞에 있기에 엔진에 피탄될 가능성이 높지 조종사가 맞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꼬리를 붙잡혀 뒤에서 맞으면 무방비 상태인데다, 총알이 동체를 뚫고 의자를 통과해 조종사 몸에 박힌다!!! 그리고 이걸 막기위한 방탄판이란게 사실 엄청 두꺼운 것도 아니고 두께 1cm 정도 될까말까한 철판이다. 이 철판도 총알이 명중하면 뚫리는 건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뚫고 들어오는 총알의 에너지(운동 에너지)를 약화시키므로 조종사에게 피해가 가거나 주요한 부품이 파손될 확률이 줄어든다.[* 그래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준으로는, 7.62~7.92mm급의 소총 및 경기관총의 일반탄이나, 상황에 따라 철갑탄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M1 개런드]] 소총이나 [[M1919 브라우닝]] 기관총에 쓰이던 .30구경 철갑탄의 경우 50m에서 9~10mm 정도의 관통력을 지닌다. 물론 거리나 탄착각도의 문제나, 후방에서 날아드는 탄환은 대체로 후방 동체를 뚫고 들어온 것이므로 얼마라도 위력이 감소한 탄이니, 이 정도까지는 막아질 수 있다. 그리고 전투기 등의 방탄장갑은 균질압연장갑 같은 것이 아니라, 경전차 등의 경우처럼 표면경화 장갑 - 그것도 가능한 고품질의 것 - 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관총이나 기관포 같은 소구경 화기에 대해선 일반적인 RHA 보다 좀 더 방호력을 발휘했다. 나아가 공중전에서 선호된 것은 철갑탄 같은 종류 보다는, 항공기의 내부장비나 구조를 더 많이 손상시킬 수 있는 소이탄류나, 기관포라면 고폭탄 계열. 따라서, 더 대구경의 탄환이 날아다니는 상황이라 해도, 8~10mm 수준의 방탄판 한 장이 있고 없고가 조종사의 생사를 가르기에는 충분하다. 나아가 실전에서는 5~7mm 정도의 장갑만으로도 상당한 방호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체로 장갑을 좀 더 넓게 쓰는 경우이며, 그 경우에도 조종석 방탄판은 10mm 내외를 사용한다.] 참고로, 꼬리를 잡힌 채로 맞아도 상대속도로 따지면 총알의 제 속도를 그대로 맞는 것이므로 파괴력은 육상에서 쏘았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보아도 된다. 다만, 공중에서는 기본적인 거리가 멀고 심한 맞바람(비행기가 날아가는 속도)상황에서 발사하는 것이므로 약간 위력이 반감될 수 있다. 게다가 이쪽이 속도가 더 빠르다면 위력은 더 줄어들게 된다. 한편 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석옆에 뭔가 가만히 떠있길래 손으로 잡았는데 알고보니 뒤에서 쏜 총알이었다는 [[도시전설]]이 있을 정도다. 적 전투기의 속도+(날아오는 동안 속도가 줄어든) 총알의 속도가 해당 전투기의 속도와 비슷해서 상대속도가 0이 되어버려 공중에서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얘기. [[총알잡기]] 항목 참조. 또한 2차 대전 당시 전투기들 다수가 조종석 뒤편의 방탄판과 더불어 엔진블록 위쪽과 조종석 사이 즉, 계기판 위치와, 엔진 부근 특히 오일쿨러 등에 방탄장갑을 설치하곤 했다. 그리고 기내 연료탱크 주변에도 부분적인 장갑이 설치되기도 했고, 좀 더 충실한 조종사 방호를 위해 조종석 뒤편 외에도 조종석 주변에 상대적으로 얇은 5 ~ 6mm 수준의 보조 장갑을 설치하기도 했다. [[http://users.skynet.be/Emmanuel.Gustin/fgun/fgun-ar.html|참조]] 물론 A6M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며, 설상가상으로 후기 A6M을 제외하고선 '''캐노피 재질도 방탄유리[* 사실 유리도 아니라 아크릴 수지, 쉽게 말해 플라스틱 판이다.]가 아니었다.''' 참고로 라이벌이던 와일드캣의 조종석 전면 방탄유리 두께는 70mm. 다만 일본 해군은 A6M이전까지 대량으로 파일럿을 손실한 경험이 없어 이 점이 빈약한 방탄설계에 참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육군의 하야부사가 방탄판을 갖추고 나온 건 1939년 노몬한에서 숙련 파일럿을 잃었고, [[Bf 109]] 또한 허리케인에게 대량으로 파일럿을 잃으면서 더 살려보려고 E형부터 방탄설비가 증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등장하는 연료탱크 이야기. 와일드캣, 헬캣 등 미군 전투기들 대부분은 자동방루 탱크를 사용했다. 미 해군의 자동방루 탱크는 전쟁기간 동안 12.7mm급 기총탄의 피해 정도는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미군 만이 아니라, 이미 영국본토항공전 당시 영국과 독일의 전투기들도 자동방루 탱크를 사용했다.[* 덧붙여, 태평양 전쟁 기간 활동한 미군기 중 방탄설비와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를 제대로 장비하지 않은 채 날아다니던 대표적인 기종이 바로 'A6M 신화'의 밑거름 중 하나였던 '''[[F2A 버팔로]]'''였다.] 사실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라는 게 기술적으로 딱히 복잡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일본도 1920년대 전반부터 자동방루 탱크를 개발해 3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장비가 안 되던 바람에 라바울 등지에서 공중전을 지켜보던 일본군들 사이에서도 "검은 연기 나면서 떨어지는 건 미군, [[불|오렌지색으로 폭발]]하고 떨어지는 건 아군." 이라고 구분할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2차 대전 영상들을 찾아보면 연합군기는 시커면 오일이나 연기를 뿜아내며 추락하는 영상들이나 심지어 벌집이 된 채로도 생환해서 불시착하는 영상, 그 상태로 항모에 착함하다 사고나는 영상등등이 많은데 유독 일본군 기체들은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거나 공중폭발하는 장면이 많다. 당장 The fighting lady영상을 봐도 일본기체들은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거나 산산조각나는 영상이 여럿 나오는데 연기를 풀풀 뿜으며 추락하는 기체는 하나도 안 나온다. 현재의 제트 엔진에 쓰이는 제트유가 등유를 주로 하는 혼합유라 상대적으로 불붙기 어려운 것과는 반대로 2차대전 당시의 레시프로 엔진은 전적으로 [[휘발유|가솔린]]을 사용하기 때문에 방어면에서 취약하다. 그만큼 일찍이 자동방루 연료 탱크나 자동소화장치같은 장비가 개발되어 기체들에 장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숨은 내다버리는 것]]인 일본군부는 그것을 무시했고 그탓에 다른 기체들에 비해 훨씬 자주 불이 붙었다. 게다가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숙련공이 마구 징집되어 그나마 높은 편이던 기계적 신뢰성도 추락을 거듭했고 석유 부족으로 불순물이 잔뜩 섞인 저질 가솔린이 사용되고, 심지어는 송진을 이용한 합성유까지 섞어 만들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언급되는 전쟁 말기 솔방울 수집이 이것. 이 합성유가 의외로 쓸만했다지만 당연하게도 저질 연료가 들어간 엔진이 자동 폭발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지경이라 초기에 세운 명성을 자기가 깎아 먹었다. 게다가 A6M은 항속거리를 늘리려 주익에도 연료탱크를 집어넣었다. 주익에 연료 탱크를 탑재할 경우 치명적인 피탄면적이 더욱 넓어지기 때문에 당시 군용항공기는 방탄설비 설치의 용이성 등을 이유로 가능한 엔진과 조종실 부근에 연료 탱크를 위치시켰다. 물론, 더 큰 이유는 날개 강도 문제였다. 특히 동체와 날개가 연결되는 부분. 날개가 무거워지면 이 부분이 가장 부서질 위험이 커진다. 쉽게 말해서 날개에 달린 모든 것들이 이 연결부분에 '''매달려'''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 당시 기술로는 얇은 날개에 연료 탱크와 안전장비를 넣고 기관총까지 설치해 발사하며 급격한 기동을 했다가는 날개가 부러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 이 때문에 유럽의 Bf109나 스핏파이어는 항속거리의 한계로 많은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스핏파이어는 애초에 개발목적이 단거리 방공요격임무를 가진 기체라 항속거리를 길게 요구하지 않았고 운용도 거기 맞춰서 했기에 심하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109도 영국 본토항공전 정도를 제외하면 항속거리가 심하게 딸린적은 없었고.] 그러나, A6M은 주익까지 연료=가솔린을 채우면서도 연료탱크의 자동방루 처리 등은 없었다. 몰라서가 아니라, 더 많은 연료를 넣으면서도 기체중량을 줄이기 위해서 한 일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A6M은 다른 전투기보다 더 가벼운 체급임에도 잘못 맞으면 훅 갈 수 있는 'Vital Part'는 허벌나게 넓은 기체라는 것. 거기다 한술 더 떠 32형부터 엔진이 교체되면서 동체 연료탱크가 좁아지는 바람에 항속거리가 떨어졌고 이걸 보완하기 위해 22형 이후부터는 취약부위인 익내 연료탱크 용량을 늘렸는데, 당연히 이는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쳤다.[* NHK 다큐멘터리 零戦ニ欠陥アリ(제로센에 결함 있다)에서 지적된 사항.] 또다른 문제는 날개에 연료탱크가 있어 피격시 불타오르기 쉽다는 것인데, 원래 예광탄이나 소이탄 계열은 공중전에서 애용되던 탄종이다. 미군 뿐만 아니라 당연히 제로도 예광탄과 소이탄을 포함한 탄종구성을 하고 전투에 참여했다. 즉 뭐가 날아올지 잘 알면서도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 즉 피탄 취약부위가 아니라면 맞는다고 곧장 타오르지는 않겠지만, 서너발 간격으로 섞여 날아오는 소이탄, 예광탄 같은 걸 조금만 얻어맞아도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것.[* 그런데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진행자가 제로의 날개부분을 재현한 다음 기관총의 API탄도 아니고, 사냥용 엽총의 일반 납탄자 Buckshot으로 쏘았는데... 관통된 다음 바로 불이 붙었다고. 어쩌면 소이탄까지도 필요 없었는지도... 당시 프롭기 연료로 쓰던 고옥탄가 가솔린은 매우 불이 잘 붙는 물질이다. 현재 가솔린이나 액화가스를 취급하는 주유소에서도 담배의 ㄷ도 못 나오게 하는 이유가 이것이며 휘발유 주유시에는 정전기마저 위험하다. 그런데 그게 들어있는 통에다 총을 쏘면 자연히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면서 국지적으로 열 발생 혹은 스파크가 튀게 되고...(자동방루 장치 고무는 사실 이걸 막는 것이다. 장갑재처럼 튕겨주는 게 아니고.) 그 뒤에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도 이런 실험을 했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한 사람은 "한 방에 불이 붙었네요. '''저런 전투기에 누가 타고 싶겠어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독일의 에이스인 [[에리히 하르트만]]이 미군의 건카메라를 감상한뒤 "'''일본군의 기체가 탄에 맞으면 간단하게 불타오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이런 설계를 단순히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태평양 전선에서는 긴 항속거리가 굉장히 중요했다. 육지에서라면 연료가 떨어지면 지상에 불시착해 도망치거나 구조신호라도 보내겠지만 태평양에서 그러면 결국엔 고기밥 행이라고 봐야한다. 그래서 역시 함재기인 와일드캣도 유럽 전선의 전투기보다 항속거리가 길었고, 미군은 조종사가 실종되었다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수색을 했다. 때문에 주익에까지 연료탱크를 탑재해 항속거리를 확보하려 한 것 자체는 어찌보면 납득할 수도 있지만, 제로의 경우 날개를 비롯해 전반적인 기골의 강도가 영 좋지 않았고 방루탱크 등의 설비가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 것과 맞물려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그 당시 항공기들에 주로 탑재되었던 20mm급 기관포에 대해서 유의미한 방호를 제공할 수 있는 방탄판을 연료탱크 주변에 설치한 전투기는 '''거의 없었다.''' 그 시대의 자동방루 탱크들도 기껏해야 기관총탄의 피격 정도나 막아낼 뿐이지, 기관포탄의 직격에는 버텨내는 게 불가능한 물건들이었다.[*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는 연료탱크의 안이나 바깥을 고무로 감싸 피탄시 연료의 누출을 고무가 막는거지, 고무가 탄을 방어하는 게 아니다.] 물론 미 해군의 자동방루 탱크는 때때로 20mm탄에 맞고도 연료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항상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기본적인 '매뉴얼상의' 방호력은 12.7mm 급의 피탄에 버틸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도 그럴 게, 20 mm 기관'''포''' 부터는 [[고폭탄|탄약도 적중 시 폭발하는 물건]]을 주로 사용한다. 고작 고무 한 겹 덧댄 자동방루 탱크가 폭발물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도리어 이걸로 막았다는 케이스가 사실이면 그 만큼 '''일본군의 포탄이 제 할 일을 못 했다는 소리다(...)'''[* 당연한 일이지만 포탄 생산기술이 떨어지면 같은 구경 포탄이라도 내부의 작약량도 줄어들고 불발률도 높아진다.]애초에 자동방루 라는 용어 자체가 그저 자동으로 기름이 새는 걸 막는다는 의미다. 장갑판 개념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보통 7.62 ~ 7.92mm급 탄종 정도를 방어할 수 있는 조종석 뒤편 방탄판의 무게만 따져도 50~60kg 이상이었다.[* 물론 스핏파이어 초기형의 경우 조종석 뒤편 방탄판의 무게는 33kg 정도였지만, 전쟁이 진행되며 장갑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Spitfire F Mk.21에 이르면 13mm 기관총탄은 물론, 탄착각도에 따라서는 20mm 철갑탄까지 막을 수도 있을 정도까지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는 독일 전투기들도 마찬가지여서, 특히 후기에는 12.7mm탄 방어를 기본 수준으로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제로의 맞수였던 와일드캣의 조종석 방탄판은 68kg, 헬캣의 경우는 96kg 정도. 기본적으로는 경기관총 급, 상황에 따라서는 중기관총탄 정도를 막는 것이 목표였지만, 탄속이 다소 느린 A6M 초기형의 99식 1형 20mm 기관포탄의 경우 와일드캣의 방탄장갑에 막히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http://users.skynet.be/Emmanuel.Gustin/fgun/fgun-ar.html|참조]]] 즉, 연료탱크 전체 특히 익내 탱크를 이런 방탄장갑으로 두른다면 수백 킬로그램 이상의 중량증가가 생기기 때문에 웬만해선 할 수가 없었다. 좀더 변론을 해 보자면, 날개에 연료탱크를 집어넣은 기체가 영전만은 아니다. 그 [[P-51 머스탱]]조차도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 주익에 연료탱크를 집어넣었고, 오히려 '''면적만 따지면 영전의 연료탱크보다 더 넓다.''' 제로와는 다르게 머스탱의 기골은 튼튼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뭐가 어찌되었던 독일기들이 쏴제끼던 [[미넨게쇼스]] 같은 것에 맞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자동방루 탱크고 뭐고 아무런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실재로 비슷한 이유로 날개에 연료를 넣었던 P-47도 나치 독일군과의 격한 공중전에서 날개에 불이 붙는 적이 많았다.[* 그런데 [[P-51 머스탱]]을 A6M과 단순 비교하기엔 어폐가 있다. P-51 머스탱은 애초에 장거리를 날아가는 중폭격기의 호위기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함대 호위를 맡는 함대 방공전투기로 나온 A6M과는 목표부터 다르다.] 그러나 제로의 경우는 그런 기본적인 방탄설비조차 대부분의 버전에서 '''생략되었기 때문'''에 20mm나 12.7mm급은 고사하고 7.7mm급 기관총탄에조차 기본적인 생존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기체가 튼튼하고 방탄, 내탄 설비가 갖춰져 있다면, 설령 미넨게쇼스 같은 강력한 고폭탄이라도[* 물론 너무 정통으로 맞으면 연료탱크가 어쩌고가 아니라 그냥 날개가 부러져나간다...] '설맞으면' 버틸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알루미늄 캔에 가솔린을 가득 채운 (그리고 결과적으로 유증기 방지 대책도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제로센은 고폭탄을 맞으면 연료탱크에 직격탄이 아니어도 활활 타오르는게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다행히도(?) 미군이 독일이나 영국과는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줄창 그냥 중기관총만 썼기 때문에 더 험한 꼴 안보고 '연료탱크에 맞고 불타는' 선에서 끝났다ㄴ(...)] 거기에, 주날개 연료탱크 자체는 쓰기 나름이다. 2차대전기 프롭전투기들은 주연료탱크와 1회용 외부연료탱크, 그리고 주연료탱크도 각부의 연료 소비를 조정해 무게중심을 조정하거나 소비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는데, 주날개에 저장된 연료를 먼저 소비하고 전장에 도착하면 그만인 것이다. 앞서 말한 P-51의 경우 연료사용 매뉴얼이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달리 A6M이 단 한발만 맞아도 불이 화르륵 붙는 기체는 아니었다. A6M이 불이 잘 붙는 것은 피탄시 위험 부위가 넓으면서도 방어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것이 이유였다. 피탄 취약부위 이외에 명중할 경우 대부분 전투기들처럼 구멍이 나고, 너무 많이 구멍이 나면 양력을 잃고 추락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http://m.blog.naver.com/mig17/150030146782|반면 하야부사의 경우에는 제로와 달리 주날개에까지 여러 발을 피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환한 사례가 있다.]][* 제로의 사례라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제로와 오스카의 형상은 서로 비슷해 흔히 혼동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동체의 모양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해당 블로그의 글에는 주로 날개에 많이 피탄당했다고 기술했는데, 방루장치없는 연료탱크가 장착된 날개야말로 제로의 취약부위이며 피탄취약부에 맞지 않는다는 앞의 말과 완벽히 모순된다. 그러나 Ki-43과 A6M은 모양이 비슷하다보니 착각하기도 쉽다. Ki-43을 잡고도 제로를 잡았다고 보고하기도 하고 A6M을 잡았으면서 오스카를 잡았다고 하기도 한다. 이 역시 정보공유조차 하지 않고 비슷한 기종을 만들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 낳은 삽질.]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일이, 일본군부나 개발사가 정말로 '몰라서', 또는 '기술력이 부족해서' 한 일이 아니다. NHK의 A6M 관련 다큐에도 나왔듯 방탄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초반부터 설계자들로부터도 꾸준히 제기 되었지만, 일본해군의 입장은 '필요없다'였다. '날렵하게 피해서 안 맞으면 된다'는 식. 그러나 과달카날 전투를 치르고 항공기 탑승원의 손실을 크게 당한 후, 일선 조종사들 등은 방탄문제에 대한 요구를 다수 제기했고 1943년 6월 이 문제를 놓고 일본 해군과 전투기 개발자들 사이의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 배석했던 [[겐다 미노루]]가 꺼낸 말은 '야마토혼으로 돌파'였다. '가볍고 좋은 전투기를 받았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라고... 당시 아직 '중좌'밖에 안 된 겐다 미노루가 이런 식이었으니, 더 높으신 분들의 사고는 뻔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방탄에 대한 요구는 '야마토 혼으로 돌파'당했다...[* 좀 웃긴 사실을 말하자면 육군의 [[Ki-43 하야부사]]는 이미 방탄판과 방루탱크를 갖추고 있었다.[[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Ki-43-152A.pdf|#]] 육군은 [[할힌골 전투]]의 전훈으로 비교적 빠르게 갖췄다고는 하는데 그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전훈을 교환하지 않았다]]. 단순히 일개 기종의 문제가 아니라 [[폭격기무적론]]의 문제점 등 항공전략 전반의 금쪽같은 노하우도 교환하질 않았다. [[http://wgforum.kr/kancolle_war_museum/7431186|일본 전사연구가의 관련 글]].] 그런데, 과연 내탄능력이 제로라도 '날렵하게 피하면 된다'는 말은 당시의 공중전에서 현실적인 주장이었을까? 물론 애초 잘 피해서 조준선에 안 오르고, 안 맞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전투라는 것이 원하는대로만 진행될리 만무한 일이다. 게다가 제로의 문제는 2차 대전 초반의 당대 기준으로도 생존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공중전은, BVR이든 WVR이든 기본적으로 'Km'거리에서 미사일 날리고 튀는 현대의 공중전과 달리 수백 미터 이내, 가까우면 수 십미터 거리에서 기관총을 퍼부으며 벌이는 난타전이었다.[* 괜히 심심치 않게 전투 중 공중충돌의 사례 같은 게 나오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P-47의 일반적인 기총 조준선 정렬 거리는 330m 정도였고 다른 미군기들도 200-300m 정도에 맞춰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국공군 역시 보통 230m 정도로 맞춰놓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110m에 맞춰놓기도 했다. 독일공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https://en.wikipedia.org/wiki/Gun_harmonisation|참고]]이는 보병의 소총전 거리, 그것도 [[전투소총]]기준이 아니라 [[돌격소총]]의 교전 거리다. 이는 상황에 따라선 그 이상의 근거리에서도 교전이 벌어진라는 증거다.[* 시속 수백 Km로 날아다니는 적기에 무유도의 탄환을 적중시키려면 최대한 달라 붙는 것이 사실 당연하니까. '상대 조종사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는 식의 증언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20m까지 붙어서 사격했다는 [[에리히 하르트만]]을 비롯, 에이스면 에이스일수록 그렇게 바로 등 뒤까지 붙어 확실한 명중탄을 날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회고는 결국 그 전투들에서 적을 격추하고 살아남은 파일럿들의 이야기다.) 다만 폭격기, 특히 방어기총으로 사방을 도배한 중폭격기를 상대로 쓸데없이 들러 붙으면 사망이다.] 그런 거리에서 제로의 7.7mm 기총 2문 경우 분당 2000발, 즉 초당 30발 이상의 탄환을 퍼붓고, 미군 전투기가 장비한 AN/M2 기총 4~6문 정도라면 분당 3000-5000발, 초당 50~80발의 총탄을 쏟아낸다.[* 이 시기 조종사들이 소비한 탄약 중 착탄율이 2-5%라는 이야기도 있다.[[P-47 썬더볼트#s-5|#]]] 그렇다면 적기의 사선에 1~2초만 올라도 명중탄을 맞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 수 십 기 이상의 전투기들이 뒤엉켜 날아다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많은 눈먼 탄환까지 날아다니고 있겠는가.[* 교전거리가 짧다는 것은 더 밀도 높은 전투공간에서 날아다니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게다가 대부분의 전투에선 폭격기와 요격전투기, 호위전투기가 뒤엉킨 가운데 사방에서 대공포화가 작렬하는 상황도 자주 벌어진다. 당연히 호위 혹은 요격 전투기가 적은 물론 아군의 대공포화에 피해를 입는 일도 다반사다.] 즉 제트기와 특히 미사일 이후의 공중전처럼, '먼저 보고, 먼저 쏘고, 나는 안 맞고'하는 '우아한' 전투를 항상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물론 날아오는 총알을 일일이 피하라는게 아니라 더 날렵하게 움직여서 애초에 사선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의미라면 이것보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디서 날아와서 어디로 박힐 지도 모르는, 눈먼 총알들이 날아다니는 전장의 사정을 무시하고 방탄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까일거리 확정이지만. 그런데 사실 그 우아한 전투라도 양 측이 서로 다 스텔스라 BVR전개가 불가능하면 다시 근접전을 할 수 밖에 없어질 수도 있다. 애초에 비등한 국가 혹은 집단끼리 싸우게 되는 전면전에서 우아한 전투는 없다. 애초에 현대 공중전은 WVR로 들어가게 되면 고추력 엔진과 추력편향노즐을 아낌없이 장착한 전투기와 미사일들이 실속, 선회력이라는 레시프로 비행기들의 개념을 박살내버리는 입체적인 기동을 보여준다. 실속 속도에서 기수를 들어올린 상태로 상하좌우 춤을 춘 뒤 강력한 추력으로 기수를 내리고 실속을 씹어먹어버리는 기동이 가능한게 요즘 최신 전투기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방탄 및 내탄설비가 등장 시점부터 종전 시점까지 쭉 참전국 전투기를 통틀어서도 최소 수준으로만 유지됐던 A6M을 갖고 손실이 경미할 수가 없다. A6M은 다른 전투기라면 귀환했을 손상이나 어쩌다 재수없게 맞은 탄환에 기체를 상실하는 일이 보다 빈번했고, 결국 전체 통계로 보면 이런 재수 없는 손실이 꾸준히 쌓여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는 거꾸로 당시의 공중전에서, 다른 무엇보다 조종사의 능력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입증한다. 게다가 [[일본군]]에게는 정말 유감스럽게도, 태평양 전쟁 초반 미군 파일럿들 스스로도 자기들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본군 파일럿들에 비해 기량이 뒤쳐진다고 자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만큼은 '우리가 더 잘한다'고 자신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항공사격술"이었다.[* 사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의 하나는 2차 대전 개전시점까지 지속되던 미 해군의 괴랄한 조종사 훈련 시스템 탓도 있다. 전쟁 초반 미군 조종사들이 실전경험이 없어 전술적 능력에서 일본군에 떨어지는 거야 당연할지 모른다고 해도, 미군이라고 조종사 경력 자체로는 꿀리지 않을 베테랑 조종사들이 없었을리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미 해군은 항공모함 비행대의 조종사들에게 항모에 탑재되는 모든 종류의 항공기를 다 훈련받도록 하는 훈련방침을 갖고 있었던 것. 즉, 전투기 비행대에 배속된 조종사라고 해서 계속 전투기를 몰고 공중전 훈련에 집중하던 조종사가 아니라, 급강하 폭격기도 몰다가, 뇌격기도 몰다가 하는 식으로 훈련받은 조종사들이었다는 것이다. '항공모함은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인력으로 항공전력을 운용해야 하므로, 항모에 배속된 조종사들은 항모에서 운영하는 모든 항공기를 조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평시에는 얼핏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는 논리였는지 모르지만... 정작 실전을 치르고보니 당연히 모든 조종사들이 모든 분야에서 적보다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가장 직접적으로 적의 파일럿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되는 전투기 조종사에서 그게 가장 두드러져 보인 것이지만, 뇌격기나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라고 해도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거 몰다 저거 몰다 하면서 대부분의 다른 스킬은 제대로 못 올렸다고 해도, 어떤 종류의 기종을 몰던 - 들인 시간에 비해선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 그나마 쌓이는 스킬 중 하나가 바로 "항공사격술"이었던 것. 물론 당연히 실전에서 곤욕을 치른 미 해군은, 기존의 훈련방침을 폐기하고 전문화된 조종사 훈련코스로 바꾼다.] 그리고 이는 앞서 '실전' 부분에 인용된 것 처럼, 결과적인 교전비로는 분명 승자인 미 해군의 와일드캣 파일럿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이 몰던 전투기에 대해 불만을 토했는지 이해하게 해 주는 부분이다. 즉 그들이 겪은 전투는 정말 얄밉게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적기를 상대로, 여기저기 두들겨 맞는 걸 맷집으로 버티며 펼친 악전고투였기 때문이다[* 근데 맺집으로 버티는 것도 숙련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적의 탄환을 최소한 맞으면서 징크 기동을 해야 하는데, 이러려면 왠종일 뒤를 보고 비행해야 한다!]. 당연히 전투 동안 적기의 꼬리를 물고 몰아붙이는 쪽은 와일드캣을 탄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숙한) 미군 파일럿들보다는, 기동성 좋은 A6M과 거기에 탄 숙련된 일본군 파일럿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전투에서 '''결국 살아서 돌아간 것은 미군 조종사들'''이었다. 심지어 타고 나간 비행기는 거덜이나서 중간에 추락하거나, 간신히 착륙한 후라도 결국 폐기처분 되었을지언정 말이다. 그렇게 살아 돌아간 미군 조종사들은 숙련 파일럿,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파일럿]]이 되어 전장에 돌아가거나, 교관이 되어 후배를 양성하였다. 반면 심지어 우세한 전투를 벌이고서도, 혼전 중에 어쩌다 얻어맞은 '럭키샷' 고작 몇 발에 [[파이어볼]]이 돼버린 전투기와 함께 산화한 쪽은 일본군 파일럿들이었고 말이다.[* 실제로 당시 와일드캣을 타고 A6M을 격추시켰던 미군 파일럿들의 회고담을 보면, '꼬리를 잡고 사격을 가해 격추시켰다' 보다는 자신을 향해 강하해오는 A6M을 헤드온으로 격추시켰다 같은 다소 '비전형적인' 회고담이 적잖다. 당시 미군파일럿들에 대해 일본군조차도 (기량은 떨어지지만) 공격의욕은 넘친다고 칭찬하곤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 말하자면 설령 자기 꼬리에 A6M이 붙어 총탄을 맞으며 쫒겨다니는 상황에서도, 눈 앞에 적기가 보이면 무조건 쏘고보는 - '날렵하지만 유리몸의 A6M과 둔하지만 맷집 좋은 와일드캣' 사이에서 어떤 식의 공중전이 벌어졌는지 얼마간 짐작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전투에서 손실비로는 거의 비슷한 결과가, 자세히 따지면 A6M이 되려 좀 더 많이 격추되었고, 인명피해로 가면 일본군 조종사가 확실히 더 많이 전사하는 결과가 나왔다...] 태평양 전쟁의 주요 공중전에서 일본군은 항공기 손실 비율 이상으로, 항공기 탑승원의 사상 비율에서 대부분 미군을 '앞섰다'.[* 이를테면 아직 전쟁 초반인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은 69대의 항공기를 손실하며 35명의 항공기 탑승원을 잃었지만, 일본군은 92대의 항공기를 손실하며 90명의 항공기 탑승원을 잃는다. 물론 그 다수는 제로 조종사들보다는 폭격기나 뇌격기 승조원이었을 것이지만, 부실한 내구력과 방어력의 문제는 일본군 항공기 전반의 문제였기 때문에 제로도 마찬가지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비단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어도 기본적인 비행 실력과 전투 경험을 살릴 수 있으므로 샛병아리 처음부터 키우는 것 보다 적은 비용으로 전반적인 조종사들의 수준을 유지시킬 수 있다. 심지어 외견상 일본군은 정규항모 1척과 경항모 1척 손상에, 미군은 정규항모 1척 침몰과 1척 손상으로 외견상 일본군의 승리로 보였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도, 미군이 81기의 항공기를 잃은 데 비해 일본군은 그보다 많은 92기의 항공기를 잃었을 뿐 아니라, 미군이 26명의 항공기 탑승원을 잃은 데 비해 일본군은 그 여섯 배에 가까운 148명의 항공기 탑승원을 잃는다. 전투에 동원된 일본군 뇌격기 항공기 탑승원 49%, 급강하폭격기 항공기 탑승원 39% 그리고 전투기 항공기 탑승원 20%가 사망했다. 방어력이 취약한 항공기와 육탄돌격 수준의 무리수를 강요하는 전술이 겹치며 불러온 결과였다. 이러한 항공기와 특히 항공기 탑승원의 손실로 일본군의 항모기동부대는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이후 [[과달카날 전투]]의 후반부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는 결국 일본군 패배의 한 요인이 된다.] 그 결과 일본군 몰락의 기점으로 평가되는 [[과달카날 전투]]가 아직 한창이던 [[산타크루즈 해전]]의 시점에서, 일본 해군항공대는 개전 초 진주만 공격에 참여했었던 765명의 베테랑 항공기 탑승원 중, 그 절반이 넘는 409명이 이미 전사해버리는 회복 불능의 인적손실을 입는다. 이 여파는 이후 일본 해군이 남은 여력을 다 긁어모아 감행했던 [[필리핀 해 해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방어력 제로의 전투기를 굴리며 베테랑 조종사 다수를 상실한 일본 해군항공대는 헬캣 등의 등장으로 이미 기체성능조차 절대열세로 밀리는 상황에서, 남은 조종사마저도 적기의 기습에 혼비백산 놀라 우왕좌왕하다 격추당하는 오합지졸 무리 뿐인 상태로 전락해있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일본해군 항공대는 사실상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필리핀 해 해전을 일컫는 미군측 별명이 괜히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 아니다. 일본군도 완전 바보는 아니라 미군과 싸우면서 방루탱크와 방탄장비의 부재를 깨닫게 되었지만, 대전 중기에 들어서며 기본 설계의 한계도 있고 미국이 신형기를 개발하면서 일본 역시 제로의 개량형들을 내놓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영전은 방루탱크 장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가게 된 탓도 있다. 결국 1943년의 52형부터는 자동소화장치가 탑재되는 등 어느정도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었고, 1944년 후반 52형 '을' 부터는 45mm 두께의 조종석 방탄유리가 설치되기 시작했으며 '52형 병' 부터는 자동방루 탱크와 조종석 방탄판 등도 설치되기 시작한다. 조종석 방탄유리도 55mm로 더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물론, 그 시기가 매우 많이 늦은 시기였고, 이미 제로라는 기체는 제아무리 가장 최고의 상태라 할 지라도 비행 성능과 물량에서 미군을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로의 괴멸적인 방어력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미군 B-24의 승무원 중 하나가 M1911 권총으로 A6M을 격추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https://ww2db.com/person_bio.php?person_id=1034|Owen Baggett]]은 1943년 3월 31일에 [[B-24]]의 승무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본군 제로의 공격으로 기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제로들은 [[전쟁범죄|비상탈출하는 승무원들을 공격해서]] 두 명을 죽였고, 오웬 바게트는 [[M1911]] 권총을 뽑아들어 제로에게 발포했다. 제로는 멈추더니 아래로 떨어졌고, 바게트는 무사히 지상에 내렸지만 일본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그에게 할복을 권했지만 바게트는 거부했고, 전후에 무사히 돌아왔다. [[https://www.warhistoryonline.com/world-war-ii/shot-down-a-zero-with-his-m1911-whilst-in-hisparachute.html|관련기사]]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측에서는 그날 그 지역에 출격한 전투기는 A6M이 아니라 64전대의 [[Ki-43 하야부사]]였으며, 64전대의 기록에 따르면 인명손실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미국측 기록에 머리에 .45구경 탄환이 박힌 조종사 시체가 언급되는것으로 보아 격추되긴 한거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