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BOSE (문단 편집) == 역사 == 보스는 [[MIT]] 출신의 아마르 보스 박사[* 아버지가 인도 출신인 인도계 미국인이며 Bose 라는 성 역시 인도 계열의 성이다. 이 성씨를 가진 유명인으로는 [[찬드라 보스]]가 있다.]가 1964년 설립하였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아마르 보스는 50년대 MIT 학생일 당시 샀던 고가의 스테레오시스템의 소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데 실망했다. 그때부터 음향 공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콘서트홀에서 경험하는 소리의 80%가 사실은 벽과 천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원리를 응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스테레오 [[스피커]]를 개발해냈고 64년에 멘토이자 MIT 교수인 Y. W. 리 교수의 권유로 보스를 창업한다. 그는 MIT의 고급 연구진과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 등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보스는 이때부터 철저히 음향이론과 실험에 입각하여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한다는 방침을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러한 음향과 과학의 결합은 생소한 조합이었고, 자연스레 기존 스피커들이 가지고 있던 통념에 도전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후 68년 그가 만들어낸 Bose 901 Direct/Reflecting 스피커시스템은 25년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Bose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다. 1967년 보스의 첫 공식 모델인 '보스 901'부터 파격 그 자체였다. 이 제품은 기존 스피커와 달리 스피커를 뒷면에 8개, 앞면에는 고작 한 개만 배치되는 설계를 갖고 있었다. 앞면보다 뒷면에 달린 스피커 갯수가 많았기에 고객들이 앞뒤를 혼동해 반대로 설치하는 일도 허다했다. 콘서트장에서 들리는 소리의 성분을 연구진이 직접 분석해본 결과 직접 들리는 소리는 고작 11%에 불과한 반면, 반사음은 무려 89%에 달했다.[* 물론 스피커와 엠프가 모두 1kw를 넘는 대 출력이면 직접음이 더 크게 들린다.] 당시 901 스피커의 설계는 이러한 간접적인 반사음까지도 모두 고려하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결과였다. 단순히 좋은 소리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청음자의 환경과 경험까지도 고려하는 최초의 스피커 였던 것이다. '89:11' 법칙이라 불리는, 보스의 이러한 실험 결과는 오늘날의 제품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최신 음향기술이 집약된 901 모델의 성능은 예상대로 뛰어났지만 높은 가격과 생소한 디자인 탓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유닛이 하나 있는게 앞이고 8개 있는게 뒤인데 '유닛이 많이 있으니 거기가 앞이겠지?' 하며 잘못 설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기괴한 유닛 배치는 앞서말한 '89:11'을 적용한 것이다. 즉 8개의 유닛을 벽을 보게 설치해서 반사음과 직접음을 동시에 잡은 것이다. 게다가 전용 EQ도 있는데 일반 유저중 그거 만져서 룸 튜닝[* EQ로 청음하는 방의 특성에 맞춰 튀는 주파수는 컷하고 묻히는 주파수는 부스트해서 20hz~20khz까지의 대역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 구덩이를 메우고 동산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할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디오필도 하기 힘든 EQ 세팅은 이 제품의 낮은 인기에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이후 901 모델을 소형화한 301 모델이 시장에서 좋은 평가[*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데다가 오래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다는 장점 때문에 엄청난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를 받으며 판매가 늘기 시작했고,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형 음향 시스템 시장에 뛰어들며 보스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오늘날 보스가 한동안 독보적인 수준을 보여주었던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1968년부터 구상됐다. 보스 박사는 스위스 항공을 이용해 해외로 가던 중 비행기의 소음이 매우 거슬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외부 소음을 제거할 수 있는 오디오 기술의 기본적인 수학적 계산을 비행기가 운항하는 동안 간단히 마칠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파동이 자신과 정반대 위상을 가지는 파동을 만나게 되면 상쇄되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소리 또한 파동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음을 받아 완전히 반대되는 모양의 파동을 스피커로 쏴줄 수만 있다면 소음을 말끔하게 상쇄시킬 수 있었다. 즉 정위상과 역위상을 이용해서 소음을 상쇄시킨다는 간단한 원리다. 그러나 그 간단한 아이디어가 현실의 제품으로 나오기위해 1978년부터 1989년까지의 11년이라는 시간과, 지금도 꽤 큰 금액인 5천만 달러(약 568억 원)의 개발자금이 필요했다. 보스 박사는 개발이 마무리 되고 나서야 투자된 금액의 규모를 알게 되었는데, 그 조차도 "우리 회사가 상장기업이었다면 나는 수백 번도 더 쫓겨났을 것이다"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보스는 노이즈캔슬링 분야에서 후발주자와 큰 격차를 벌리며 1위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며[* 보스가 노이즈 캔슬링을 히트시키자 많은 기업이 따라하기 시작했지만 하나같이 보스보다 못한 성능을 보여 다들 비싼 가격에도 보스를 찾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 소니가 겨우 따라잡았다.], 특히 파일럿, 군용 제품 등 특수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인정 받게되었다. [[파일:bose-301-series-ii.jpg]] * Bose 301 : 80년대 아직 소형 스피커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비교적 적은 사이즈(43.5 cm x 26.8 cm x 23.5 cm / 무게 7 kg)[* 80년대 당시에는 이게 소형 스피커였다.]로 장르나 기기를 가리지 않고 좋은 소리를 내주는 스피커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어서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다.[* 고장이 잘 안 난다는 장점 때문에 중고 II, III, IV가 더 많이 거래되는 편이다. 2002년 나온 301 V는 목재 유닛을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크기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음질이 심각하게 다운그레이드되었다는 악평을 들으면서 외면받는 상황.] 301 스피커의 대성공 이후 Bose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카스테레오시스템 등을 내놓으며 오디오계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한다. 현재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전세계 12개국에 자회사를 운영한다. 90년대부터 경쟁 업체들에서 소형 북쉘프 스피커들의 성능을 개선하고 2002년 301, 201 스피커가 목재 재질에서 플라스틱 재질로 변하면서 음질이 개악되는 바람에 경쟁 업체들에게 스피커 시장의 상당 부분을 내주어야 했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uneeeeeee&logNo=70001981885|참조]] 그러나 다시 애플의 아이팟이 출시된 이후 Bose사에서 출시한 아이팟과 아이폰을 겨냥한 신제품들이 호평을 받으며 다시 부활했다. 주식이 공개되지 않은 [[비상장 기업]]으로 상당수의 지분을 보스 박사가 가지고 있었는데, 2011년에 매각하지 않고, 경영에 간섭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회사의 이익 배당만 챙길 수 있는 조건하에 MIT측에 자신이 가진 주식 대부분을 기부했다. 창업자 보스 박사는 2006년 [[MIT]] 교수직에서 은퇴했으며, 2013년 7월 12일에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