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ADOKAWA (문단 편집) == 명칭과 역사 == 2019년까지는 [[카도카와 쇼텐|1대 카도카와 쇼텐]](2019년 당시의 사명은 KADOKAWA)이 지주회사이자 1대 KAKOKAWA로서 카도카와 그룹을 총괄하고 있었으나 2019년에 KADOKAWA·DWANGO(2019년 당시의 사명은 카도카와)가 1대 KADOKAWA(1대 카도카와 쇼텐)의 사업을 승계받고 사명을 KADOKAWA로 변경해 2대 KADOKAWA가 되었다. 1대 KADOKAWA(1대 카도카와 쇼텐)는 사명을 'KADOKAWA Future Publishing'로 변경하고 중간 지주사가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1945년, '카도카와 겐요시'가 [[카도카와 쇼텐]]을 설립했다. 카도카와 쇼텐은 1998년에 [[도쿄증권거래소]] 1부시장에 상장되었다.[* 종목코드는 9477이다. [[http://www.bloomberg.com/apps/quote?ticker=9477:JP|블룸버그의 증권 정보 페이지]] 후술하겠지만 이 주식은 KADOKAWA·DWANGO로 이전되면서 2014년 9월에 상장 폐지되었다.] 카도카와 쇼텐은 수많은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해 카도카와 그룹을 형성했으며, 2003년에 '카도카와 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지주회사]]가 되었다.[* 이후에 [[카도카와 쇼텐]]이라는 이름의 회사들이 분사되어 다시 설립되기도 했으나 이 회사들은 카도카와 그룹의 자회사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회장은 카도카와 쇼텐의 사장이던 '카도카와 츠구히코'. 2006년에는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2013년에는 'KADOKAWA'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014년 10월 1일, 카도카와 그룹과 도완고의 통합 회사인 'KADOKAWA·DWANGO'가 설립되었고 주식이 이전되어 KADOKAWA는 KADOKAWA·DWANGO의 자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KADOKAWA·DWANGO가 지주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카도카와 그룹을 총괄하는 실질적 지주회사의 역할은 KADOKAWA가 수행하고 있었다. 2015년 10월 1일, KADOKAWA·DWANGO의 사명이 '카도카와'로 변경되었다. 2019년 7월 1일, 'KADOKAWA'의 사명이 'KADOKAWA Future Publishing'로 변경되고 '카도카와'의 사명이 'KADOKAWA'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KADOKAWA(前 카도카와)가 KADOKAWA Future Publishing(前 KADOKAWA)로부터 사업을 승계받아 카도카와 그룹의 완전한 지주회사가 되었다. KADOKAWA Future Publishing은 중간 지주사가 되었다. 알기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45년 ~ 2014년 9월: 카도카와 쇼텐 → 카도카와 홀딩스 →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 → KADOKAWA 2014년 10월 ~ 2019년 6월: KADOKAWA·DWANGO → 카도카와 / KADOKAWA가 KADOKAWA·DWANGO(카도카와)의 자회사가 되었으나 업무는 제대로 이전되지 않아서 여전히 실질적 지주회사의 역할을 수행. 2019년 7월 ~ 현재 : KADOKAWA → KADOKAWA Future Publishing / 카도카와 → KADOKAWA / KADOKAWA(前 카도카와, 前 KADOKAWA·DWANGO)가 업무를 승계받아 완전한 지주회사가 됨. 본 문서에서는 1대 KADOKAWA(前 [[카도카와 쇼텐|1대 카도카와 쇼텐]], 現 KADOKAWA Future Publishing)와 2대 KADOKAWA(前 카도카와, 前 KADOKAWA·DWANGO)에 대해 둘 다 서술하고 있다.[* 문서 상단의 회사 프로필은 2대 KADOKAWA(前 카도카와, 前 KADOKAWA·DWANGO)다.] 기업 총수의 퇴임 과정이 별로 깨끗하지 못한 편이다. 카도카와 쇼텐의 설립자이자 1대 사장이었던 카도카와 겐요시는 두 아들, 장남 카도카와 하루키와 차남 카도카와 츠구히코에게 회사를 물려줘서 1975년에 하루키가 카도카와 쇼텐의 2대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1992년 9월에 하루키와 츠구히코가 경영 노선의 차이로 인해 서로 대립하자 하루키는 츠구히코를 부사장직에서 해임한다. 이에 츠구히코는 분노해서 사토 타츠오[* 카도카와 츠구히코의 최측근. 카도카와 그룹의 사장이자 2인자였다. KADOKAWA·DWANGO의 1대 사장이자 2대 회장이기도 하다. 원래는 게임 및 완구 관련 기자였는데 1982년에 카도카와 쇼텐이 컴퓨터 관련 잡지를 만들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츠구히코에게 찾아가 잡지를 만들 거라면 이런 잡지가 어떻겠냐고 기획서를 제출했고 이 기획서가 통과되어 콤프틱이 창간된다. 사토 타츠오는 츠구히코의 권유로 자신이 창간한 잡지사인 콤프틱에 입사했고 이후 카도카와 미디어 오피스로 이적, 1992년에는 츠구히코를 따라 카도카와를 퇴사하고 함께 [[미디어 웍스]]를 설립한다. 츠구히코가 카도카와 쇼텐에 복직하고 사장이 된 이후에도 여러 중역을 맡다가 카도카와 그룹의 사장이 된다. 2018년 6월에 카도카와 그룹에서 퇴임하고 [[코에이 테크모|코에이 테크모 홀딩스]]의 사외 이사로 취임한다.]를 비롯한 카도카와 미디어 오피스[* 카도카와 쇼텐의 자회사로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던 회사였다.]의 대부분 직원들과 함께 카도카와 쇼텐을 퇴사하고 [[미디어 웍스]]를 설립했다. 그런데 1993년에 하루키가 [[코카인]] 밀수로 잡혀가자 츠구히코가 카도카와 쇼텐으로 돌아와 4대 사장으로 등극했다.[* 3대가 아닌 4대인 이유는 하루키가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워낙 급히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탓에 당장 회사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카도카와 쇼텐의 전무였던 오오하라 쿠니미츠가 3대 사장으로 취임했었기 때문. 하지만 츠구히코의 복권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나 겨우 1달만 사장직에 있었다.] 그리고 츠구히코는 카도카와 쇼텐을 오늘날의 카도카와 그룹으로 키운 뒤 1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1993년부터 2022년까지 약 30년 동안 카도카와 그룹을 키우고 회장으로 군림하던 츠구히코였으나 그 또한 [[2020 도쿄 올림픽]]의 [[뇌물]] 공여 혐의로 체포되어 2022년 10월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카도카와의 2번째 수장이었던 하루키와 3번째 수장(그룹 1대 수장)이었던 츠구히코가 둘 다 불명예스럽게 퇴임하게 된 것. 카도카와의 설립자이자 1대 사장인 카도카와 겐요시 또한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이혼과 재혼은 물론이고 혼외 자식이 여러 명이라 구설수가 많았다고 한다.[* 원래 이혼할 때 츠구히코는 엄마 쪽에서 양육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츠구히코가 아빠 겐요시에게 안겨서 울었던 탓에 겐요시가 츠구히코도 양육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츠구히코가 엄마를 따라갔다면 카도카와 쇼텐과 카도카와 그룹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장남이었던 카도카와 하루키도 아버지의 여성 편력을 이어받아(...) 5번의 이혼과 6번째 재혼 끝에 배다른 자녀가 3명이나 된다.] 2010년 일본의 디지털 미디어([[벨소리]], [[전자책]] 등) 서비스 회사이자 당시 니코니코의 운영주체였던 도완고와 업무제휴를 했고, 2011년 6월 자본제휴까지 맺으며 10월 12일자로 미디어 팩토리의 모회사라 할 수 있는 리쿠르트에서 미디어 팩토리 주식 100%를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에 전량 매도 합의하며, [[MF문고J]]도 카도카와 그룹 산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는데 이로서 카도카와는 일본 라이트 노벨 업계의 큰축인 [[전격문고]]와 MF문고J를 손에 넣음으로써[[ 라이트 노벨]]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을 이루게 되었다. 2013년 10월 1일부로 자회사 9개([[카도카와 쇼텐|3대 카도카와 쇼텐]], [[아스키 미디어 웍스]], [[후지미 쇼보]], [[미디어 팩토리]], [[엔터브레인]], 카도카와 학예출판, 카도카와 프로덕션, 카도카와 매거진, 츄케이 출판)를 합병하여 사내 컴퍼니로 재편했다. 이외에도 카도카와 영화 등을 자회사로 갖춘 회사가 되었다. 이 일환으로 카도카와 2020 엑스포를 개최하여 라이트노벨 5개 회사가 전부 참여한다. [[https://kimirano.jp/special/lnexpo/|#]] 2015년에는 사내 컴퍼니제를 폐지하고 브랜드로 재편했다. 2016년 4월 [[오키나와]]에 쌍방향성 통신 고등학교인 [[N고등학교]]를 설립했다. IT·문예·디자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교사로 채용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카도카와(前 KADOKAWA·DWANGO)가 상장된 지 3년 만에 주식이 반토막나고 말았다.[* 상장 당시 2100대에서 1100대로 떨어졌다. 한국으로 치자면 몇 천이 하락한 것과 같다. 결국 '''몇백억'''이 공중분해됐다.][* 2016년 여름에도 반토막까지 갔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 미디어 믹스 판권을 얻는데 성공을 해서 주식이 1600까지 올라왔던 적도 있었다. --곧바로 떡락했지만--] 아무래도 [[케모노 프렌즈 1기]]의 감독인 [[오모토 타츠키|타츠키]]의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1기 스태프 강판 사태|강판 사태]] 때문에 [[인과응보|평판이 악화된 것]]이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2019년 11월 중순부터 반등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3월 전세계 증시 대폭락 전 고점은 19년 12월 27일에 기록한 2137엔. 코로나 19로 인해 1022엔까지 떨어졌으나 두 달 만에 전고점을 회복, 신고점을 계속해서 갱신하며 2020년 8월 21일 기준으로 최고점 2811엔을 달성했고 금요일 장마감 기준 종가 2801엔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20년 11월 6일.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에 있는 사쿠라타운이 개장했다. 본사는 도쿄도 치요다구 후지미2초메 13-3에 있다. [[https://tokorozawa-sakuratown.jp/hotel/hotel.html|호텔 홈페이지]] 2021년 1월 26일자 기사에 [[카카오(기업)|카카오]]가 지분 7.3%를 보유하면서 KADOKAWA의 최대주주[* '''KSD-NH'''가 이보다 더 높은 지분인 8.31%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KSD-NH는 [[시티은행]]이 상임대리인으로 되어있는 카카오 계열 지분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KSD-NH는 KADOKAWA 말고도 여러 곳에 투자를 하고 있다.[[https://twitter.com/michsuzu/status/1407312829762338822|#]][[https://irbank.net/KSD-NH|#]]]로 등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https://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21012600393597643|#]] [[픽코마]]의 콘텐츠를 애니화시킬 수 있는 KADOKAWA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서, KADOKAWA와 디지털 콘텐츠 영역에서의 장기적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2021년 2월 4일. [[소니]], 사이버 에이전트와의 재정 협력을 발표하였다. 소니와 사이버 에이전트는 카도카와의 지분을 각각 2%을 구매하여 IP를 개발 및 홍보에 협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카도카와에 또 악재가 발생하는데 그건 바로 넷플릭스의 일본 시장 진출. 넷플릭스는 미래 인재양성을 위해서 뛰어난 인재들을 스카웃해왔는데 카도카와는 이로 인해 꽤 큰 타격을 입었다. 2021년 8월 17일, 2013년에 흡수합병한 자회사들의 브랜드를 축소 운영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점차 기존 브랜드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에 카도카와 만화 아카데미와 카도카와 애니메이션 성우 아카데미가 도쿄와 오사카에 개교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