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STAR (문단 편집) == 개발 및 건설과정 == 196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와 물리학과에서 [[플라즈마]]에 대한 연구를 면면히 진행해온 이래, 1970년대까지 플라즈마 발생장치나 플라즈마 발생에 대한 연구가 간헐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어져 오던 중 서울대학교에서 1979년에 Seoul National University Tokamak의 머리글자를 따 SNUT-79라고 명명된 토카막 장치의 개념설계와 공학설계를 마치고 진공용기 가공과 주장치를 제작해 1985년에 국내 최초로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는 쾌거를 얻는다. 이후 SNUT-79를 이용해 1989년까지 수소 플라즈마 저항가열 실험, 단열자장 압축기초 실험, 플라즈마 온도 측정진단, 중성빔입사 장치 설계제작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플라즈마 응용장치들이 연구되었고 자기 가둠 플라즈마의 평형, 불안정성, 수송, 가열 및 전류구동, 경계 플라즈마 등과 관련된 현상을 해석하고 장치설계 자료를 산출하여 국내 핵융합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핵융합 연구에 대한 연구개발을 시작하여, 1980년 핵물리부 산하에 '입자가속기 및 핵융합연구실'을 신설하고 1981년 토카막의 설계 작업에 착수했다. 주반경 27cm, 부반경 5cm 크기의 소형 토카막은 KT-1(KAERI Tokamak-1)으로 명명되었으며, 당시 제작에 참여한 연구원들 중에는 대학원 시절 SNUT-79를 제작했던 인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크기가 테이블에 올려놓을 만큼 작았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KT-1을 토이막(Toy-mak)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1988년에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모태가 되는 기초과학연구지원센터가 설립되면서 플라즈마 및 핵융합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1989년 11월에 '플라즈마 핵융합 연구 분야'가 대형공동연구장비 중 하나로 선정되고,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와도 연결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여, 미국 MIT 핵융합센터에서 개발한 자기거울형 플라즈마 발생장치 TARA를 들여와 다목적 플라즈마 발생장치로 개조하고 한빛이라 이름붙였다. TARA 장치의 해체 및 개조 과정에 동참한 서울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들이 '한빛' 운영의 주축이 되었으며, 핵융합 기술의 기초연구 수행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핵융합 기술연구에 착수한 것은 1995년부터였다. 1995년 7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 연회장에서 재미동포 과학기술자 200여 명을 초청하여 진행한 간담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꿈의 에너지'라고 불리고 있는 핵융합 기술개발에도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 KSTAR 계획의 시작이었다. 구체적으로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정부예산 1200억 원을 투자해 세계적 수준의 핵융합 장치, 후일 KSTAR라고 불리게 되는 초전도 토카막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내외 상황은 한국의 핵융합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미 포항 방사광가속기,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한빛 다목적 플라즈마 발생장치, 한국원자력연구소의 KT-1 플라즈마 발생장치를 비롯해 KAIST와 서울대 등에서 핵융합 연구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었고, 1995년 7월 대덕에서 개최된 국제 핵융합 심포지엄에서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의 전문가들이 한국의 역할 증대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바 있었다. ITER 의장이었던 러시아 벨리코프 박사는 ITER 계획에 한국이 참여하기를 요청했으며 기번스 미 대통령 과학고문도 한국이 이제는 핵융합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95년 12월 29일 국가핵융합연구개발 위원회가 개최되어, 2001년까지 공공자금 1200억 원(정부 900억 원, 한전 300억 원), 민간 300억 원을 투입해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KSTAR)'를 개발, 건설하여 세계 4대 수준의 핵융합 장치를 운영하고 핵심 기반 기술을 확보해 나갈 것을 재확인했다. 사업추진 일정은 제1단계(1995년 ~ 1997년): 장치개념 설계 및 기반기술 연구개발, 제2단계(1998년 ~ 2001년): 장치건설, 제3단계(2002 ~ ): 장치 운영으로 토카막 핵융합 장치의 최적 운전기술, 전류구동 및 가열기술과 첨단제어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였다. 그리고 1996년 1월 1일,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전담 수행할 전문조직으로 기초과학지원연구소 내에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을 신설하고 산하에 3개 연구부와 1개 지원실을 설치, 대형공동연구 프로젝트를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 프로젝트로 명명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소를 중심으로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KAIST, [[포항공과대학교|포항공대]], 삼성기반기술연구소, 한국중공업, 현대중공업, 포스콘, 두산중공업 등 정부줄연연구소와 공기업, 대학, 민간산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산학연 협력 체제를 마련했으며, 해외 연구기관들과도 협력 체제 구축에 힘을 기울였다. KSTAR와 같은 대형 연구장치는 국내에선 아직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장치들을 가동한 경험이 있는 핵융합 선진국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해외의 기관별 협력 대상기술을 선정하여 미국의 프린스턴 플라즈마 물리연구소(PPPL), MIT대학, 일본의 핵융합과학연구소(NIFS)와 원자력연구소(JAEA), 영국 컬햄핵융합연구소(UKAEA), 프랑스에 위치한 유럽연합원자력연구소(CEA),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0Plank IPP), 러시아의 쿠르차토프연구소, 중국과학원 소속의 플라즈마물리연구소(ASIPP) 등과 공동협력 체제를 구축하였다. KSTAR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했다. PPPL의 박현거 박사와 KAIST의 장충석 박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십여 명의 국내외 연구원들은 1년간 PPPL에 머물면서 KSTAR 개념설계에 몰두했다. 당시 PPPL에는 거의 완성 단계에서 중단된 TPX(Tokamak Physics Experiment) 장치의 설계도가 있었는데, 연구팀은 이를 모델로 삼아 세계 최초의 완전 초전도 선재 사용 토카막을 디자인했다. TPX와 KSTAR의 가장 큰 차이점은 초전도도체에 있었는데, TPX가 레이스트랙 형태로 설계된 반면 KSTAR는 연구가치가 높은 플라즈마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고난이도를 요구하는 형태이긴 했지만 플라즈마의 안전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D자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또한 최신 물리학 실험 및 이론 연구결과가 새롭게 반영되면서 전체적인 크기와 구조, 코일 수, 재료, 전기장치 등이 전반적으로 수정-보완되었다. 초전도자석을 사용하는 토카막 핵융합 실험로를 당시엔 세계 어디에서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초전도자석을 만드는 것은 KSTAR를 개발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세계 최고 성능의 토카막 핵융합실험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외에서 개발된 초전도선재의 성능을 뛰어넘어 더 높은 전류밀도와 낮은 전류손실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차세대 초전도선재가 필요했다. 삼성종합기술원과 옥스포드초전도기술사의 지속적인 설계개선과 국내 고려제강, 프랑스 국적 거대 케이블 회사인 넥상스(Nexans S.A.) 한국 자회사인 넥상스코리아의 제작협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무산소 구리 안에 주석과 4000여 개의 나이오븀(Nb)을 삽입하여 밀봉한 후 이를 잡아 늘려 0.78mm 직경의 Nb3Sn 선재를 최고 10km까지 끊어지지 않게 뽑아내는 고난도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를 다시 여러 가닥으로 꼬아 초전도선재 다발을 만든 뒤 이를 특수 재질의 고강도강판으로 둘러싸서 용접함으로써 초전도도체를 완성시켰다. 그 다음의 제작공정은 D자 형태로 정밀권선을 한 다음 이를 장시간 열처리한 후 고전압을 견딜 수 있도록 절연층을 만들어주는 작업이었다. 이때 가장 어려운 공정이 열처리였는데, 이를 거쳐야만 초전도의 특성을 따게 된다. 열처리 작업 도중 전류가 유입되는 입구에서 작은 부품 하나가 깨져서 공정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수차례의 연구개발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면서 열처리공정 작업을 끝냈다. 이로써 2002년 4월, KSTAR에 들어갈 최초의 초전도자석 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시민단체에서 초전도자석의 성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2002년 여름부터 2003년 초까지 반년에 걸쳐 진행한 극저온 냉각과 초전도 전이 달성, 대전류 인가 등의 성능 테스트를 국내외 전문가의 평가와 검증을 거쳐 완벽하게 통과하면서 초전도자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공사례로 꼽혀, 국제학술회의에서 초청 강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파일:KSTAR1.jpg]] KSTAR의 주장치 제작과 설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부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현대중공업이 울산에서 제작한 거대한 저온용기를 KSTAR가 설치되는 대전까지 대체 어떻게 운반해오느냐였다. 직경 9.6m, 높이 10m, 무게 60톤에 이르는 이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을 도로로 통째로 들고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배로 강경항까지 운반하고, 강경에서 대전까지 헬기로 운송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부속품을 제외한 몸체의 무게조차 40톤에 달해 헬기로 운반하기도 너무 위험했다. 결국 저온용기 바닥은 2조각으로, 몸통은 4조각으로, 뚜껑은 3조각으로 쪼개 각각 이동한 뒤 핵융합특수실험동 주장치실에서 재조립하는 방안이 결정되었다. 추후 조립을 위한 최적의 조건과 도로 이동이 가능한 크기로 분할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가 없었으므로 새벽에 국도를 타고 장장 3일에 걸쳐 운송해야 했다. 모든 도로 사정을 고려해 이동 경로를 설정했지만, 그럼에도 뜻하지 않은 현수막이나 도로표지판 등에 걸려 차량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해 도로 한가운데서 장치 일부를 분해했다가 통과 후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파일:KSTAR2.jpg]] 그러던 사이 KSTAR 건설 과정을 통해 한국은 핵융합연구기술 능력을 인정받아 2003년부터 국제핵융합로(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ITER]])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KSTAR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기술력은 세계의 평가와 시선을 돌리기에 충분했으며, 한-EU 핵융합 공동협력 협정을 체결하기 전 양국 실무진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유럽 측으로부터 회원국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받기도 했다. 이후 한국은 2002년 12월에 ITER 가입의사를 표명하고 채영복 과학기술부 장관을 필두로 정부 관료와 실무진으로 이루어진 ITER 협상단을 구성해 러시아 및 유럽 각국과 협상하며 2003년 5월 공식적으로 ITER 가입 의향서를 유럽에 전달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003년 6월 ITER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받아 참여하게 되었다. 한편 기반 장치들이 속속 완성되면서, KSTAR는 장치 전체에 대한 조립 단계로 넘어갔다.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부품들을 제 위치로 이동시키고 이를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2004년 2월부터 저온용기의 현장용접을 시작으로 2004년 3월 초전도자석 시스템의 지지구조물, 그리고 2004년 6월 진공용기 섹터 I과 II의 현장용접이 진행되었다. KSTAR에 적용되는 진공용기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 형태의 원통형 구조물로 섹터 I, 섹터 II, 섹터 III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제작되었다. 완성된 섹터는 일차적으로 제작 공정에서 누설 여부를 확인한 후 핵융합특수실험동 주장치실로 옮겨와 현장에서 용접하는 방식이었다. 360˚ 중에서 337.5˚에 해당하는 섹터 I과 섹터 II가 먼저 연결되었다. 나머지 22.5˚에 당하는 공간은 자석을 넣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렵고 위험도도 가장 높고 시간도 가장 오래 걸리는 조립 작업이다. 이를 완성하는 데는 4개월이 넘게 걸렸다. 진공용기는 가스 누설을 완벽하게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연결 부위의 용접 상태가 얼마나 완벽하게 이루어지는가가 관건이었다. 국제적 기준에서 허용하는 용접의 공차는 0.8mm였지만, 연구팀에서는 0.3mm 이하를 요구했다. 국내 최고의 용접 기술자들이 모여 수많은 테스트와 회의를 거듭한 결과, 0.3mm의 공차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0.5mm라는 기준을 마련하여 용접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는 사실상 제작 오차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이후 2005년에 진공용기 열차폐판 제작이 완료되었고, 곧바로 저온용기 열차폐판 제작에 들어가 2006년에 완료되었다. [[파일:KSTAR3.jpg]] 초전도자석은 2005년 2월 15일 첫 번째 TF(트로이달 자장)초전도자석(진공용기를 수직방향으로 에워싸는 코일)이 핵융합특수실험동에 들어온 뒤 순차적으로 조립되어 2006년 3월 TF초전도자석의 조립이 완료되었고, 2006년 12월에 8개로 이루어진 CS(중심솔레로이드) 코일과 6개의 외부 PF(폴로이달 자장)초전도자석(진공용기를 따라 설치되는 코일.)이 순차적으로 조립되었다. 그리고 CS 자석이 중심축에 장입되면서 KSTAR의 조립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저온용기 본체 조립이 2007년 1월에 성공적으로 완료되기에 이른다. [[파일:KSTAR조립1.jpg]] 2007년 1월 11일에는 KSTAR의 외장 덮개인 저온용기를 위에 씌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KSTAR의 주장치 조립의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단계인 이 작업은 지름 9m, 무게 60톤에 이르는 거대한 원통형의 저온용기를 20m 높이로 들어 올려 초전도자석과 진공용기, 튜브, 전선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부장치 위에 씌우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선 한 가닥이라도 건드렸다간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었기에, 1m를 올리는 데 10분을 들였을 정도로 매우 신중하고 느리게 진행되었고, 내릴 때는 더 신중하게 진행했다. 1m를 내릴 때마다 작업자들이 투입되어 부품이 서로 닿는 곳이 없는지 이상 여부를 점검해 무전으로 알리고, 모든 부분에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다시 1m를 내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파일:KSTAR4.jpg]] 2007년 4월 말에 진공용기와 저온용기의 진공배기 시스템이 완료됨으로서 5월 주장치의 현장 조립이 완성되었고, 6월에 진행된 진공 테스트 과정에서 저온용기 열차폐체의 일부 구간에서 상온 누설이 발견되었지만, 2개월에 걸친 면밀한 조사 끝에 누설지점을 발견하고 보수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2007년 8월 31일, 마침내 KSTAR의 제작 및 설치가 최종적으로 완료되어, 2007년 9월 14일에 핵융합특수실험동에서 KSTAR 완공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완공식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등 정부 인사, KSTAR 개발에 참여한 산학연 관계자, 미국 · 일본 · 중국 · 러시아 등의 핵융합 기관장 및 전문가, ITER 참여국 주한 외교사절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KSTAR 제작에 성공한 핵융합연구센터는 2007년 9월 1일부로 국가핵융합연구소(National Fusion Research Institute, NFRI)로 명칭을 바꾸고 새롭게 출범되었으며, 이후 완공식 나흘 뒤인 2007년 9월 18일 '국가핵융합연구소 현판식'을 가졌다. 2008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KSTAR 종합시운전에 돌입했다. 시운전은 총 4단계로 나누어졌는데, 제1단계 진공 시운전, 제2단계 극저온 냉각 시운전, 제3단계 초전도자석 및 전원 성능시험, 그리고 마지막 제4단계에서 최초 플라즈마 달성 실험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진공 시운전은 2007년까지 대부분의 시험이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제2단계인 극저온 냉각 시운전이 진공 시운전 직후 개시되었는데, 상온에서부터 -268℃까지 냉각이 진행되었다. 갑자기 냉각되면 두께와 특성이 서로 다른 수많은 재료들과 부품들이 다 부서져버리기 때문에, 4주간에 걸쳐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다. 냉각용매는 헬륨을 사용하는데, 헬륨은 비활성 기체로 냄새가 없고 매우 가볍기 때문에 진공 상태에서 가장 잘 새는 물질이다. 누설을 완벽하게 막아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상온에서 괜찮다가도 저온 냉각되기 시작하면 맞닿은 재료가 서로 뒤틀어져 누설이 생기는 콜드리크(Cold Leak) 현상은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잡아내기 어려운 문제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극저온 냉각 시운전은 초긴장 상태에서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8년 4월 말 초전도 전이 현상이 관측되었고, 2008년 5월 6일 10K(-268℃)까지 냉각시키며 극저온 냉각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되었다. 제2단계 냉각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KSTAR는 곧바로 제3단계인 초전도자석 및 자석 전원 성능 시험에 들어갔다. 자기 전류가 흐르면서 냉각된 장치들이 균열이 생겨 깨지거나 코일이 불에 타버리는 퀜치(Quench)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놀랍게도 이번에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TF초전도자석의 경우 최초 15kA까지 대전류 인가 시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고, PF초전도자석은 각각의 PF코일에 대한 개별 성능시험과 전체 PF코일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운전까지 무사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6월 KSTAR 종합시운전의 마지막 단계인 최초 플라즈마 발생실험이 시작되었다. 제어실에는 '배수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을 정도의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단순한 실수라도 한다면 KSTAR 프로젝트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집게손가락을 치켜들고 '그것 봐라!'라고 소리치며 손가락질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NFRI는 이 때문에 더욱 더 철두철미하게 작업을 진행하여 아주 사소한 문제가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기 위해 점검하고 또 점검하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와, 2008년 6월 13일에 마침내 플라즈마 전류 130kA, 플라즈마 유지 시간 0.12초의 최초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했다. 이는 단 한 번의 종합시운전으로 어떠한 이상도 없이 단 한 번에 성공한 최초의 플라즈마였다. 전 세계적으로 최초의 사례였으며, 12년에 걸친 KSTAR 사업의 대성공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특히 KSTAR의 최초 플라즈마 발생 성공은 초전도 재료에 Nb3Sn 합금을 세계 최초로 사용한 핵융합 연구장치의 운전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KSTAR는 다시 한 번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플라즈마 제어코일을 진공용기 안에 설치한 것이다. 플라즈마 제어코일은 플라즈마의 생성과 가둠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로서, 플라즈마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이전까지 세계의 모든 핵융합 실험로들은 코일을 진공용기 외벽에 휘감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해외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내저었고 실제로도 2차원 CAD 작업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으나, 3차원으로 재차 접근하자 2차원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투입경로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진공용기 내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500kg에 달하는 무게에 총 길이 8m가 넘는 코일을 단 한 번에 안정적으로 설치한다는 것도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코일 자체를 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코일이 고열에 녹지 않도록 최적의 용접조건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연구진들은 방법을 찾아냈고, 마침내 2010년 4월 4일 플라즈마 제어코일을 진공용기 내부에 바느질하듯 꿰어 넣는 작업에 성공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이다.--[[공밀레|이 과정에서 무고한 수많은 공돌이들이 녹여졌다 카더라]]-- 이 모범적인 성공사례는 ITER 사업에도 영향을 끼쳐, ITER는 설계를 변경하여 플라즈마 제어코일을 내부에 설치하기로 결정된다. KSTAR의 연구진들이 ITER의 플라즈마 제어코일 관련 설계를 검토 및 자문해 주고 있다. 디버터를 텅스텐 소재로 교체한다고 한다.[[http://www.daej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8056|#]] 기존에는 디버터의 소재가 흑연 그래파이트였는데, 텅스텐으로 바꾸면 녹는점이 조금 더 높고(3422도) 열전도도와 인장 강도 등이 더 우수하다고 한다.[[https://www.etnews.com/20210729000202|#]] 텅스텐 디버터를 개발하는 기술은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디버터시스템 연구팀을 만들어 만든 결과물이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nfripr&logNo=22139411485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