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L-1011 (문단 편집) === 개발의 시작 === [[1960년대]] 중·장거리 시장은 [[보잉]]의 [[보잉 707]], 더글러스의 [[DC-8]]이 주름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협동체]] 여객기로서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협동체 여객기의 동체 길이를 늘리는 방법 또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체의 폭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광동체]] 기체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당시 항공사로부터 개발의뢰를 받은 개발업체 중에는 록히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록히드는 [[L-188]]의 실패와 제트화의 문제로 민수용 시장은 포기한 상태였는데 때마침 항공기 개발업체에서 개발의뢰를 넣고 만들어주기만 하면 꼭 구매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자 "이거 돈 좀 되겠는데?"란 반응을 보였고 다시 민간시장에 슬쩍 몸을 밀어넣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록히드는 자사의 군용기를 고친 민간용 여객기나 화물기를 몇 번이고 내놓았다, 어김없이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 군용 수송기의 히트작 [[C-130]]도 민수용 버전인 L-100은 망했고, 걸작 [[대잠초계기]]인 [[P-3]]의 모태인 [[L-188]] 여객기도 그냥 묻혀 버렸다. 전략수송기 [[C-141]]의 민수형 모델은 어떤 항공사도 관심을 안 보여서 시험제작 기체를 [[NASA]]에 그냥 기증해 버린 일도 있었다. 원체 민항사 입장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서야 엔간해선 군용기 기반 여객기나 화물기를 기피한다. 민수용 시장을 고려하고 만든게 아니기에 대부분 랜딩기어가 숏다리라 게이트는 상상도 못 하고 걸어가야 하며 경제성도 영 좋지 못하다. 군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효율도 감수할 수 있지만, 시장경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민간에서는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같은 연료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날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제 록히드는 군용기 기반이 아닌 처음부터 새로 여객기를 만들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300~400명 가량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고, 엔진을 3개 장착하여 4발기보단 높은연비, [[ETOPS]]를 적용받지 않아 쌍발기보단 더 자유로운 비행을 할 수 있게 만든 중형여객기 개발안을 항공사에 제시하였고, 당시 일부 항공사들은 [[올해는 다르다|이번 건 다르다]]면서 여객기 구매 의향을 타진해왔다. 록히드 역시 민수시장에서 성공가능성이 높아보이는 L-1011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1970년]] [[11월 16일]] 초도비행에 성공하였고, 이후 [[1972년]] 본격적으로 각 항공사로 인도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시기 맥도넬 더글라스 역시 항공사들의 요구에 따라 거의 비슷한 스펙의 [[DC-10]]을 느긋하게 설계하고 있었는데 록히드에서 L-1011를 발표하자 허겁지겁 DC-10을 발표하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두 기종은 자연스럽게 경쟁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