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LAZY (문단 편집) == 개요 == 70년 후반에 결성했다가 한 차례 해체한 후 90년대 후반에 재결성해 현재까지 활동하는 일본의 '''전설적''' 하드록 밴드. 동시에 [[LOUDNESS]]와 [[잼 프로젝트]]의 출신 밴드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설이 된다.] [[파일:external/ec2.images-amazon.com/41579V5PEAL._SL500_AA300_.jpg]] 우주선 지구호 2 자켓. 왼쪽부터 타나카 히로유키, 히구치 무네타카, 카게야마 히로노부, 이노우에 슌지, 타가사키 아키라 순이다. 레이지 2002년 라이브 DVD의 부록에 있는 다큐멘터리에도 비슷한 구도의 사진이 나온다. 1977년에 데뷔, 1981년에 해체, 1998년에 재결성해[* 실질적으로 재결성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2007년으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2017년'''에 '''데뷔 40주년'''을 맞는다.[* 멤버들의 활동 경력도 이 시점을 기점으로 기산하기 때문에 현재 생존한 카게야마, 타카사키, 이노우에는 50대에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케이스가 된다.] 최초 구성원은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이노우에 슌지]], [[타나카 히로유키]], [[히구치 무네타카]]로 구성되었지만 현재 살아있는사람은 카게야마, 타카사키, 이노우에 이 3명. 원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시절 동창인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타나카 히로유키가 그들의 고향인 [[오사카]]에서 1973년에 처음 결성했다가 이후 고교시절에 히구치 무네타카, 이노우에 슌지가 합류하면서 5인조로 메이저 데뷔. 밴드명은 딥 퍼플의 동명의 곡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타카사키 아키라]]의 집에 모여 딥 퍼플, 레인보우 등 당시 유행한 브리티시 록밴드의 테이프를 느리게 재생하여 구석부터 구석까지 카피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이노우에 슌지]]는 후에 닛케이 신문에 투고한 칼럼에서 연주 스킬을 높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독자적인 곡을 작곡하지 않은 것이 이후 밴드의 오리지널 곡의 부재로 인한 슬럼프에 빠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1977년 2월 [[오사카]] 아사히 TV(오사카 ABC)의 헬로 영이란 프로그램에서 딥 퍼플의 BURN을 연주[* 본 곡의 일본 현지 명은 자주색 불꽃(紫の炎)이었다.], 카마야츠 히로시의 눈에 띄면서 1977년 7월에 싱글 Hey, I Love You로 데뷔하게 된다. 원래 이들의 취향은 하드록쪽에 가까웠으나 당시 기획사에서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계 밴드였던 스코틀랜드의 베이시티 롤러스를 모티브로 한 프로모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따라서 기획사의 의도로 아이돌 성향의 팝 밴드로 데뷔를 하게 된다. 상경하자 마자 머리를 자르고 옷을 사 입히게 하는 탓에 최초에는 반감도 심했지만, 자리를 잡게 되면 원하는 음악을 하게 해 주겠다는 소속사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카게야마는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보지만 그때는 쇼크가 컸다' 라고 말했고, 타카사키 아키라 또한 '장래를 위해 음악성을 넓히려 진지하게 연습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했다' 라고 말했다.[* 사실 카마야츠 히로시 자신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서양의 하드록을 추구하는 성향 덕에 당라이브에서는 서양 록의 커버를 라이브로 보여주고는 했다.특이한 것은 하드록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록음악을 커버했다는 것이다. 사이키델릭 성향의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라든가 하드록이라 볼 수 없는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등등.물론 당시 인기 하드록 밴드였던 UFO,딥 퍼플 같은 밴드의 음악도 연주했다. 이 결과 3집인 Dream a Dream부터 조금씩 록 분위기의 곡들이 수록되었으며 4집인 Rock Diamond는 다수의 곡을 직접 본인들이 작곡하기도 하고, 한곡씩 리드보컬을 하기도 하는 등 음악성의 폭을 넓혀갔다. 1980년 도메스틱 라이브 투어 이후 '''헤비메탈 선언'''을 발표하면서 확실하게 하드록 적 성향이 드러난 앨범 우주선 지구호를 발표하지만 멤버들간의 음악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결국 해체가 결정된다. 해체 선언일은 1981년 2월 18일,[* 그런데, 이 날은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생일이다. ~~자기 생일날 팀 해체를 발표해야 했던 젊은 날의 카게야마....~~] 도쿄 쵸후시에서의 라이브에서 해체를 선언하고, 이들의 고향이던 오사카에서의 라이브를 마친 후인 같은해 5월 말에 해체를 하게 되는데 해체 후의 이들의 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카게야마 히로노부 : 솔로로 데뷔, 이후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뛰어듬. 간간히 밴드 활동 참가. * 이노우에 슌지 : 타나카 히로유키와 함께 네버랜드, AIRBLANCA로 활동, 이후 음악 프로듀서로 전업. * 타나카 히로유키 : 이노우에 슌지와 함께 활동, 이후 음악 외적인 개인 활동 전념. * 타카사키 아키라&히구치 무네타카 : [[니이하라 미노루]], 야마시타 마사요시와 함께 LOUDNESS로 활동, 히구치는 1993년에 LOUDNESS를 탈퇴하고 한동한 니이하라 미노루와 SLY로 활동하다가 2001년부터 잠시 야마시타 마사요시와 Blood Circus라는 밴드 활동도 겸임했다. '''결론적으로 이 해체 자체가 일본 록/메탈계와 애니송계에 메가톤급 폭풍을 불러왔으니, 바로 애니송계의 슈퍼 보컬리스트인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일본 메탈계의 거물 밴드인 LOUDNESS가 나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후 1997년에 전격 부활을 결정[* 이노우에 슌지의 제안, 당시 고민하던 타카사키 아키라에게 복귀의 쐐기를 박은 것은 그와 같은 wiki:"LOUDNESS" 에 몸담고 있던 야마시타 마사요시였다.], 이듬해 3월에 [[울트라맨 다이나]]의 두번째 엔딩곡인 ULTRA HIGH[* 울트라맨 다이나는 1997년 9월부터 방송. 본 곡이 처음 방송에 뜬 것은 1998년 3월 14일에 방송된 울트라맨 다이나 27화다.]로 복귀하면서 애니메이션 방면으로 영역을 확대했으며[* 참고로 완전 부활은 앨범 HAPPY TIME이 나올 당시. ULTRA HIGH 싱글 당시에는 다나카 히로유키가 참가하지 못해 타카사키 아키라가 베이스 연주를 대신 했다고 한다.] 1999년 11월 에어즈의 파산 이후 시부야에서의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멤버인 이노우에 슌지가 사장으로 있는 [[란티스]]로 이적한다.[* 참고로 부활하게 되는 1997년을 기해 후기로 보는데 이 당시의 레이지는 키보드인 이노우에 슌지가 중심이었다. 당시 이노우에 슌지는 프로듀싱도 겸한 상황.] 란티스에서 두장의 싱글과 한장의 정규 앨범 및 라이브 DVD를 냈지만 멤버들이 다른 쪽에서 활동을 겸업하면서 주로 팬 미팅과 라이브 활동에 중심을 두게 된다. 이런 와중에 2006년 9월에 타나카 히로유키가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으며 2008년 11월 30일에는 밴드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인 히구치 무네타카가 간암으로 사망해 현재 멤버는 3명으로 줄었다. 2008년, 오사카 ABC 홀이 문을 닫게 될 당시 그들이 마지막 라이브를 열창했는데 이는 사이토 카즈요시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이유로는 LAZY의 메이저 데뷔가 이루어진 곳이 바로 그 오사카 ABC 홀이었기 때문. 자신들의 시작을 알렸던 곳에서 그들의 현재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찾았을 정도로 공연은 크게 화제를 모았다.[* 다만 이 라이브 당시 타나카 히로유키는 사망한 상태였고 히구치 무네타카는 사실상 활동 중단인지라 베이스와 드럼에 서포트 멤버를 썼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2009년 란티스 마츠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막판에 뒤집어 엎고[* 실제로도 공연 며칠 전까지 이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란티스에서 앨범을 낸 시기가 대체적으로 초기에 있었다는 것과 멤버 2명이 현재 고인이 된 것을 생각하면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았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후에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이야기하기를 자신이 타카사키 아키라에게 전화를 걸어 란티스 마츠리에 레이지 명의로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타카사키 아키라는 라우드니스의 활동에 집중하고 레이지로서의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었기 때문에 란티스 마츠리가 애니송 페스티벌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고.그러니까 친구 말듣고 엉겁결에 나가게 된 것. ~~한마디로 친구에게 낚인 타카사키씨.~~ 그럼에도 공연 끝나고 좋아했다.] 레이지 명의로 등장해 당시 공연장에 있던 [[오쿠이 마사미]]를 울렸다. 공연장에서 Burn을 피로했고[* 그들의 첫 방송 출장이던 헬로 영!에서 그들이 부른 곡이다!!] 잼 프로젝트의 서포트를 받아 [[진 마징가 충격! Z편]]의 첫 주제가인 感じてKnight를 열창했다.[* 2009년 4월 4일 ULTIMATE LAZY For MAZIGNER로 발매된 싱글로 레이지 멤버 3인을 주로 하고 사이토 카즈요시, [[오쿠다 타미오]], 잼 프로젝트의 서포트를 받아 발매되었다.] 또 2009년 나카노 선플라자에서 있었던 히구치의 추모 공연해서도 연주했는데 이 때 참가 아티스트 라인업은 히구치 무네타카의 인덕을 반영하듯 무척 화려했다. 다만 히구치의 추모 라이브에서 LAZY의 곡은 기본적으로 밴드 멤버였던 이노우에 슌지가 맡았으나 라이브 중간에 나온 딥 퍼플의 Burn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Lazy의 멤버인 [[이노우에 슌지]] 대신에 무라사키(紫)의 조지 무라사키가 키보드를 연주했다. 그 외에도 [[LOUDNESS|라우드니스]]의 [[니이하라 미노루]], 유니콘의 [[오쿠다 타미오]], 클라우드 나인의 야즈가 보컬로 서포트 했으며 베이스는 라우드니스의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은 니이하라 미노루의 데드 채플린에서 활동했던 스가누마 코조가 담당했다. 유투브에도 이 영상은 게재되어 있다. 2009년 LOUDNESS의 히구치 무네타카 추모 공연에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이노우에 슌지가 특별 게스트로 참가해 타가사키 아키라와 함께 라이브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또 [[오쿠다 타미오]]가 있어서 난리가 아니었다는데.......[[http://www.youtube.com/watch?v=mSFlUAF03RU|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오쿠다 타미오, 니이하라 미노루가 한 자리에 선 모습. 오쿠다는 기타를 메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이들이 처음 활동할 당시 그들의 팬들이 지금 40이 넘은 중년이다. 이 가운데는 오쿠이 마사미나 [[이이지마 나오코]] 같은 인물이 있을 정도. 아이돌 활동 시절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도 흑역사로 치부하는 듯 싶지만[* 아래에 나오겠지만 특히 타카사키 아키라와 히구치 무네타카는 그런 아이돌 노선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위에서 언급한 이이지마 나오코는 아이돌 시절의 레이지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들로서도 당혹스러울 듯 싶다. 또한 재결성 이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활동 내용을 보면 은근히 코믹함도 늘어났다는 것이 들리는 듯. 멤버 전원이 [[간사이]] 지방 출신이며[* 히구치 무네타카를 뺀 4인이 [[오사카부|오사카]]출신이며 히구치 무네타카만 [[나라현|나라]] 출신이다.] 히구치 무네타카를 제외하고 나머지 4인이 [[사일런트 뫼비우스]] 이미지 앨범이 참가한 전력이 있다.[* 히구치 무네타카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쪽도 어떤 경로로든 참가했거나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개봉되는 토와노쿠온의 주제가인 Reckless를 담당했다. 2014년 5월 25일, 란티스 마츠리 2014 간사이 공연 1일차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번엔 이노우에가 직접 나선것 같다. 2009년에 대박을 보더니 정말로? 한국에 LAZY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 한 시기는 사이버 포뮬러 SIN의 오프닝곡인 [[Pray]]를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목소리가 낯익은 것 같은데? → 아 카게야마...)--[* 실제로 당시에는 Pray가 카게야마의 솔로곡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JAM Project]]의 멤버이기도 한 [[오쿠이 마사미]]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LAZY의 팬이다. 2016년 7월 25일 그녀의 트위터를 통해 메이져 데뷔 39주년을 축하하기도.[[https://twitter.com/LoveLoveDragon/status/757447454501449729?s=09|##]] ~~여사님, 2017년이 이 그룹 데뷔 40주년인데...~~ 2017년에 데뷔 40주년을 맞아 기념 라이브 및 신곡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신곡이 들어간 싱글 앨범 Slow and Steady는 2017년 12월 6일 발매 됐으며, 특이하게 앨범 제목과 곡들 중 맞는 이름이 없다. 1번 곡과 2번 곡의 작사는 유명 작사가인 모리 유키노조. 라이브는 12월 17일, 오사카에서, 12월 27일 도쿄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