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AERSK (문단 편집) == 역사 == [[1904년]]에 [[덴마크]] 스벤보르시에서 페테르 메르스크 묄레르(Peter Mærsk Møller,1836–1927)와 에페 묄레르(A.P. Møller, 1876–1965)[* 본명은 '아르놀드 페테르 묄레르(Arnold Peter Møller)'이다.]가 세운 '스벤보르 증기선사(Dampskibsselskabet Svendborg)'가 모태이다. 7각별 로고는 1875년 [[https://en.wikipedia.org/wiki/SS_Laura_(1875)|라우라호]] 굴뚝에 붙인 것이 최초이며, 창업주의 아버지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페테르 묄레르가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병약한 아내를 위해 기도하면서 "만일 짙게 깔린 구름 사이로 별이 하나 찬란하게 빛난다면, 하느님께서 아내의 지병을 고쳐줄 것으로 믿겠습니다"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있다.([[https://gcaptain.com/the-heartwarming-story-behind-the-maersk-star/|머스크 로고에 대한 설명]])] [[1차 세계대전]] 이전에 기선 업체로 시작하여 [[조선업]]에도 진출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28년]]에 정기 선박운항 업체로 발돋움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 정기선 항로가 혼돈에 빠졌을 때 종전 이후 최초로 정기선 사업을 재개하기도 하였다. 1947년 대서양 횡단 항로를 개설했으며 [[1950년]]에는 [[페르시아 만]]을 경유하여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 일본 등 극동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1962년]]부터 연료채굴업 및 슈퍼마켓 등 유통업에도 뛰어들었다. 특히 머스크라인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 계기는 [[컨테이너선]]의 발달이었다. [[1966년]]에 첫 컨테이너선 운항을 개시한 이후, 단기간 내에 전세계로 컨테이너선을 보냈으며, [[1973년]]에는 컨테이너 전문 부서가 만들어졌다. [[1995년]]에 해운협정에 가입했고 [[1996년]]에 처음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선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이 컨테이너선은 포스트 파나맥스 선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1997년]]과 [[2006년]]에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의 타이틀을 갱신하는 선박들을 보유하게 되며 세계 최대 [[해운 회사]]의 위용을 떨쳤다.[* 18,000TEU 이상급의 Triple E 선단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0년]] 중반 이후 정기선사들의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와 선대 확장이 치열해지면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의 타이틀은 타 선사들의 21,000TEU 이상급들이 가져간 상태. 참고로 TEU는 컨테이너 물동량의 단위로, 1TEU당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하나를 뜻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데, [[https://en.m.wikipedia.org/wiki/Maersk_Air|여객항공 사업]]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의 사고기체인 HL7229도 여기서 운항하던 [[보잉 737 클래식|보잉 737-500]]이었다. 머스크 시절 등록넘버는 OY-MAD. 이후 2005년에 손을 뗐으나 2022년에 화물항공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대한민국에도 주 2회 인천과 그린빌-스파르탄버그를 오가는 항공편을 아메리젯 인터네셔널을 통해 운항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