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PSh-41 (문단 편집) === 나치 독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houghtsonmilitaryhistory4.weebly.com/239408_orig.jpg|width=100%]]}}} || || [[스탈린그라드 전투]] 중 PPSh-41을 들고 있는 독일 국방군 대위[* 사진 속 인물은 제305 정찰대대 소속 대대장 빌헬름 트라우프(Wilhelm Traub)로, 사진이 찍힐 당시 실 계급은 대위였으나 하필 오른쪽 견장의 핍이 하나 빠진 탓에 중위로 자주 오인된다.(다른 각도로 찍힌 사진을 보면 왼쪽 견장의 핍은 정상적으로 3개임을 알 수 있다) 트라우프는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 중인 1943년 1월 5일 작전 중 실종되었고(사실상 사망) 이후 1944년 사망처리됨과 동시에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 [youtube(UjBUEEts0as)] 이 총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독일군]]이 탐낸 기관단총이다. 자기들에게는 [[MP40]]이라는 명작 기관단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총을 탐낸 반면에 소련군은, PPSh-41보다 안정적이고 명중률도 좋은 MP40를 탐냈다. 그 이유는 당시 독일군의 기관단총 보급률이 낮았다는 점 외에도 MP40의 두 배가 넘는 장탄수와 빠른 연사속력으로 인하여 화력이 훨씬 뛰어났던 점,[* 특히 소련군의 [[인해전술]]로 마구잡이로 달려오는 소련 보병을 막기 위해 독일군은 강력한 화력을 필요로 했다.] 마구 굴리거나 강추위 속에서도 고장나지 않는 신뢰성,[* 특히 얼어붙는 추위로 독일산 기계들이 고장을 일으킨 게 크다고 한다. 다만 총기류마저 얼어붙어서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독일제 총기를 사용 못하는 수준의 추위라면 소련제 총기 또한 얼어붙었을 확률이 높으며, 신뢰성이 MP40 대신 PPSh-41을 독일군들이 선택한 큰 이유일 확률은 적다. 다만 장호봉 전투에서도 그렇고 M1소총보다 작은 탄을 사용하는 M1 카빈의 경우 특유의 적은 장약량이 낮은 온도에 의해 불완전연소하면서 가스가 적게 발생, 반자동에 필요한 가스가 부족해 자주 작동불량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용탄이 거의 비슷한 두 총기가 그랬는지는 불분명. 그러나 총기류가 설계한 국가에 따라서 냉해에 저항능력이 달라지는 건 현대 총기에서도 드러난다. 당장 [[H&K HK416|HK416]] 항목을 봐도, 분명 비슷한 동작 온도가 보장된 총기(-40~50도)임에도 얼어붙은 상황에서 러시아제에 비해 독일제 총이 동작이 안 된다. 설계한 국가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설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사용하는 [[탄환]]까지도 본국에서 수급이 가능하다는 삼박자가 갖춰진 까닭.[* 독일에서 쓰는 7.63×25 mm [[마우저]] 탄이 소련제 7.62×25 mm [[토카레프]] 탄보다 0.01mm 굵긴 한데, 이는 [[샤프심]] 굵기보다 훨씬 가는 정도로, 이 정도 오차로는 탄약 혼용시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0.01mm는 10마이크로미터로 이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사람의 '''[[세포핵]]''' 크기와 비슷하다. 자국 내 군수공장에서도 저 정도 오차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다. 애초에 토카레프 탄이 마우저 탄의 소련제 라이센스 버전이었으며, 토카레프 탄환 자체가 마우저 탄환의 고압탄 사양에 가깝기도 했다.] 그런 사정으로 이 총이 보이면 주워 담기에 바빴다고 한다. 독일군은 이 총을 '''[[발랄라이카]]'''라고 불렀다. 게다가 독일군은 [[기관단총]]을 [[분대장]] 이상급 [[간부]]에게만 지급했기 때문에,[* 알보병은 [[볼트액션]] 소총으로 충분하며 (또는 알보병은 정확한 조준사격을 해야하고 쓸데없이 총알을 낭비해서는 안되며), 총알을 뿌리는 역할은 [[분대지원화기]]가 한다는 독일군의 교리 탓이었다. 이는 그리고리 쿨리크의 지론과도 통하는 바가 있었지만, 시가전이 자주 벌어진 독소전쟁에는 시대에 뒤진 교리가 되어버렸다. ] ][* 독일의 지독한 군수물자 생산 비효율탓에 기관단총 생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관단총을 받게되어있는 인원조차도 소총만 들고 싸우는 일이 많았고 자동장전화기라면 병사들이 눈에 불을켜고 노획해 마르고 닮도록 썼다 .] 특히 [[시가전]]을 위한 기관단총이 절실했던 병사들은 별 수 없이, 소련군에게서 [[노획]]하는 것 밖에 없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ain-qimg-23a6a89bf050eabb95ec078a31969b2b-c.jpg|width=100%]]}}} || || MP41(r)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5Jdd-yUNfHg)]}}} || || [[Forgotten Weapons]]의 MP41(r) 리뷰 영상 || 일부는 MP40 탄창을 쓸 수 있게 [[9×19mm 파라벨룸]]탄을 사용하도록 개조한 것도 있다.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정식으로 제식명칭을 부여해서 9×19mm 파라벨룸용으로 개조되지 않은 것은 MP717(r), 9×19mm 파라벨룸용으로 개조된 것은 MP41(r)라는 제식 명칭까지 주어졌고, 독일어로 정식 매뉴얼까지 만들어 각 부대에 뿌렸다. MP717(r)과 MP41(r) 둘 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서부전선에서도 독일군이 극소수로 사용했다. 상기했듯 '''[[독일군]]이 PPSh-41을 갖고 싶어하고 [[소련군]]에서는 [[MP40]]을 탐내던 상황'''에 나온 결과물이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s-2.2|입대 항목]]에서 보듯, 그가 [[AK-47]] 개발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로 MP40을 뽑을 정도였다.] 소련군의 PPSh-41은 너무 빠른 연사력으로 말미암아 심한 탄약소모와 이 연사력으로 인해 제어가 힘들어 떨어지는 명중률, 전시생산품질 저하로 마감이 좋지 않고 다루기 힘들었던 반면, MP40은 품질이 좋고 적당한 발사속도로 제어하기도 편하고, PPSh-41보다 작아서 휴대하기도 편했다는 대조적인 부분들이 서로에게 매력으로 작용했고, 이로써 독소 양군 모두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현상이 일어나 서로가 서로의 기관단총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고 한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독일 내에서 PPSh-41을 자체 생산하자는 장성들의 요구도 있었으며, PPSh-41의 71발 드럼 탄창이 상당히 우수하니 이것과 MP40을 조합하면 최고의 기관단총이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도출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정반대인 PPSh-41에 MP40의 탄창이 조합된 것이다. 파라벨룸탄과 토카레프탄은 조상이 같기 때문에 바닥 직경이 거의 비슷해 노리쇠는 딱히 손댈 필요 없이, 총열을 바꾸고 탄창 삽입부만 손보면 파라벨룸탄을 쓰도록 개조가 가능했다. 파라벨룸탄은 길이가 토카레프탄보다 짧아 총열을 교체하고 탄창 어댑터만 달면 손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파라벨룸탄을 쓰는 총기를 토카레프탄을 쓰게 변경하는 것은 어려운데, 토카레프탄의 전장이 더 길기 때문에 약실과 작동부를 잡아늘리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 전쟁 내내 부족한 생산력으로 고통받던 독일로서는 적국의 탄창이라는 불안정한 물자를 위해 별도의 생산라인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