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ADS (문단 편집) ==== 1기 (1999~2003) ==== 히토키와의 성향 차이로 결별한 키요하루는 1999년 1월을 끝으로 인기가도에 있던 쿠로유메를 충격적으로 해체한다. 이후 밴드맨으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원했던 키요하루는 이내 쿠로유메의 서포트 뮤지션들을 소집해 새로운 밴드를 결성시켰고, 이것이 "SADS"가 된다. 밴드의 이름은 [[슬픔]]이나 [[새디즘]]과는 관련이 없고, 키요하루가 좋아하던 밴드 The Mods에서 따왔다고. 한편 1999년 6월에는 이례적으로 [[영국]]에 건너가 [[더들리]]에서 첫 공연을 한 것을 시작으로, [[스완지]], [[런던]] 등에서 공연을 하며 일본 락 씬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이전에 [[VOW WOW]]가 영국에 진출해 영어 가사로 공연을 하거나, The Yellow Monkey가 일본곡+영어곡으로 공연한 적은 있어도, '''정식 데뷔조차 하지 않은''' 밴드가 '''일본어 노래만 부르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 특히 공연이 있었던 영국 런던의 Scala[* 이후에도 [[푸 파이터스(밴드)|푸 파이터스]], [[Maroon 5]], [[고릴라즈]]같은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에서의 공연은 장소가 Smoke Fairies, Shed Seven와 같은 현지의 유명 록밴드부터 [[셰릴 크로우]]같은 팝스타들이 섰던 메이저 클럽이었기에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6월 한달간 영국에서 치열한 라이브를 거친 SADS는 귀국 후 7월 7일 도시바 EMI에서 메이저 데뷔싱글 [[TOKYO]]를 발매[* 해체된 [[쿠로유메]]의 계약기간이 남아있어서, 남은 계약기간 이행을 SADS 활동으로 대신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오리콘]] 주간차트 2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인기를 모은다. TOKYO는 가사 첫구절 '途切れた黑い夢に今日もまどわされる 傷だらけの聲で笑った(끊어진 검은 꿈에 오늘도 헤매게 된다. 상처투성이의 목소리로 웃었어.)'라는 부분이 [[쿠로유메]] 시절 히토키와 키요하루의 갈등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큰 이슈가 되었었다. 데뷔곡 TOKYO의 큰 인기에 편승해 내놓은 정규앨범 SAD BLOOD ROCK'N'ROLL 또한 주간차트 3위로 매우 큰 인기를 끌면서 SADS는 단숨에 인기 밴드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2000년에는 [[IWGP 시리즈]]의 드라마 판에 주제곡으로 忘却の空(망각의 하늘)이 4월 12일에 발매, 주간차트 최고 2위를 기록하며 드라마와 함께 크게 히트한다. 2달 뒤 발매한 정규 2집 BABYLON은 무려 오리콘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상업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이후 발매한 싱글들은 점차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고, 판매 측면에서는 하향세를 그린다. 후기 쿠로유메의 펑크 락/하드락 사운드를 견지하던 초기와는 달리 [[뉴메탈]], [[하드코어]], [[글램 락]]의 요소를 들여오면서 음악성이 급변하기 시작했기 때문. 그러다 2003년 한국에서 PV를 촬영한[* 본래는 홍콩에서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사스]] 여파로 인해 계획수립 직전 서울 명동으로 변경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Masquerade가 포크 락 느낌의 사운드로 팬들의 인기를 다시 끌기도 하였으나, 결국 베스트 앨범 발매와 정규5집 앨범 '13' 투어 이후 드러머 미츠조노 에이지가 건강 악화로 탈퇴한 것이 계기로 활동 동력을 잃게 된다. 더군다나 키요하루가 유니버셜 뮤직으로 이적하면서 '솔로데뷔 이후 계약기간 동안 솔로활동 중심'이라는 계약 조항 때문에 더욱 그랬다. 밴드 1기는 자연스럽게 활동이 정지되어버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