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K신세기통신 (문단 편집) == 역사 == 당초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었던 [[SK|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 현 SK주식회사 C&C.]이 정치적인 구설[*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씨와 결혼한 관계로 선경그룹이 특혜를 받았다고 논란이 됐었다. 특히 당시 집권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했다.]로 사업권을 반납한 후 1994년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사업자 선정이 재추진됨에 따라 [[포스코|포항제철]]과 [[코오롱그룹]]이 선경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체신부]]에 로비전을 펼쳤는데, [[전경련]]이 두 기업 간의 이전투구를 막기 위해 포항제철을 1대 주주, 코오롱을 2대 주주로 하는 후보 단일화를 종용, 이에 따라 '신세기이동통신'이 설립됐다. 창업 당시 국내 주주는 포철과 코오롱 등 242개 기업이었으며, 외국 주주는 미국 에어터치 커뮤니케이션즈[* 구 팩텔 셀룰러.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이동통신사로서 1998년 US 웨스트 미디어로부터 뉴 벡터를 인수했으나, 1999년 영국 [[보다폰]]에 먹혀 '보다폰 에어터치'가 됐다가 벨 애틀랜틱 모바일과 합쳐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가 되면서 2000년에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다.], 사우스웨스턴 벨, [[퀄컴]] 등 3개사였다. 창립 얼마 후 '신세기통신'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식별번호를 '017'로 확정했고, 그해 말에는 [[INMARSAT]]의 이동통신사업 '프로젝트 21'에 참여했다. 1996년 4월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통하고 지앤지텔레콤의 합작투자를 받아들였다. 1997년 수도권 지하철서비스를 개시하고 1998년에 일본 DDI 및 IDO와 기술제휴 협정을 체결한 뒤, 1999년 12월부터 무선인터넷 'i-touch'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이러한 공적과는 달리 포철에서 스카웃 해 온 인사들과 코오롱에서 스카웃 해 온 인사들이 파벌을 이루어서 내전이 일어난데다가 [[SK텔레콤]]의 위상은 [[넘사벽]] 급이었고, 그래서 만년 [[콩라인]]이었다. 1999년에는 코오롱 측이 일부 지분을 에어터치로 팔려고 했으나, [[SK텔레콤]]이 향후 [[IMT-2000]] 사업, 인터넷 사업 등에서 라이벌이 될 화근을 없애기 위해 12월 20일 자사 지분과 포철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는 1999년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해야 하는 코오롱의 이해와 업계 자율로 정보통신 분야의 구조조정을 이뤄내야 하는 SKT 및 포철 간에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당시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1997년 10월 PCS 사업자의 출현에 따른 지나친 경쟁으로 5개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채비율이 높아져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이러한 상황은 매각 1년 전인 1998년 9월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에선 이동통신 산업의 자율적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구조조정 움직임으로 처음 감지되었다. 한편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측은 미국 부즈앨런&해밀턴에 컨설팅 용역을 의뢰한 결과,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예상 최대 가입자 수에 비해 사업자별 투자 규모가 너무 커서 구조조정기를 거쳐 기지국 연동이 가능한 사업자끼리 합병하는 게 최선이라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통신 구조조정 사업은 1999년 일본 통신사업자 6개사의 3개사 축소와 미국 AT&T의 TCI 인수, 동년 말 영국 보다폰의 미국 에어터치 인수합병 등에서 보듯 세계적 추세로 점차 자리잡았으며, 위와 같은 식으로 세계 통신시장이 다시 짜여져 이는 소비자들이 1등 제품만 선호하는 통신사업의 특성상 선두업체가 아닌 이상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고 도태될 수 있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이다. SKT 내부에서도 초기에는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으나, 당시 SK그룹 회장이던 [[손길승]]은 통신사업 구조조정 시 1등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았고, 합병 뒤 예상되는 약 4조원의 시너지 효과와 향후 IMT-2000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검토에 따르면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에 따르는 6가지 예상 시너지 효과로는 통신망 통합에 따른 비용 절감, 판매조직 공동 활용, 단말기 구입가 인하, 연구개발 공동 활용, 주파수 자원 활용, 국제 경쟁력 강화 등이 꼽혔다. 1999년 12월 24일 SKT 측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세기통신의 지분 51.19%를 코오롱과 포철로부터 사들인다는 기업결합신고서를 냈다. 그러나 PCS 이동통신 경쟁사들이 "SKT가 신세기를 인수하면 경쟁력이 과도하게 강해져 산업합리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공동 대응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고, 노동조합 측도 양사 통합 후에 발생할 인력 감축을 우려하며 합병 반대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에 2000년 1월 SKT 측은 인수팀을 꾸려가며 구조조정 대신 통합된 구성원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식으로 인력관리를 시행했고, 성공적인 조직 통합을 위해 기업문화의 사전 공유, 통합비용의 최소화, 노조 단일화 등 통합 준비를 체계적으로 추진했다. 2월 12일 정통부 측은 공정위에 계류 중인 기업결합신고서에 대해 두 회사가 합병 이후 가입자 및 매출액 기준으로 50% 미만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연말까지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양사 매출액의 5%를 정보화 촉진기금으로 내도록 하는 등으로 기업결합 승인을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SKT 측은 현실을 무시한 비합리적인 판단이라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제한 조치이자 세계적 추세인 구조조정에 반하는 정통부의 의견에 대해 공정위가 합리적인 의견을 내 주었으면 한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SKT의 뜻과는 달리 공정위는 4월 26일 현재의 시장 점유율 57.9%를 2001년 6월까지 50% 이하로 낮춘 후, SK텔레텍의 단말기 대수를 2005년까지 연간 120만대로 제한하며 미이행 시 하루 11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여하는 등의 조건으로 합병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SK 계열사로 정식 편입되어 SKT 측은 2001년 6월까지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다 해당 시점에서 49.99%로 점유율을 낮추어 영업 중단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마케팅 경쟁력을 유지하는 '연착륙' 전략을 추진토록 했고, 세부 전략으로 고객구조 개선, 경쟁사 간 경쟁체제 유도, 이해 관계자 간 우호적 관계를 유지토록 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SKT는 2000년 6월부터 4개월 간 신규가입 축소 및 가입자 해지를 강화하는 '역마케팅' 정책을 추진하자, PCS 업체들이 격렬한 마케팅을 추진하면서 점유율이 53.9%로 떨어졌다. 다른 한편 동년 8월 20일부터 공정위 측의 시정명령을 이행코자 이동전화 단말기 신규 공급을 중단하자, 시장 점유율 축소는커녕 단말기 가격 폭등과 기기 교체의 어려움 등 고객들의 피해가 급증하여 회사의 장기적인 이미지 타격이 우려되자, 9월 30일 단말기 판매를 재개했다.[* 출처: SK텔레콤 사사 p330~334.] 같은 시기 월 기본료 10만 원에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를 1년정도 가입할 수 있게 했는데 이로 인해 2010년대 초반에도 017 요금제를 진득하게 쓰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더 낮은 요금에 음성통화 무제한인 요금제는 널리고 널린 관계로 017 요금제를 쓰는 경우는 없다. 또한 그 해에 011([[SK텔레콤]]) - 017(신세기통신) 기지국 공동서비스를 시작하고 멤버십카드 '017 아이클럽'을 발급하였다. 2001년 4월에는 CI만 'SK신세기통신'으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0361546?sid=101|바꿨고,]] 법인명은 '주식회사 신세기통신' 그대로 했다.([[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011114000542|2001년 9월 반기보고서]]) 2002년 1월 1일을 기해 SKT에 합병된 이후 017아이클럽은 011리더스클럽에 합병되었고, 합병조건에 따라 2003년 1월 1일부터 일반인의 017 [[신규가입]]을 종료했다. 2002년 말경까지 일선 대리점에서 신규가입을 이어갔지만 011 마케팅에 집중하는 바람에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10100002/2002/08/010100002200208150649068.html|017을 홀대했다.]] 여담으로 합병 초기 옛 신세기통신 단말기에서는 전파가 잡히는데 [[SK텔레콤]] 단말기는 전파를 못 잡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통신망의 품질격차 때문이 아니다. 합병 당시 사용 중인 017용 단말기 전량에 대해 로밍 업그레이드를 실시하여 011용 주파수 대역을 함께 사용하도록 한 반면, 이용자수가 훨씬 많았던 011용 단말기에는 별도의 조치를 시행하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017 전용 중계기를 철거해 재배치하고 신규단말기는 당연히 모든 대역을 사용하도록 세팅되어 차이가 없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