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B (문단 편집) === 결성과 해체 === 원래 [[윤도현]]은 밴드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90년대 시장 환경상 소속사 입장에서 밴드는 어려웠고[* 90년대 록 음악을 했던 [[신성우]], [[김경호]] 모두 솔로로 데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완규]] 역시 생활고로 인하여 솔로로 전향.][* 90년대 록밴드로서 큰 성공을 거둔 팀은 '걸' 이 있으나 이마저도, 2집까지 나오고 멤버 간 불화로 김세헌이 탈퇴하였다. 그러나 김세헌 역시 밴드에 강한 애착이 있었기에, 이브(EVE) 를 결성하였고, 역시 사정상 밴드는 어려웠기에, 자신을 보컬로 내세운 후, 나머지는 객원 멤버 및 연주자 형식으로 하려 하였다. 이후, 2집에서 G고릴라를 정식 멤버로 들이고, 3집에서 박웅, 김건을 정식 멤버로 들였는데 이 황금라인업으로 나온 3,4집이 걸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가 YB가 월드컵으로 인해 대중적 인지도가 확 늘어난 시기.] 활동 소속사 사장은 윤도현의 1집이 성공하면 밴드를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결국 1994년 말 윤도현의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발매되었으나,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여 밴드 데뷔는 한참이나 늦어지게 된다. 이후 1995년, 윤도현의 첫 공연을 위해 모인 밴드 멤버들이 YB의 시발점이 되었고, 1997년 2집 <[[윤도현 and Band]]>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1996년 개봉된 영화 [[정글 스토리]]에 구성원 4명 모두가 출연한 적이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7년 YB.jpg|width=100%]]}}} || ||<#000000> 1997년 2집 발매 이후 나온 기사. 장발이었던 김진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1집의 거칠지만 방향성이 적었던 패기가 2집에서 드러난 후, 3집 <소외>에서 진보적이고 반항적인 메시지로 정돈되며 YB는 하드록의 대들보로 부상한다. 이때 YB는 [[민중가요]] 록그룹 '메이데이'의 음반에 객원 세션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록그룹이었다.[* 그리고 베이시스트 박태희, 드러머 김진원 모두 이 메이데이 출신이었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철문을 열어', '가리지 좀 마',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먼 훗날' 등의 록 발라드도 인기를 끌었다. 1999년에는 4집이자 리메이크 음반인 <[[한국 ROCK 다시 부르기]]>를 냈는데, [[들국화(밴드)|들국화]]의 리메이크 '[[그것만이 내 세상]]', '돌고 돌고 돌고',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빅토르 최]]의 '[[혈액형]]' 등등 모든 트랙이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단순한 상업적 리메이크를 넘어 한국 록을 집대성했다는 호평을 받게 된다. 그러나 4집을 내고 얼마 안 가 2000년도에 정동문화회관에서 정식으로 해체 공연을 하며 밴드는 해체되고 만다.[* 이 날 멤버들과 관객들 모두 울었다고.] 이유는 밴드의 노선[* 대중성을 좇을 것인가, 하드 록 음악을 고집할 것인가]을 두고 생긴 윤도현과 유병열의 갈등[* 물론 지금은 화해해서 윤도현이 유병열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하고, [[나는 가수다]]에서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와 경제적 문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