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jtL (문단 편집) == 여담 == *팀명이 멤버들 이름의 이니셜 조합인데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의 앞글자를 따 '장토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문 기사에선 좋더라(조터라)라는 드립을 쓰며 보도 되기도 했고, 일부 안티들은 재털이(재터리)라고도 불렀다. *jtL 멤버들은 jtL 1집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보컬트레이닝을 받아봤다고 한다. H.O.T. 활동을 할 때에는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다고. *jtL은 처음부터 프로젝트 그룹으로 기획된 그룹이라 그 인기에 비해[* 팬클럽 인원이 역대 2위였다. 1위는 당연히 [[H.O.T.]]] 활동기간이 2년 반으로 매우 짧았지만 멤버들이 번 돈은 jtL 시절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문희준]] 또한 [[H.O.T.]] 시절보다 안티들이 들끓었던 솔로 활동 때 번 돈이 훨씬 많았다고 했다. (문희준은 대중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유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티와 수익은 상관없었다. 당시 문희준의 솔로 음반판매량이 약 40만장 정도였는데, 같은 해 [[이효리]]의 '텐미닛'이 20만장, [[신화(아이돌)|신화]]가 30만장대 였던것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높은 판매량이다.) [[S.E.S.]] [[유진(1981)|유진]]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한 걸로 보아 1세대의 그룹 활동 시절 정산계약조건이 얼마나 안좋았는지를 알 수 있다.] * 활동 초기 [[SM 엔터테인먼트]]와 [[이수만]]의 방해 공작으로 유명하다. jtl은 ‘놀아나는 아이들’이란 가사에 인세 20원을 언급하는등 대놓고 이수만을 디스하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을정도. 1집 타이틀곡 ‘A better Day’는 SM의 방해로 음방활동을 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케이블 방송에도 출연하지 못했다. 뮤직비디오 프로모션도 되지 않는등 노골적인 방해 공작에 결국 열받은 클럽 H.O.T.가 SM 사옥 찾아가서 집단항의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결국 앨범 발매후 한 달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수있게 되었다. 한달이 지났음에도 지상파에서 1위를 하고 게릴라 콘서트에 1만 명 이상이 운집했을 정도로 당시 인기는 굉장했다. * SM의 만행은 jtL 이후 멤버들이 솔로 활동을 할 때인 2006년까지도 계속되었다. 2004년 jtL이 예전미디어와의 계약이 끝나가자 SM은 한국이 아닌 중국 투어를 위해 일시적으로 H.O.T.를 하자며 멤버들에게 제안을 하는 희대의 개수작을 부린다. ~~누가봐도 SM 주가올리기를 위한 속셈~~ SM은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냈다는 기사를 주기적으로 내었으나, 멤버들은 동의한 적이 없었고 SM의 일방적인 언론플레이였다. [[https://v.daum.net/v/20030826085217513|기사]]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03082478028|기사 참고]] *프로젝트가 만료된 후에도 이듬해까지 각종 공연에서 jtL 로서 무대에 함께 섰으며 멤버들이 각자 솔로로 데뷔한 이후에도 서로의 공식적인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인증샷을 남기고 [[장우혁]]의 뮤직비디오에 [[이재원(가수)|이재원]]과 [[토니 안]]이 참여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3년 MTV 아시아 어워드 수상소감에서 멤버들이 다같이 "대~한민국"을 외쳤다. *멤버 모두가 집안에서 막내다. *[[현진영]]이 4집으로 컴백할 때 '용쟁호투'란 곡이 타이틀곡일 예정이었으나, jtL이 먼저 영화 '용쟁호투'의 주제가를 샘플링한 'Enter The Dragon'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4집 타이틀곡을 '요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SM 출신 선후배이기도 한 현진영과 jtL은 콜라보 무대를 하기도 했다. [[https://youtu.be/buwMK3GzVGQ|관련 영상]] [[분류:jt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