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라테 (문단 편집) === 기원 === 당시 류큐는 15세기 상씨 왕조 때부터 개개인의 [[무기]] 소유가 금지됐었기 때문에, 맞서 싸울 방법이 맨손 무술밖에 없었다. 가라테의 기원은 정확치는 않지만 크게 세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1. 1300년대 중국 복건성에서 중국인 36인이 이민해 오키나와에 중국 무술을 전수 해줬다는 설. 하지만 당시 권법 발달에 대한 의문으로 신빙성이 떨어지며 정확한 이야기로 보지는 않는다. 2. 1756년 중국 사신 공상군이 오키나와에 중국 남권을 전수해줬고 현지의 무술과 합쳐졌다는 설. 1762년 일본 사쓰마번으로 공물을 바치러 가던 오키나와 인들이 풍랑을 만나 지금의 토사번에 표류를 하게 됐는데 이때 이야기를 기록한 대도필기에서 7년전 오키나와에 공상군이라는 중국사신이 중국 남권을 전수해줬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가라테의 카타에는 공상군이라는 이름의 동작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기술체계에서 무척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일리있는 주장이다. 3. 자생설. 오키나와 토착 무술이라는 설과, 인도와 중국 및 동남아 등지에서 무역을 하던 오키나와 인들이 그들에게 무술을 배웠고 그 무술이 결합하여 현재의 가라테의 원류가 되었다는 설이다. 총 세가지 설이다. 종종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고려의 [[삼별초]] 잔당이 [[류큐]]에 정착하여 살면서 전해주었던 [[수박(무술)|수박]]이 기원이라는 주장도 하는데, 실증적인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아무튼 사쓰마번 침공 시절 류큐에선 가까운 중국 복건성 쪽이나 사쓰마번쪽이랑 직접 교류하던 시기라 중국 남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나라 및 중국 대륙 그 자체를 가리키는 '唐'자도 히라가나로는 '가라(から)'라고 쓰는데, 여기서의 '가라테(唐手)'는 '중국의 권법'이라고 풀이된다. 일본의 무술로 정착되면서 이후 일본은 '당(唐)'자가 당나라 곧 중국을 연상시킨다며 폐기되고 맨손(空)을 쓴다고 하여 '空手(공수)'로 통일되었다. 당(唐)자는 '도' 라고 읽지만 '가라' 라고 읽을 수도 있으며 공교롭게 공(空)자와 발음이 겹쳤기 때문이며 맨손 무술인 특색과도 어울렸던 것이다. 애초에 상당수의 가라테 카타(型)도 중국에서 왔다.[[http://www.wuweidao.com/karate_kata.htm|#1]][[http://lashorei.org/links_articles/kata/compkata.pdf|#pdf]] 당연히 류큐인들이 이를 개량 및 발전시켰음은 물론이다. 태권도의 품새도 공수도의 카타와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만 어원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다. 특히 중국 남파 [[소림사|소림권]]에서 유래한 중국 [[남권]]의 권법들과 유사성을 보이며, 그 중에서도 백학권[* 영춘백학권(지선영춘권)과는 다르다. 영춘백학권은 영춘권의 한 분파이다.]이라는 권법과 가장 유사성을 띤다. 교본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 체계도 그렇고 아예 특정 카타(形)와 동작 및 순서가 같은 투로도 존재한다. 가라테의 기본인 삼전(三戰)서기나 삼전카타는 남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형(步形)이다. 때문에 중국에선 가라테를 중국무술로 여기는 이들도 꽤 있고, 심지어 그 가라테에서 기반한 [[태권도]]까지[* 다만 가라테가 모체이긴 하나, 발차기 위주로 진화하는덴 [[택견]]에서도 꽤 영감을 받긴 했다.] 중국무술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중국 태권도는 [[ITF]] 태권도(중에서도 북한계)가 초창기 많이 보급되어 태권도가 북한 무술인줄 아는 사람도 있다. 허나 ITF 태권도 자체가 항목에도 있듯 남한 출신 [[최홍희]]가 남한에서 설립한 단체다. 그가 이후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북한에도 전수한 것.] 한 예로 2007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대회에서 한 --중뽕-- 아나운서가 "태권도는 중국 것이다. 중국무술 가라테를 일본이 일본 것이라고 하는데, 태권도도 한국이 자기 것이라며 왜곡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이건 브라질리언 주짓수가 유도에서 기반했으니 브라질이 아닌 일본 무술이라는 소리랑 비슷한 말인데, 판단은 알아서 하자. --즉, 뻘소리.-- 중국 사람들도 영향을 줬다 정도면 모를까 태권도가 중국 무술이라는건 욕 먹기 딱 좋은 소리라고 반박하기도 하는거 보면 걍 [[케바케]]인듯. [[바이두]]에도 태권도는 한국 무술로 나온다.][* 당연하지만 무술을 비롯한 각국, 각 지방의 문화는 그 나라의 사람, 기후, 지형을 포함한 모든 인문지리의 영향을 받으므로 설령 외국에서 건너온 문화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인 국가의 새로운 문화가 된다. 당장 중국 속담에도 '귤도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일부 --국뽕-- 태권도계 사람들 중에는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은 역사가 낱낱이 밝혀진 현 시점에서조차, 가라테가 대몽항쟁 때 류큐로 몰려간 삼별초에서 익히던 [[수박(무술)|수박]]의 후신이며, 그것이 다시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식으로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오키나와 고려기와의 존재조차도 몰라서 이런 주장자체가 없었는데 2009년에 역사추적에서 삼별초, 오키나와로 갔는가를 방영한 후부터 가라테가 수박의 후신이라는 주장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1세기 들어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시도하는 일종의 역사왜곡 물타기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류큐에 전해졌다고 하면 양반이고 아직 연관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일본 열도에도 전해졌다고 말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하자. 심지어 더 극단적으로 나가는 주장도 있는데 류큐 왕국을 한국사의 일부로 편입시켜야한다는 주장인데 당연히 말도 안된다. 한편, 오키나와 전통씨름이 허리띠를 잡고 진행하기에 [[스모]]보다는 한국의 전통 [[씨름]]과 모양이 비슷하다며 이걸 갖고 오키나와테 역시 한국에서 유입되었을 것이라며 억지추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옷의 일부를 잡고 겨루는 몸싸움 기술은 세계에서 흔하기에 연결고리에 대한 증거로 삼기엔 근거력이 많이 떨어진다. 일본에서도 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의 침공 당시 [[류큐 왕국]](지금의 [[오키나와]]) 사쓰마번이 무술 금지 정책을 폈기 때문에 몰래 수행하느라 가라테가 발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가라테 연맹 쪽에서는 부정되고 있는 내용이다. 이와는 별개로 원래는 류큐인들이 정말로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무술'''이었다고 가정한다면, 현재는 그 지배국인 일본의 무술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씁쓸한 부분이 있다. 다만 무작정 일본 무사를 상대로 하는 무술이었던 것도 아니고 들짐승이나 같은 류큐인들 사이에서도 싸움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었던 만큼 일방적으로 항일무술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비중만 놓고 보면 후자의 상황이 훨씬 흔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가라테의 형태와 이미지는 일본 본토에서 정립된 것이며 역으로 오키나와테에 역수출한 부분도 많기에 그러한 인식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오키나와에서조차 일반인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한정된 사람에게만 전승되는 비장의 무술 같은 것이라 유파라는 개념도 없었는데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각각 따로 놀던 내용을 통일한 것이 오키나와 삼대유파 중 하나인 강유류(剛柔流/고쥬류)라고 한다.[* 그것도 1929년에 메이지 진구에서 연무를 선보인 후 '유파 이름이 뭡니까?'라고 질문받자 대답을 못 하고 집에 돌아간 후 이름을 생각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