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몬(일본) (문단 편집) == 번외: 한국의 가장(家章)과 종문 == 한국에도 가몬과 비슷하게 각 종친회를 상징하는 문양인 종문(宗文)이 있지만 일본의 가몬을 참고하여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근본 있는 전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종문이라는 명칭부터가 새로이 만들어진 이름이다.] 다만 문양 자체는 존재했는데, 집안을 상징하는 도장인 가인(家印)을 사용하였고 떡살이나 다식틀도 각 집안마다 고유한 문양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바꾸거나 빌려주지 않았다. 떡살 문양을 정하거나 바꿀 때에는 문중의 허락이 필요했을 만큼 가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떡살 자체에 택호와 제작 날짜를 새겨 대대로 물려줬고, 절대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에는 떡이나 다식만 봐도 어느 집안에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중앙집권제가 강력하게 작동했던 시대였던 만큼 사사로이 가문의 문양을 드러내며 세를 과시하는 것은 반역으로 간주될 수 있었기에 손님들이 모이는 잔칫상에 떡을 올리는 식으로 은근히 가세를 자랑했던 것이다. [[파일:art_15997436062865_0e5811.jpg ]] 현대의 종문들은 이런 전통 문양을 참고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일본 가몬을 모방했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정확히는 '''집안의 문양을 드러내는 행위'''를 따라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서양의 엠블렘과 일본의 가몬을 아울러 참고했다고 볼 수 있다. 가몬과 흡사해 보이는 이유는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널리 사용된 문양이기 때문이다.[* 해주 최씨 종문처럼 서양식 엠블렘을 참고한 문양도 있다.] 한국은 조선 후기에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문]]을 만든 것이 종문을 첫 도입한 사례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여러 부문에서 앞서 있던 일본 제국을 참고하였고, 일본 황실의 국화문장을 따라하여 전주 이씨의 상징 자두꽃(오얏꽃)을 도안으로 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일본 복식을 입을 때 붙일 가몬을 만들기도 했으며 특정인이 의뢰하여 만든 가몬들이 [[매일신보]]에서 1916년 9월 3일부터 12월 5일까지 연재되기도 했다.[[https://twitter.com/chochohon/status/1514599847248404485|#]] 회사문장을 의뢰한 경우도 있었는데, 당대에는 가몬을 쓸모있는 수입문화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