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요톱10 (문단 편집) === 시즌1 === [[1981년]] 첫 방송해서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까지 많은 인기를 얻은 가요 프로그램이었으며, [[1981년]] [[2월 10일]] [[KBS 1TV]]에서 첫방송됐고 그 해 [[9월 8일]]부터 가을 개편으로 [[KBS 2TV]]로 옮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2I8nLHLSh4Q|초기 오프닝.]] 로고를 보면 미국 [[NBC(미국 방송)|NBC]] 로고랑 상당히 많이 닮았다. ~~표절?~~[* NBC 로고의 공작 날개 모양은 6개, 가요 톱텐 로고는 그보다 1개 적다.] 이 로고는 어레인지되어 2015년 추석특집 '전무후무 전현무쇼'에 로고로 다시 쓰였다. 1993년 6월 4주 들어 [[https://blog.naver.com/garm10/80203892033|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타이틀곡으로 바뀌고]] [[1995년]] [[5월]] 후반기 오프닝부터는 초기에 있던 로고가 없어졌으며, 로고는 1996년 3월부터 1위 발표할 때 그래픽으로 등장했다. 1996년 3월 1주부터 [[https://blog.naver.com/garm10/220304089720|타이틀곡을 바꾸었지만]][* 락 밴드 [[CRASH]]가 연주했다.] 회차에 따라 1993년판 타이틀곡을 쓰기도 했으며, 1997년 10월 5주부터 1993년판 타이틀곡으로 환원되어 종영 시까지 사용했다. 가요톱10 초기 오프닝으로 쓰였던 곡은 Maynard Ferguson이 연주한 Nine To Five다. [youtube(klx-7kt1U-0)] 가요톱10 오프닝 음악 [youtube(PAbD5Yl43Tg)] 코러스라인 일부 [[문화방송]]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처럼 상당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프로그램으로 손범수가 실제 KBS 보도국 스튜디오에서 뉴스처럼 오프닝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시그널도 [[KBS 뉴스 9]]에서 쓰는 시그널 BGM이 나왔었다. 그와중에 여의도 신관 3층 보도국 스튜디오 뒤에서 깨알같이 마임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의 영상은 콩트식으로 송대관과 김원준, 부활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들을 모아놓고 대사가 있는 드라마처럼 상황극 컨셉으로 만든 오프닝이다.[[https://youtu.be/j-MajEiNpGI|#]] 그 외에도 송승환이 진행하던 시절에는 1위 트로피와 수상 봉투가 없어졌다고 난리를 친 뒤 그거를 전해주는 장면을 콩트 형식으로 내보내는 시도도 있었다. [youtube(mfBan2a2X2U, width=50%)] [[1997년]] [[9월 3일]] [[H.O.T.]].의 행복 무대 장면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전설의 본좌급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던 가요톱텐은 1997년 말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온 국민을 충격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넣은 [[1997년 외환 위기|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KBS는 [[공영방송]]의 입장에서 급격히 떨어진 국민적 사기와 깊이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는 당시의 시기 상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기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편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실제로는 IMF 여파로 광고수입이 급갑하기 시작하자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들을 정리한 것을 저렇게 포장한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개편 시기와 관계 없이 가요톱10을 비롯한 다수의 연예오락프로그램들을 강제 종영시키는 바람에, 17년간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명성과 입지를 다져왔던 '가요톱10'은 '''1998년 2월 11일 방송을 끝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렸다.'''[* 실제로 종영 전 1998년 1, 2월에도 [[1997년 외환 위기|시대가 그런지]] 관객소리조차 작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2월 11일 종영 당일만큼은 출연자의 절반 이상이 아직 대중에게 생소했던 신인가수들이었고 곡의 분위기도 대부분 잔잔하거나 우울했다.][* 이때 방영 중이던 [[수목드라마]]와 [[주말드라마]]인 '[[그대 나를 부를 때]]'와 '[[웨딩드레스(드라마)|웨딩드레스]]'가 조기종영되었다. 그러면서도 ~~[[서세원쇼]]~~, [[코미디 세상만사]],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은 제외.][* 만약에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한다면 최장수 가요 프로그램으로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IMF 때문이 아닌 2000년대 초반에 불거진 순위제 공정성 논란으로 폐지되었을 수도 있다.] 그 뒤 '[[브라보 신세대]]'라는 가수들과 함께 예능쇼를 진행하며 노래를 듣는 특이한 형태의 프로~~분명 시기상 예능프로그램이 적절하지 않다고 했는데 또 예능을 편성했다.~~로 바뀌어 진행되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4개월 만에 종영되었고[* 당시 MBC도 3년간 방송됐던 인기가요 베스트 50을 종영하고 젊은 그대를 신설했다가 얼마 못 가고 그 뒤 [[생방송 음악캠프]]를 신설했지만 2005년에 일어난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으로 어처구니없이 막을 내리고 [[쇼! 음악중심]]으로 다시 시작,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 중이다. SBS도 TV가요20을 종영하고 [[SBS 인기가요]]를 신설했다.], 당시 국민 음악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10'을 주인과 마찬가지인 시청자들의 의견 반영도 없이 KBS 멋대로 무리하게 종영한 것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상당히 거셌다. 참고로 이러한 행태는 1994년 [[젊음의 행진]]을 종영하고 나서 청소년 열린음악회를 편성하던 상황과 비슷했는데 청소년 열린음악회가 별 인기를 얻지 못하고 다음 개편에서 종영한 게 판박이였다. 그 뒤 [[뮤직뱅크]]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기획해서 '가요톱10'의 명맥을 잇는 KBS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재도약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 MBC에서는 [[생방송 음악캠프]][* 단, 이쪽은 2005년 10월부터 [[쇼! 음악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하였다.]를 개설하고 SBS에서는 [[SBS 인기가요]]를 재개설해 이전의 KBS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으며 가요톱10의 정통성을 잇는 프로답게 옛날 공정성은 다른 지상파 가요 순위프로보다 높았지만 지금은...~~사실 가요톱10이 지금까지 존재했어도 공정성 논란은 생겼을듯하다. 요즘은 순위제 자체가 의미 없기 때문에 일찍 종영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대체로 방송에 소개되는 순위는 30위부터 10단위로 끊어서 소개되었다. 30~21위까지 소개 후 한두명(팀)의 가수가 나와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소화한 후 또 다음 턴으로 똑같이 진행했다. 1위 후보곡은 2 or 3곡이냐에 따라서 10위권 안에 있는 노래는 10~3위 or 10~4위까지 소개되었다. 1993년에는 10위권 순위를 먼저 소개하거나 20~11위를 먼저 소개했으며 중간에 1위 후보 중 3위를 먼저 공개하는 등 변동은 많았다. 심지어 10월 2주에는 1위 후보가 4곡이었으며, 9월 5주에는 1위 후보곡 없이 10위부터 1위까지 다이렉트로 순위 소개를 했다. 근데 이 순위 소개 방식은 1980년대 초반 부터 후반까지, 1984~1988년 정도에도 했던 방식 이기도 했습니다. 1위 선정 결과는 세대별 득표수를 보여준 다음 총합을 보여준다거나, 총합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예외적으로 1995년 12월 둘째주는 30~18위, 17~6위까지 소개하고 세대별 선호도 순위를 발표한 다음에 5위부터 2위를 소개하고 1위는 직접 무대 공연으로 공개했으며, 93년 11월 둘째주는 순위 소개를 평소와 같이 진행한 뒤 연령별 1위 가수의 무대를 만나 보았다.][* 초창기에는 시상식 형태, 결과만 알려주는 형식으로 1위를 알려주었으며 1993년 9월 2째주는 10~6위를 소개했고 1995년 4월 2째주의 경우에는 10위 권 순위만을 소개했다. 그 외에도 50~31위 곡을 자막으로 보여줬을 때도 있다.] 시청자 코너 및 가요계 뉴스 코너도 있었다. 양종철이 거리를 찾아가 시민들에게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는 무엇인지 물어보는 코너 '요리조리 톱 10','요리조리 톱 10' 코너를 토대로한 장두석의 '무조건 메들리' 이 코너는 장두석의 노래와 함께 이창명,유재석 등 당시 신인 개그맨들의 코믹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김국진이 매주마다 한 가수를 초대해 질문하는 '피할 수 없어요' 코너도 있었다. 길보드차트도 있었으며 1995년 5월 땐 이름이 같거나 특징이 비슷한 두 가수를 부르는 코너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