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결체 (문단 편집) === 한 문장엔 사실 하나만 쓴다. === 간결체 제1원칙. 복문 대신 단문을 쓰고, 되도록 접속사를 줄인다. 더 나아가 문장 구조를 주어+서술어, 주어+목적어+서술어로만 제한하기도 한다. 문장에서 부사 없이 형용사만 쓰는 것도 위 방식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원칙인 압축을 따르지 않고, 문장 쪼개기에만 열중하지 말라. 의미없는 단문장들이 가득한 글은 간결체의 탈을 쓴 [[만연체]]다. 이런 글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죽은 글 같아 읽는 맛이 나지 않는다. 간결체로 수정 시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간결체는 짧은 글에 많은 내용을 담는 거다. 무작정 생략하는 것과 다르다. 필요하다면 부사든, 접속사든, 복문이든 써야 한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들은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 *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체를 넘어 예술 분야 전반에 걸친 강령에 가깝기에 덧붙인다. 간결체로 유명한 헤밍웨이나 김훈 모두 신문 기자 시절 묘사를 철저히 단련했다. 그리고 이를 소설에 접목해 큰 문학 성과를 거두었다.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덜 삭은 젖내가 나던 면의 푸른 똥과 면이 돌을 지날 무렵의 아내의 몸냄새를 생각했다. 쌀냄새가 나고 보리 냄새가 나던 면의 작은 입과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아리를 생각했다. 날이 선 연장을 신기해하던 면의 장난을 생각했다. 허벅지와 어깨에 적의 칼을 받고 혼자서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산 위에서 불타는 집을 내려다보던 면의 분노를 생각했다. ...젊은날, 국경에서 돌아와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젖비린내 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던 슬픔을 생각했다.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 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 * [[김훈(소설가)|김훈]] - [[칼의 노래]] 칼의 노래의 명장면이다. [[이순신]]을 자식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통제사로서의 고뇌가 얽힌 한 사람으로서 표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