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손미 (문단 편집) === 저평가 받는 이유는? === 간손미라 불리는 것에서 보듯 이들이 뛰어난 인재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 유비는 극히 짧던 서주목부터 원술 토벌, 여남시기까지 말고는 삼고초려 이전에 제대로 된 조직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긴 하다. 황건동란 이후 동탁토벌부터 원소에게 의탁할 때까지 모두 지방군벌도 안 되는 [[용병]] 부대나 [[민병대]] 수준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유비가 제갈량 등용 이후에도 오랫동안 조직의 전술 참모 역할을 스스로 수행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 간옹의 경우 솔직히 위에 서술된 확인되지 않은 사항을 제외하면 활약이 너무나도 없다. 물론 유비가 아무것도 없던 초창기 시절부터 변치않은 충성심은 칭찬할 만하나 그것은 관우나 장비도 마찬가지며 그들의 무장으로서의 활약에 비해 간옹 자신의 문관으로서의 역할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여러 행정업무를 맡았을 수는 있으나 유비 자체가 서주목을 제외하면 떠돌이나 지방 한직에 불과했으니 특별히 공적을 세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비슷한 직위에 있었을 합류 초기 방통에 대한 사람들의 대접이 어땠는지나[* 노숙이 방통은 그 정도의 그릇이 아니라며 자기 세력도 아닌 방통을 변호하고 제갈량도 방통을 옹호했다.] 조조 휘하 문관들이 행정력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간옹은 활약이라 할 만한 것이 전무하다. 또한 간옹 최대의 업적이라 할 만한 유장 설득 역시 간옹 자신의 능력이라고만 볼 수 없다. 유장은 유비군에 대해 두려워 했으며 낙성이 점령된 후 적의 군대가 거의 코앞이라 할 만한 곳까지 진격해서 항복을 권유하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유장이 성도에서 군을 빼지 못한 것이나 잦은 항복, 유비의 빠른 인심장악을 보면 유장은 익주의 민심을 얻지 못했던 것을 스스로 자각한 듯하다. 굳이 간옹이 아니라 누가 갔어도 항복했을 수 있단 것.[*반론 비록 유장이 유약한 성격이고 패배가 기정사실인 상황이라곤 하나 항복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꼬장꼬장한데다 너무 뻣뻣한 태도로 윽박지르면 구 유장군 세력들에게서 '''"가뜩이나 항복 요구하러 온 주제에 예의까지 없네? 저런 무도한 녀석들에게 우리가 패배하게 되었다니..."'''라는 태도로 반감만 사서 이후 반란 등이 생길 요량이 되고, 너무 항복해달라는 듯 설설 기게 된다면 역으로 '''"유비도 의외로 약한 면이 있다."'''라면서 항전을 요구하여 싸우게 되거나 아니면 항복한다고 해도 이후 유비 정권을 만만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란이 거의 없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익주를 안정화시켜 한중으로 나아간 것으로 볼 때 간옹이 선택되어 유장의 투항을 받아낸 것은 유비나 제갈량 등의 입장에서 상대 유장군의 현실이나 이후 자신들에게 편입되는 그 인수인계 과정의 첫 장인 항복과정의 절차를 수행하는 데에 간옹이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 손건은 분명 유비의 사자로서 꽤나 외교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간손미 중에서는 가장 확실하게 능력을 보여준 셈. 그러나 이 또한 모두 손건의 공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것이 언제나 유비는 모두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기에 대다수의 군웅들이 유비를 포섭하기 위해 그를 받아들였다. 이건 유비 자체의 행동거지나 관리도 중요했지만 외교협상이나 자리에서 매번 유비에 대해 [[광고]]하거나 평하는 능력도 중요했기 때문에 손건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다름아닌 형주로 이동했을 당시 형주 호족 세력의 중심인 [[채모]]를 논파하고 유표에게서 유비를 받아들이라는 결정이 나오게 한 일이다. * 미축은 유비군 초창기에 가장 이름난 명사였다고 하니 적어도 보통은 가는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긴 한다. 그러나 사실상 가장 힘들 때 돈을 주고 그 이후 따랐다는 것을 제외하고 전공을 따지기엔 부족하다. 미축의 재산이 어마어마했다고 전해지지만 유비는 이미 여포에서 소패에서 쫓겨날 때부터 간신히 탈출하였고 관우가 하비에서 조조에게 항복할 때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패퇴한 군사만 끌고 겨우 원소에게로 향했다. 이후에도 매번 쫓기고 거점을 빼았기길 반복하였는데 이 재산이 온전하게 남아있었을 리가 없다. 이후 딱히 관우 사후까지 거론되는 적이 없으니 실무를 보며 문관역에 충실한 것으로 추정.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유비를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도운 점''', 중앙정부의 관리직을 버리고 따른 점은 쉽지 않은 결정임이 확실하다. 적어도 남들과 다른 비범한 모습은 보여준 셈. 간손미 자체가 모두 개국공신이고 결코 유비의 가장 힘든 시절부터 함께한 공이 적다고 하기 힘들지만 공적과 능력은 별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축은 분명 명사에 재산을 많이 투자했고 투자를 하는 안목을 높게 쳐줄지언정 결국 기록상에 남은 실무능력이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간옹이나 손건 또한 마찬가지다. 또 이들의 벼슬이 높다고 해도 그것이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만 볼 수 없다. 신하들이 자신에게 오랫동안 충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개국공신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대우와 보상은 낮아질 수 없다. 실제 [[동고동락|어려운 시절을 유비와 함께한 것 자체]]가 유비 입장에선 크나큰 공이라 벼슬을 낮게 주기도 힘들다. 게다가 미축은 군주의 [[처남]]이다. 사실 이렇게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삼국지의 유명한 조연들 대부분은 전략전술, 계략, 행정면에서 큰 공을 세운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삼국지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관우|장수들이 위풍당당하게]] [[장비|혼자서 많은 적들을 쓸어버리거나]] [[조운|호쾌하게 전장에서 무쌍을 하는]] [[여포|초인적인 전투장면에서]] 크게 흥미를 갖거나, 문관들의 경우엔 [[제갈량|적들의 모든 행동과 심리를]] [[사마의|마치 손바닥 보듯 꿰뚫어보며]] [[가후|지혜와 책략으로 무인들을 섬멸하며]] 전장을 자기 뜻대로 쥐락펴락하는 미래예지급의 초인적인 혜안에 탄복하는 등, 역사물이라기보단 '''히어로물'''에 가까운 느낌으로 기대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나 [[진 삼국무쌍]]을 비롯하여, 삼국지 인물들 '''개인'''이 초인으로 나와서 수천의 적을 혼자 상대하거나 인외의 괴물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배틀물 게임이 현재까지도 롱런하는 이유도 이에 기반한다. 애초에 독자들은 '''삼국지의 영웅들 = 일기당천의 [[슈퍼히어로]]들'''이라는 인식이 있고, 게임들도 그 니즈를 충족할 물건으로 나오기 때문. 삼국지가 정사보다 연의쪽이 훨씬 지명도와 인식이 높은 이유도 동일하다.] 그렇기에 내실을 탄탄히 다져주고 화려한 겉무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간손미에 대한 주목도도 내려가고, 동시에 평가도 그런 메인 무대에 활약하는 무장들에 비해 훨씬 내려가는 것.[* 보급담당으로 유명한 [[초한지]]의 [[소하]] 역시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소하는 워낙 [[보급]]의 중요성을 묘사하는데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들어지는 예시일 정도로 이 분야의 입지가 탄탄하고, 재상으로서도 명재상으로 평가받고 다른 행적도 많이 남아서 묘사되기에 간손미와는 달리 이러한 저평가가 보기 힘들다. 또 초한지는 삼국지와 달리 [[항우]]같은 특정 몇몇 맹장을 제외하면 장수들의 무쌍열전같은게 주가 되는 소설이 아니기에 간손미와 달리 문관이라고 크게 묻히기도 어렵다.] 즉 다른 네임드 인물들에 비해 간손미는 유비 휘하로서 이름은 많이 알려졌어도 특별하게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나 묘사가 없고 그럴 포지션도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밈이 되어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다. 거기에 전술했던 것처럼 무관/문관 이분법에서 제갈량은 대체로 문관 쪽에 분류되기 때문에 관장조와는 달리 제갈량이라는 뛰어난 전략가+행정가와 비교당하는 것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