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척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파일:Ggperlt.jpg]] 네덜란드와 함께 세계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간척사업 국가[* 고려시대부터 간척사업 역사가 800년이 넘는다.]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새만금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방조제보다 더 긴, 세계 최대의 방조제이다. 붉은 부분이 구 간척지, 파란 줄무늬가 당시 공사 중이던 간척지. 노란부분은 그 유명한 [[새만금]]. 단, 붉은 부분은 자연적인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곳도 포함한다. [[파일:2NKAwuf.gif|width=50%]] [[파일:ilrHJ52.png|width=50%]] 삼국시대 서기 300년경 전북 지역 해안선[*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의 전주 코앞까지 바다가 있었다.]과 현재 2015년의 해안선. 자연적인 퇴적 작용과 간척사업을 통해 호남평야가 만들어 졌다. [[파일:external/www.incheonin.com/rlZHzvykHeE2IcsJ5rHTaqhxR9C.png]] 간척에 따른 [[강화도]] 해안선의 변화 한국 서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갯벌]]이 넓게 발달하고 수심이 얕아 간척에 좋은 입지를 가졌다. 소규모 간척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행했는지 불분명하나 [[고려]] 시대부터 간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235년 강화 영안제 축조를 시작으로 1246년 고려 서북면 병마절도사 김방경이 [[평안북도]] 정주군(현 정주시) 위도(葦島)에서 바닷가에 둑을 쌓고 개간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56년 몽골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제방을 쌓아 둔전을 만든 고려사 권79의 기록이 보인다. 1356년 전라도 임피 연해지역에 제방을 쌓고 개간한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서 1414년에는 경기도의 통진(通津)과 고양포(高陽浦)[* 현 [[김포시]] 통진읍과 월곶면 일대. 참고로 고양포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sm=tab_jum&query=원머루나루|원머루마루]]라는 이명이 있으며, [[강화도]]로 가는 선박의 나루터였다고 한다.]에 방조제를 축조하였고, 세종 때에도 해안에 둑을 쌓아 농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16~17세기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인구압과 수리시설 및 축조 기술의 발달로 민간에 의한 간척 사업이 활발했고 치부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해남, 진도 굴포, 노화도, 고금도 등을 간척해서 치부한 [[해남 윤씨]] 가문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0091744|그 예]]이다. 이러한 간척지는 언답(堰畓), 언전(堰田)이란 명사로 언급되며 기록에서도 ~포(浦)로 불리던 곳이 ~평(坪)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산미증식계획]] 등을 목적으로 한 서남해안의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현대의 토목 기술을 사용한 대규모 간척 사업은 광복 이후 이루어졌으며 농지 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가 이후 산업단지나 항만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도 간척사업이 시행되었다. 2008년 기준 간척지 총 면적이 1,100㎢ 정도로 달하며 [[새만금]]과 [[인천경제자유구역]] 등 공사 중인 면적도 440㎢에 달한다. 2018년 기준으로는 3,449㎢[* 다만 강원도의 800km^^2^^ 토지와 국내 미등록 토지까지 포함한 면적이다 실질적으로 늘어난 영토는 2,400km^^2^^ 정도이다.]가 해방 이후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긴 국토이다.[* 1949년 한국 국토 면적은 9만 3,634㎢라는 통계가 나왔고 (남한 기준) 1950~53년 한국 전쟁 당시 영토가 일부 증가했다. 이로서 1954년 국토 면적은 96,929㎢로 집계됐고, 그후 꾸준한 간척으로 1980년에 98,011㎢, 1992년에 99,010㎢, 2010년에 100,032㎢, 2018년에 100,378㎢이다.] 2000년대 들어 환경파괴와 경제성 문제로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며 최대 간척 사업인 [[새만금]] 간척 사업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파일:52mdAGV.jpg]] 1990년대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수립 당시에는 서해안과 남해안 바다를 매립하는 계획이 있었다. 새만금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로 서해안 지방의 섬을 대부분 육지로 만들어버리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논쟁을 겪은 뒤 환경파괴 문제와 비용 대비 경제 효과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2015년경에는 [[경기만]] 일대를 매립해서 3300~5000여㎢의 새 땅을 확보하자는 [[http://www.ptsisa.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28|주장이]]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11494/1|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