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첩 (문단 편집) == 역사 == 역사 용어로는 간첩을 세작(細作), [[제5열|오열]](五列)[* [[스페인 내전#s-4|스페인 내전]] 문서 참조. 우리에겐 4개의 부대 말고 내부에서 호응해줄 5번째 대열이 있다는 발언에서 유래.]이라고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시상황]]에는 전장의 정보와 적 군대의 정보를 얻기 위해 국가나 군대에서 고용한 전시 스파이가 횡행했다. 이들은 잡히면 거의 즉결처형 됐으나, 보이지 않는 이들의 수많은 희생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 [[손자병법]]에서는 향간, 내간, 반간, 사간, 생간이라는 다섯 가지 간첩으로 나눈다. 향간은 지역 주민(민간인 포섭)을 활용하는 것, 내간은 상대 정부의 관리(적국 공무원 포섭)를 이용하는 것, 반간은 적의 간첩을 역으로 쓰는 것([[이중간첩]]), 사간은 배반할 염려가 있는 아군 간첩에게 고의로 잘못된 사실을 알려주어 거짓 정보를 유포시키는 것(역정보), 그리고 생간은 돌아와 보고하는 것(정찰 [[공작원]])이라 설명했다. 손자는 이들 중 반간에게 가장 후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이중간첩이라는 존재가 매우 중요하고, 돌아서지 않도록 후한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서 [[삼국지]]에서도 간첩을 활용해서 공작을 하거나 정보를 얻는 묘사가 나오며, [[몽골 제국]] 시기에도 상인들과 정보원들로부터 적국의 정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에는 환관들이 주축이었던 황제 직속의 정보기관인 [[동창]]이 존재했으며, 여기서 각종 간첩들을 보내 국내외를 감시하고 정보를 얻었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닌자]]가 주로 정찰, 공작, 간첩 행위를 했었다. 특히 국제상인들은 무거운 달구지가 지나갈 수 있는(= 전시에 보급로로 쓰일) 잘 닦인 도로를 잘 알고 있으며 여러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밝아 적국의 사전탐사와 길 앞잡이로 최적이었다. [[한국]]사의 경우 세 나라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삼국시대]]부터 [[도림]], [[거칠부]], [[백석(고구려)|백석]] 등을 적국에 상주시키며 공작을 하고 현지 협조자를 만들며 정보를 수집하는 간첩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며, 이런 직파간첩뿐 아니라 [[임자(백제)|임자]], [[칠중성 전투#s-3|비삽]]과 같은 포섭간첩 묘사도 등장한다. 삼국 간의 전투뿐만 아니라 [[고구려-당 전쟁]] 때의 고구려 첩자 [[고죽리]]에 대한 기록이 [[자치통감]]에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도 간첩과 여러 정보원들(사신, 역관, 상인, 표류인, 기타 등등)을 통해서 외국에 대한 정보를 얻는 묘사가 존재한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201|조선의 스파이들 이야기]] 대표적으로 [[체탐인]]이라는 특수 첩보부대는 여진족 국경을 드나들며 여진족의 정보를 캐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세작을 많이 동원했는데 명나라와 조선이 이들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이 실록에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3103017_002|#]][* 형 군문은 명나라 장수 형개를 말한다. 가등청정은 가토 기요마사이다. 세작들이 '허실을 탐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창고와 무기고에 불을 지르기도 하니 매우 두렵다'고 말한걸로 봐선 당시 전시 스파이가 파괴공작도 감행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구한말]]에는 [[고종황제]]가 만든 [[제국익문사]]가 있었다. 서양 같은 경우 [[가톨릭]] 교회 조직을 이용해 정보를 얻거나 왕실에서 운용하는 간첩, 정보 기관들이 존재해 왔다. 정보 기관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영국]]의 프랜시스 월싱엄으로, [[마드리드]]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방대한 첩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메리 스튜어트]]의 편지를 가로채서 모반의 증거를 잡은 것도 이 사람으로, 이 첩보기관은 현대 첩보기관의 전신이 되었다고 한다. 근대적인 간첩 조직이나 정보기관이 생긴 것은 보통 1850년대 이후 서양에서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이나 식민제국의 확장으로 [[그레이트 게임]] 같은 일이 일어나자 세계적 범위의 정보를 종합해서 국가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었기에 창설되었으며, 군사 분야와 민간 분야, 국내외 분야의 분리도 이루어졌다. 이후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체계화 되다가 [[냉전]] 시기 절정에 이르러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이후 현대 정보문명 사회에 접어들게 되면서 정보 활동은 제 2의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정보라는 것이 단순한 와일드카드, 비대칭 전략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개인과 집단, 국가를 통틀어 모든 인간활동의 필수적인 활동 기반으로 자리잡게 되어 그 중요성은 냉전 당시와도 비교도 안 되게 더욱 커지고 분야 자체도 훨씬 방대하게 확장된다. 설상가상으로 테러와의 전쟁/미국-중국 간의 신 냉전이 동시에 진행되며 그 필요성과 파급력은 가히 압도적인 수준. 이러한 첩보활동은 냉전 시대 이후 중단된 것이 아닌 되려 현대에 들어서 더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 활동의 최우선 순위에 위치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