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감(성씨) (문단 편집) == [[甘]] (달 __감__) == 한국과 중국의 성씨. [[하나라|하]](夏)나라 초기에 지금의 산시성 후현 남서쪽에 감(甘)이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姜)씨''' 성의 일파로 후에 동쪽에 있던 지금의 허난성 이양으로 이동했다. [[상나라|상]](商)나라 때에 이르러 감인(甘人)[* 하나라 초기 감(甘) 땅에서 살다 이후 동쪽으로 이동해 온 일족.]의 수령 감반(甘盤)[* 상나라 왕 소을(小乙)은 재위 6년에 아들 무정(武丁)을 하(河)에 살게 하고 감반(甘盤)에게서 공부하도록 하였다. 이후 무정이 상나라 고종(高宗)으로 즉위하고 부열(傅說)과 함께 감반을 중용하여 중흥을 이루었으니 감반은 고종의 스승이자 신하이다.]은 상나라 왕 [[https://ko.m.wikipedia.org/wiki/소을#|소을]](小乙)의 신하가 되고, 이어서 부열(傅說)과 함께 상나라 고종(高宗) [[무정(상)|무정]](武丁)의 현신(賢臣)이 되어 무정을 보좌하여 나라의 중흥[* '''무정중흥'''(武丁中興) 또는 '''무정성세'''(武丁盛世)라고 한다.]을 이루었다. 이런즉 북송(北宋)의 <[[대송중수광운|광운]]>(廣韻)[*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의 약칭이다.]에서 이르길, 감(甘)씨 성은 무정의 신하 '''감반(甘盤)의 후손'''이고, 무정 때 상나라가 은(殷)(지금의 허난성 안양시 샤오툰 일대)[* 은(殷)으로 도읍을 옮긴 18대 왕 반경(세조)부터 29대 왕 제신(주왕)까지를 만상(晩商)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상나라를 은나라로 칭하기도 한다.]에 도읍한 연고로 이 계통의 감씨는 안양(安陽)에서 나왔다. 다른 계통의 감씨(甘氏)는 '''희(姬)씨''' 성에서 기원된 바 [[춘추시대]]에 형성되고 [[낙양|뤄양]]에서 비롯되었으니 [[주나라|주]](周) [[혜왕(주)|혜왕]](惠王) 희랑(姬閬)의 아들 '''[[후폐왕(주)|숙대]](叔帶)의 후손'''이다. <[[사기(역사책)|사기]]>(史記) 주나라 본기(周本紀)에 혜후(惠后)[* 숙대는 후비 혜후의 소생이고 양왕은 정비의 소생으로 이복형제간이다 .]가 숙대를 낳고 혜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길, 숙대는 혜왕의 아들이자 [[양왕(주)|양왕]]의 동생으로 감(甘) 땅에 봉해졌기에 <좌전>(左傳)에서는 감소공(甘昭公)이라고 칭한다. <정의>(正義)에서는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하여 이르길, 감성(甘城)은 뤄주 허난현[* 현재의 허난성 뤄양시.] 남서쪽 25리에 있는데 숙대가 감읍(甘邑)에 봉함을 받아 감소공(甘昭公)이라 불렸고 이후 읍 이름을 성씨로 삼았으니 바로 감(甘)씨이다. 한국의 감씨는 회산, 창원, 합포 등이 있으나 모두 [[창원시|창원]]을 뜻하는 말로 같은 뿌리이며 회산 단본이다. 감(甘)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6,024명으로 조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