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감사용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어릴 적 돌멩이 던지는 걸 좋아했는데 멀리 날아갈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진해 공설운동장을 갔는데 처음으로 야구 구경을 하던 중 야구공이 내 앞으로 굴러 와서 던져줬는데 코치가 소질이 있다고 말을 했다.[* 돌하르방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제주도 출신 투수 [[오봉옥]]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쪽은 수학여행왔다가 생긴 일.] 그래서 아버지한테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마산고등학교 야구부|마산고]]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지만 투구력이 영 시원찮아서 전국 시합 때는 두각을 못 나타냈다. 결국 좋은 대학은 못 가고 인천체육전문대학에[* 현재는 사라진 학교이며 [[인천대학교]]와 통합됐다. [[김태형(1967)|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이 이 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단국대학교]]로 편입했다.]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 무리한 운동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때아닌 부상으로 감사용은 야구를 쉴 수밖에 없어서 군 문제를 해결하며 후일을 도모했다. 정확히는 졸업 후 1년 동안 인천체전의 감독 역할을 했고 그 뒤에 현역으로 입대했다. 병역을 마친 뒤에도 그를 불러 주는 실업야구 팀은 어디에도 없어 [[삼미종합특수강]] 창원공장점에 취직하여 구매 관리와 통관 업무를 맡게 된다. 취미삼아 직장 야구를 하던 감사용은 계열사에서 실업 팀이 창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투수로 들어간다. 삼미특수강을 창원 공단 최고의 팀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감사용이 삼미특수강에서 야구 '붐'을 일으킬 무렵. 때마침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삼미가 진해로 동계훈련을 내려왔고, 감사용은 파견 근무 형태로 삼미가 훈련하는 내내 매일 배팅 공을 400개 정도씩 던졌다. 그러다 합숙이 끝나는 시점에 마지막 테스트를 겸한 OB와의 친선 경기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경기가 끝나고 박현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네가 우리 팀에 필요하니 같이 인천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그래서 삼미의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받은 감사용은 곧장 이불이랑 옷만 들고 인천으로 올라갔다. 즉, 모그룹에서 프로야구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할 때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발을 딛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통산 성적 1승 15패 1세이브에서도 나타나듯이, 냉정하게 따져 프로에서 뛸 수준에는 미달했다. 하지만 워낙 약체였던 삼미의 팀 사정에,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었던 좌완'''(그것도 팀 내에서는 유일)이다 보니 출장 기회는 많이 부여받았다. 영화 때문에 패전처리 투수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아니다. 당시 국내 야구계에서는 선발 - 중간 - 마무리의 투수분업 체계가 없던 시절이어서 [[패전처리 투수]]라는 개념도 희박했다. 게다가 [[패전처리 투수]]는 이미 기울어진 경기에 등판하는만큼 '패전'이 아니라 '승패 없음'(no decision)으로 기록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통산 전적인 1승 15패 중 14패가 82년 한 시즌에 나왔다. 즉 '''그냥 패가 많은거지''' [[패전처리 투수]]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삼미의 원년 에이스인 [[인호봉]]보다 더 많은 이닝과 경기[* [[인호봉]] 38경기 133 이닝, 감사용 41경기 133 2/3 이닝]를 뛰었다. 1시즌 80경기였던 때에 41경기 나왔으니 [[살려조|2경기 당 1번 꼴로 등판했는데]] 이 정도면 질 때건 이길 때건 인호봉과 함께 전천후로 등판했다고 봐야 한다. 133이닝동안 삼진이 단 23개뿐이다.[* 이는 역대 단일시즌 규정이닝 달성 투수중 최저 K/9 기록이다.] 그가 프로에서 유일하게 거둔 1승은 1983년 롯데전에서 챙겼는데, 구원으로 등판하여 6.1이닝 1실점으로 5:3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날 감사용의 뒤를 이어 등판한 [[김동철(야구선수)|김동철]]이 남은 이닝을 잘 막아내어 [[세이브(야구)|세이브]]를 따냈다. 이는 김동철의 프로 통산 처음이자 마지막 세이브였다.] 패전투수이긴 하나 끝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롯데전에서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와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를 거두는 등 그 근성만은 높이 사서, 감사용 선수를 주제로 한 영화인 '[[슈퍼스타 감사용]]'이 만들어졌다. [[이범수]]가 감사용 역할을 맡았다. 물론 사실에 근거하긴 했지만, 픽션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1986년 [[김성근]] 감독이 좌완투수 보강을 원하자, [[OB 베어스]]에 이적하여 1시즌 간 활동한 후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