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갑산파 (문단 편집) == 상세 == 갑산파의 명칭은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보천보 전투]]가 일어났던 함경남도 [[갑산군]]의 명칭에서 비롯된 것이다. 갑산파는 광의의 개념으로 보면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던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산파의 리더인 [[박금철]]의 경우 1930년대에 김일성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해 활동했고, [[보천보 전투]]에서도 참여한 걸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후 박금철은 1938년 혜산에서 [[일본]]에 체포된 후 광복까지 옥살이를 했기 때문에 김일성과의 연계가 끊어진 상황이었다. 대체로 이들은 김일성과 동조하는 흐름이었으나, 김일성의 직계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만주파(북한)|만주파]]와는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에 일종의 방계 세력으로 보면 된다. 넓은 의미에서 이들까지도 만주파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좁게 보면 김일성과 함께 만주, 연해주에서 활동한 빨치산 직계들이 만주파라면 조국광복회[* 북한에서 주장하는 만주와 국내에 분포해있던 통일전선체.]의 갑산 지부에서 활동했던 자들이 갑산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듯. 대체로 이들은 함경남도 갑산 출신으로 대다수가 갑산공작위원회라는 단체 출신들이라 갑산파라 칭해졌다. 현재 북한의 통일관에 이들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그들이 독립군의 일부였듯이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실제로는 사적 소유만 철폐되었을 뿐 생산력이 부족하고 노동자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한 이행기 사회이지만.] [[소련군]]이 [[삼팔선]] 이북에 진주하자 그들은 소련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의 수장이자 약소 민족을 보호해주는 좋은 나라'로 인식하였고, 반대로 [[미국]]을 '조선반도를 침략한 새로운 제국주의자'로 보고 미국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독립군이었던 이들이 무장 투쟁을 시도한 건 당연한 결과였고, 결국 [[반미]] 사상과 [[소련]]에 대한 찬양, 그리고 무장투쟁 방법론이 합쳐져 [[6.25 전쟁]]과 [[적화통일]] 시도를 낳는 단초가 되었다.[* 이상우, '북한 40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성과 변천', 을유문화사, 1990, pp526-52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