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갑신정변 (문단 편집) == 개요 == || [youtube(4Imk3RDJvEA)] ||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갑신]]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우체국|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난을 일으켰다. 고종을 속이고 새 내각을 구성해 정강 14조 등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군이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고 민중들이 [[주한일본공사관|일본공사관]]을 공격하자 퇴각하는 일본군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하여 [[삼일천하]]로 끝났다. 이 정변에서 급진 개화파는 여러 온건 개화파들을 살해한다. 윤태준[* 기기창 총판을 지냈으며 영선사로서 청과 일본을 오갔다. 친군후영사.], 한규직[* 무관으로 이전의 어영대장, 이후에는 모든 신식 군인의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친군전영의 전영사를 지냈다. 군제 개편 과정에서 박영효가 이끌던 부대가 이 친군전영에 합병된 것 역시 급진 개화파의 한 가지 불만이었다. 만일 이 당시 합병되지 않았다면, 박영효의 이 병력이 정변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관학교 생도들이 이 정변에 동원되어서 칼질을 했다.) 한규직은 정변 당시 변장해서 몸을 피했다가도 고종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궁으로 가는 도중에 발각되어 참살되었다.], 이조연[* 역시 김윤식과 함께 영선사로 청에 방문했던 인물로 친군좌영사. 역시 기기국과 해상공국에 참여하였다.] 등 영선사 출신이나 민씨 척족 중에서 개화에 적극적이었던 민영목[* 흥선 대원군 집권기부터 개화의 필요를 강조했던 인물로 조미 통상 수호 조약을 포함한 외교 관계에 참여하였으며, 한성순보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오경석, 박규수 등의 인물도 함께 했다. 사망시에는 해상 방어 사령관인 해방 총관이었다.], 민태호[* 동도서기파 유학자 유신환의 제자이며 [[민영익]]의 친부.], 그리고 조영하[* 곤궁했던 시기의 흥선 대원군과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대원군 집권 시기에는 조 대비와 대원군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고종 친정 시기에는 고종의 친위 세력이 되어서 대원군의 실각에 조력했고, 이후 조영, 조미, 조독 통상 수호 조약 등 외교적으로 활약했다. 신정 왕후 조씨의 조카이며 조성하와는 6촌 관계인 인물.] 등 여러 온건 개화파들이 살해당했다. [[고종(조선)|고종]]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으로,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 모두 상당 수의 인재들이 사라져 향후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는 등 큰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