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갑신정변 (문단 편집) === 갑신정변 === || [youtube(5ZnWTZWQ5YI)] || 1884년 12월 4일(양력) 저녁 6시, 급진 개화파는 우정국 연회가 열릴 즈음 사전에 준비한 폭탄으로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 궐의 고씨 성을 가진 궁녀를 포섭해 폭약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 궁녀는 7척 장신에 웬만한 남자 뺨치게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서 [[수호전]]의 등장 인물인 [[고대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붙잡혀 조리돌림당한 끝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하지만 폭탄이 불발되자, 이웃집에 불을 질러 혼란을 일으켰다. 저녁 9시경 별궁 옆 초가에 불길이 치솟자 연회장은 소란스러워졌고, 연회 도중 김옥균의 빈번한 출입을 수상하게 여긴 민영익이 제일 먼저 나갔는데, 칼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다시 안으로 들어오자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참석했던 사람들은 놀라 흩어져 달아났으며, 이에 원래 계획했던 4영사(營使)[* 전영사, 후영사, 좌영사, 우영사] 암살은 실패한다. 사전에 포섭한 자객들로[* 그중에는 일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4영사 암살을 시도했지만 정작 민영익[* 보빙사 정사로 미국에 방문하여 프린스 민이라 불리고 대접받았다. 고종의 조카이자 [[명성황후|명성왕후]]의 조카이기도 하다. 임오군란 이후 민씨 척족들이 원세개에 빌붙어 친청파로 기울었기에 결국 친족들의 대세를 따라 급진 개화파와 대적한다. 그리고 이때 민영익의 친부 민태호는 목숨을 건진 아들과 달리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만 중상 입히는 수준으로 끝났다. 미국에 [[보빙사]]로 함께 갔던 홍영식은 사사로운 정을 저버릴 수 없어 부상당한 민영익을 묄렌도르프와 함께 묄렌도르프의 집으로 옮긴다. 그리고 묄렌도르프는 민영익을 한 미국인 의료 선교사의 집에 데리고 가는데... 그 의사가 바로 드라마 [[제중원(드라마)|제중원]]에 나오는 [[호러스 뉴턴 알렌]]이다. 당시 민영익은 과다 출혈로 사경을 헤매고 있던 터라 알렌이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계획이 차질을 빚자 김옥균은 박영효·서광범과 함께 일본 공사관으로 가서 일본 공사의 태도를 확인한 후, 고종이 있는 창덕궁으로 달려가 고종에게 온건 개화파와 청군이 난을 일으켰다고 거짓 보고하고 왕을 경우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146-2. [[정조(조선)|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이다. 지금은 없어졌고 터만 남아있다.]으로 옮긴 후 [[일본군]] 200명[* 이때 고종이 '日使來衛'라는 쪽지를 써서 일본 공사를 불렀다고 하는데, 이 어필이 위조일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로 조선 정부는 사건 당시 고종은 일본 공사를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고 발표했다.]과 前 광주유수 박영효가 이끄는 군대와 그들 휘하의 별기군 50명으로 하여금 궁을 호위케 한 다음, 본래 [[우정국]] 연회 장소에서 처리하려다 실패한 온건 개화파 요인인 한규직·이조연·윤태준이 입궐하자 차례대로 죽이고[* 이들을 죽인 이유는 [[임오군란]] 이후 조선의 중앙군은 4영(좌/우/전/후영)으로 개편되었는데, 피습된 민영익은 우영사였고, 한규직은 전영사, 이조연은 좌영사, 윤태준은 후영사였다. 즉, 이들이 당시 중앙군 지휘관이었으며, 이들을 관리 감독할 위치였던 병조판서 민영묵도 난군의 총에 맞아서 사망했다.] 이어서 입궐하던 왕실 척족 세력인 민영목·민태호·조영하를 죽였다.[* 이때 김옥균 등이 황급히 창덕궁으로 와서 국왕과 왕후를 경우궁으로 옮기는 가운데, 뭔가 눈치챈 왕후가 "이것이 청군의 소행인가, 아님 일본의 소행인가?"라고 날카롭게 묻자 김옥균은 "청군..."이라고 얼버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