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갑옷 (문단 편집) == 중요성 == >너희들이 지난 날 무예를 배우지 않고, 기계를 익히지 않고, 묵직한 갑옷을 입지 않았을 때는 아마도 적을 보면 바로 도망갈 생각이나 했을 것이다. 몸에 걸친 투구와 갑옷이 단단하고 좋다면 상대에게 내가 한 번 베이더라도 무기가 내 몸으로 들어와 상처를 입힐 수 없다. 무예가 서투르더라도 상대가 공격한 다음 차례에는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라! >---- >[[척계광]], 『기효신서』 비교편 >적과 직접 맞부딪힐 때까지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전열의 중장보병들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특히 그들이 흉갑과 정강이받이를 입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화살, 다트, 투창, 투척도끼에 맞고 쓰러질 수 있다. >---- >[[레온 6세]], 『전술론』 한마디로 갑옷을 입었는가 안 입었는가, 입었어도 어떤 갑옷을 입었는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으며, 군대 전체로 확장되면 전투를 이기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인체]]는 생각보다 매우 연약하며 쇠붙이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뱃가죽과 복막은 정말로 얇아서 [[도검|칼]]날, [[창(무기)|창]]날, [[화살]]촉에 스치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장기자랑을 하게 되고, 팔뚝이나 [[허벅지]]에 맞은 화살 한 발에 [[동맥]]이 찢어져 과다출혈로 요단강을 건너는 게 현실이다. 그 얇쌉한 깡통조차 알루미늄이 아니라 철로 되어 있으면 사람 손힘으로 찌그러트리기 힘들다. 또한 소독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근대 이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각종 외상을 입게 될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주는 갑옷과 같은 방어구가 필수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 [[300]]이나, [[몬스터 신사론|대부분의 판타지게임/소설 등에서 묘사되는 헐벗은 갑옷]]은 한 많은 인생을 일찍, 그리고 확실하게 저승으로 보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켈트의 전사들이 나체로 싸우거나 했던 사례는 있다. 하지만 이건 그들과 주로 대적한 이들 중 기록을 많이 남긴 로마 입장에서는 자신들보다 어깨 하나는 크고 힘센 전사들이 미쳐 날뛰기에 그 공포가 근거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익숙해져 군사적 개입이 가능해졌을 시기인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당시에는 완편된 1개 군단이 2~3배의 갈리아군을 거뜬히 상대했다는 점으로 갑옷을 비롯한 무장 수준이 전투력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다.] 고대, 중세, 거의 근대까지 이어졌던 전쟁의 기병 충격 돌격 전술, 전열 창 방어진, 깨알같이 날라오는 화살, 그리고 이어지는 난전에서 헐벗고 싸운다는 것은 제 아무리 무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거의 확실히 죽는 방법이다. 전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뒤엉켜져 난전을 벌이므로 공간이 매우 좁아 날아오는 화살, 창날, 돌멩이를 보고도 못 피하고 죽는 경우가 매우매우 허다했다. 방어구를 충분하게 두른 중장병은 수적 열세도 뒤엎을 수 있는 강력한 군대였다. [[페르시아 전쟁]] 때 그리스 군이 페르시아 군에 대해, [[콩키스타도르]] 때 스페인 군이 [[마야]], [[잉카]] 군에 대한 압도적인 숫적 열세를 견딜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충실한 방어구였다. [[도검|칼]], [[창(무기)|창]], [[화살]], [[투창]], [[투석구|돌멩이]] 등 온갖 흉악한 물건들을 몸으로 받아가며 정면에서 눌러 오는 적군의 무시무시한 압력을 버텨야 하고 그러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 빽빽한 전열을 유지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 근대 이전의 전쟁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전열 유지를 위해 화살은 물론이고 투창, 돌멩이 등의 공격이 날아오는걸 보고도 못 피했다. 그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최고급 두정갑이든 싸구려 종이갑옷이든 입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입어야만 했던 것이다. 사슬과 철판 갑옷에 추가로 대형 방패를 중무장한 [[로마 제국]]군과 사실상 벗은 몸에 방패 하나 달랑 들고 싸운 [[켈트]] 전사들의[* 물론 이는 갑옷을 충분히 갖추기 힘든 켈트족 특성상 어쩔 수 없던 측면이 크고, 여유가 되는 귀족 전사들은 갑옷 다 갖춰 입었다. 당장 체인메일 자체가 켈트족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통념과 달리 켈트족은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번 승리한 적도 있었다. 더 많이 털려서 그렇지.] 전쟁을 분석해 보면 승패는 둘째치고서라도 사상자의 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으로 만들었기에 얼핏 만만해 보이는 [[천 갑옷]]도 화살을 의외로 잘 막아주며, 어설픈 베기 공격 정도에는 끄떡없다. 보다 넓은 폭의 [[롱소드]]나 [[카타나]]같이 절삭력에 특화된 디자인의 칼로 날을 잘 맞춰서 베면 얄짤없기는 한데 문제는 움직이는 사람을 상대로 이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가죽갑옷이라 할지라도 선에 집중되는 베는 형태의 공격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방어 해주며, [[두정갑]]만 되어도 기사의 랜스 돌격에서 착용자를 생존할 수 있게 해줬다. 판금갑옷쯤 되면 관절 같이 섬세한 부위에 충격을 주거나 틈새를 노려서 찌르지 않는한 웬만한 냉병기들에 대해 가히 무적의 방어력을 자랑한다. [[일본]]의 [[유도]] [[유술]]이나 [[서양]]의 [[레슬링]] [[캄프링겐]]도 [[전쟁]]터에서 중무장 갑주를 입은 상대로 발전하던것이었다. 어차피 멀리서 제대로 타격 주기는 어려우니까 확실히 붙잡아두고([[그래플링]]), 빈 틈 등을 [[단검]]이나 근접 [[병기]]로 정확히 치는게([[파운딩]])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무기의 발달은 갑옷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갑옷이 발달하여 [[플레이트 아머]]가 등장하자 방패를 들 필요가 없으니 본격적인 양손검이 쓰이고, 이 갑옷을 도저히 뚫을 수가 없자 [[에스터크]] 같은 칼의 모양을 한 송곳이라는 기이한 무기가 생겨났다. 부유한 귀족 기사나 왕족의 고급 판금갑옷 같은 경우는 장궁이나 쇠뇌는 물론 초기형 총기의 탄환조차 너끈히 막아냈다. 장궁or쇠뇌의 관통력이 판금갑주를 쓸모없게 만들었다는 말은 낭설로 무연화약이 발달해 머스킷 수십, 수백발을 일제사격으로 때려박을 수 있는 시대까지 가야 판금갑옷의 활약이 끝난다. 사실 현대에도 방탄복과 방탄모로 무장한단 것을 생각해보면 갑옷과 무기가 서로 발맞추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갑옷은 어느 시대건 개개인이 다룰만한 대인병기에 대해선 비무장과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방호를 제공해주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갑옷으로 무장한 측의 기술수준이 상대방보다 앞서는 경우에는 공격수단이 의미를 잃는 지경에 이른다. 수준낮은 무기로 무장했던 남미 원주민들은 서양의 가장 단단한 갑옷은 물론이고 더워서 대충 차려입었던 경장갑조차 뚫지 못했다. 얼마나 서양인들이 남미 원주민들을 얕봤는지 콩키스타도르들은 그냥 더워서 갑옷을 입지 않았던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갑옷을 입고도 화살에 숭숭 뚫리거나 검에 쑹덩쑹덩 베이지만, 드물게 일부 작품에서는 갑옷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황산벌]]의 경우 전투 초기에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 나름 잘 버티던 백제군이 김유신의 계략으로 갑옷을 벗고 싸우게 되자 신라군의 공격에 무너진다. 사실 이것은 [[삼국유사]]에 나온 일화를 바탕으로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과 나름 비슷한 플롯이 있는 것.[* 영화에서 계백은 백제 병사들의 결의를 고취시키기 위해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갑옷을 벗지말라고 하고 그 결의를 유지하기 위해 갑옷을 옷에 꿰메버렸다. 문제는 김유신과 인간장기를 둘 때 이 사실을 계백이 김유신에게 말해버렸고, 김유신은 백제군이 갑옷을 하나로 꿰맸다는 사실을 알고는, 신라군 선봉대가 백제군과 뒤섞여서 싸울 때 투석기로 진흙덩어리들을 날려버린다. 갑옷이 진흙덤벅이 된 탓에 백제군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갑옷을 옷에 꿰매서 한쪽을 벗으면 갑옷 전체는 물론이고 겉옷까지 다 벗어야 했다. 이 때문에 갑옷 없이 다음 싸움을 벌여야 했던 백제군은 사소한 칼질에도 살갖이 터져서 부상과 고통에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사실 갑옷의 주목적이 이것으로, 온몸에 힘을 실어 창으로 뚫는다면 모를까, 베기로는 웬만한 갑옷도 못 뚫고, 이것만으로도 병사들은 상당히 안전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해준다.) 백제군 장군들은 깡으로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하지만, (진흙의 무게 때문에) 몸이 굼떠지는 바람에 하나둘씩 죽어가게 된다.] 갑옷이 비록 인체의 유연하고 신속한 가동을 다소 제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판금 갑옷([[플레이트 아머]])의 경우에는 장비를 하고도 두꺼운 옷을 입었을 때의 불편함에 불과하다. 어깨에 무게가 집중되는 기존 갑옷과 다르게 각각의 부위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중이 전신으로 골고루 분산되기 때문이며 갑옷 스스로가 어느 정도를 지탱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에서 조금만 검색해 보면 [[리인액터]]들이 풀 플레이트 아머 갑옷을 입고 혼자서 말 위에 뛰어 오르내리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덤블링]]이나 [[수영]]까지 너끈히 해내는 영상을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https://youtu.be/Fa2irrYK09w|'중갑의 가동범위를 잘 보여주는 영상]]' [[잔 다르크]]는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에 임하면서도 살인을 할 수 없다고 검이나 창 대신 깃발만을 휘둘렀다. 하지만 소녀인 자신의 몸에 굉장히 무겁고 불편하더라도 갑옷만큼은 방어를 위해서 꼭 입었다. 그러나 갑옷을 입고도 화살과 돌에 맞는 등 몇 번이나 부상당했는데 만약 갑옷을 입지 않았다면 진작 전장에서 적군한테 치명상을 입고 죽어서 영국군을 물리치는 기적같은 업적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적의 화살이나 칼날, 창날이 들어오는 것을 뻔히 보고도 피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방어력을 포기하더라도 은밀성이나 기동성을 올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갑옷을 벗고 싸운 사례는 많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투구와 흉갑 정도는 걸치고 다녔다. 아예 갑옷을 입지 않은 경우에는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한 복장을 하거나 조용히 행동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갑옷을 입지 않고 싸우는 병과는 전선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정규군이 아니라 암살이나 첩보, 기습 등 비정규 임무나 후방 타격을 주로 하는 병과였다.] 사극에서 갑옷을 무관의 상징인양 묘사하는 바람에 문관들은 전장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나올때가 많지만[* 반대로 무관이 전시상황이 아닌 평시에도 늘상 갑옷을 입는 비상식적인 모습도 나올정도로 매체에서 잘못된 관념이 심하다.] 갑옷은 문무관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의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장에서 자기 신체를 방어하기 위해 입는 방어구이다. 때문에 화살이 문무관 가려가면서 명중하는 것도 아니니 문관도 전장에 나올 때는 항상 갑옷을 입고 다녔다. 갑옷이 효용성을 잃은 건 총기가 보급되면서부터다. 임진왜란 때 [[조총]]의 유효 사거리 내의 운동 에너지가 1200~2000J인데 이는 현대의 [[5.56×45mm]] 탄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갑옷의 의미가 없어지면서 적진을 세차게 온몸으로 들이 받아야 하는 [[기병]]도 흉갑 하나만 걸친 [[퀴레시어]]처럼 한 두 개만 입다가 결국 모든 갑옷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과거의 전쟁과 비교해 중요도가 줄어들었다는 뜻이지, 몸에 걸치는 방어구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더 이상 갑옷이라는 명칭은 쓰지 않지만, 결국 현대전에서도 갑옷은 [[방탄복]], [[투구]]는 [[방탄모]]로 역할을 계승하여 갑옷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공격무기 못지 않게 방어구 또한 굉장히 중요한 장비며 설령 적의 공격을 100% 막아내지 못하더라도[* 공격을 완벽하게 막지는 못해도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으며, 눈 먼 화살, 도탄이나 어설프게 휘두른 칼질 같은 자잘하지만 맨살에 그냥 맞으면 큰 상처를 입을 충격도 갑옷을 입으면 튕겨낼 수 있다.] 방어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그런 방어구는 존재할 수 없거나 있더라도 [[저거너트|효율이 매우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능동적인 방어행위 없이 오로지 갑옷의 방호력에만 의존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 방호력이 사기급으로 높은 갑옷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창과 칼, 화살과 탄환의 직격을 무시할만한 [[플레이트 아머|장비]]는 있다.]이 진리인 셈이다. 돈과 시간이 허락되는 한, 어떻게든 '''숙련된 전투원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와 군대의 입장에서는 제일 이득이다. 그렇기 때문에 갑옷은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전장에서 무기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