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간 (문단 편집) == 역사 == 강간이라는 행위 자체는 생명체가 [[유성생식]]을 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과 [[성폭행]]은 빈곤층, 하층민, 노예, 난민, 소수민족 같은 [[사회적 약자]]나 형무소나 수용 시설의 [[수감자]], 또는 전시 피정복 국가의 사람들을 상대로 자주 자행됐다. [[내란]]이나 전시 상황에서는 대규모 [[집단 성폭행|집단 '''강간''']]도 자주 발생한다.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시에 치안이 일시적으로 악화될 경우 재해민이나 피난민 중에서 약자들, 주로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한다. 물론 강간은 고대부터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강간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형사 처벌도 가능했다. 그러나 중세까지 강간죄는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 여성의 남편 또는 아버지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강간죄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처녀에 대한 강간은 비처녀에 대한 강간보다 더욱 중대한 범죄 행위였고, [[매춘부]]에 대한 강간은 죄가 되지 않거나 [[화대]] 상당의 '금전에 대한 [[절도죄|절도]]'로 취급되기도 했다. 물론 여성 자체에게 피해를 준 죄로 처벌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강간 과정에서 수반되는 구타나 중상해에 대한 처벌이 대부분이었다. 즉, 전통적 관점에서 강간은 현대의 강간죄보다도 [[간통]]에 가까운 죄목이었다. > 만일 누군가 가솔 노예처럼 옷을 입은 젊은 여자에게 같이 자자고 제안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지체 높은 부인처럼 입지 않고 매춘부처럼 옷을 입은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 > 출처: [[로마법]] 학설집 47.10.15.15. > 사람들 말에 따르면 당신과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아티나의 한 소도시에서 무언극 여배우를 강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배우를 강간하는 것은 사나이들의 오래된 권리입니다. 대도시를 벗어난 시골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 > 플란키우스 변호 30[* [[키케로]]의 친구 중 한 명인 플란키우스는 젊었을 때 무언극 여배우를 집단 강간했다가 법정에 서게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플란키우스의 [[변호사]]는 위와 같은 말로 플란키우스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렇기에 평범한 양민 여성 혹은 [[유부녀]]에 대한 강간은 죄로 보아 처벌했던 반면 [[소녀]]나 [[노예]] 대한 강간은 처벌하지 않았던 사례가 여러 문화권의 기록에 있고[* 노예나 미성년은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문화의 영향도 있다.], 여성에 대한 강간 그 자체를 처벌하더라도 [[여배우]], [[매춘부]], [[거지]]에 대해서는 예외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근대 이전에 전시에 일어나는 강간의 경우 거의 100%의 확률로 일어나고 처벌 받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지휘부 선에서 권장되기도 하는 등 강간이 그 자체로서 범죄로 치부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강간죄는 여권의 증진과 더불어 피해 여성의 인권에 대한 침해로 보호 법익의 분류가 바뀌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의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에서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만 해도 강간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대 이래 다른 민족에게 정복된 민족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몽골 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 칸]]과 그의 후예들일 것이다. 항복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다가 끝내 정복 당한 도시는 파괴와 약탈과 살육의 대상이 되었으며, 대체로 청소년이나 성인 남성은 살해되고 여성은 전리품의 일종으로서 제후나 장병들에게 계급이나 전공에 따라 분배되었다. 군에서 종사하는 매춘부 또한 당시에 흔한 편이었는데, 크세노폰의 [[그리스]]인 용병 부대의 성욕 처리의 대상에는 다수의 소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강간범 개인의 취향 또는 사정에 따라 남성도 강간의 대상이 되었다. 8세기 이후 [[유럽]]은 나라가 여러 소국으로 분열하여 잦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군에 의한 강간도 그만큼 늘긴 했다.[* 애초에 강간, 약탈, 학살은 전쟁과 비례해서 나타난다. 괜히 인류의 소원이 평화인 게 아니다.] 14세기 이후 [[유럽]]의 각 국은 용병을 고용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들 중에 강간을 저지르는 사례가 나오자 국가에서는 시급히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였다. [[백년전쟁]](1337-1453) 무렵에 강간범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는 기본적인 방침이 형성되었다.[* 참고로 [[잔 다르크]]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힌 뒤에 강간 당했다는 떡밥이 돌긴 했다. [[잔 다르크]]에 대한 재판시 죄목 중 '바지를 입는 것이 남장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항목이 있었는데, 본인은 강간 당하지 않으려고 바지를 입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강간을 피하기 위해 남장을 하는 일은 매우 흔했다. 더군다나 이 경우는 유명인이었기에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여 강간을 못 하게 막았을 가능성이 높고, 또 남장 자체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실제 [[잔 다르크]]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낸 죄는 이단 혐의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강간을 못하게 한 것은 여성의 권리를 지키고자 함이 아니라 점령지에서 마구 강간하고 다니면 민심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든 (전쟁을 제외하고) 어떤 형태든 [[살인]]이 대개 그 자체로 처벌받고 역사적으로 그 대가가 동일한 목숨이었던 걸 생각하면 강간이 비슷한 중범죄의 지위에 올라온 것은 현대 이후, 그것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오히려 살인의 경우 대륙법 정립 이후 정당성과 고의성 여부가 폭 넓게 인정되면서 형량이 낮아진 편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강간이라는 죄의 성립과 경중은 문화상대론이 지배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만약 현대 법 체계가 무너지고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원시 시대로 인류가 회귀한다면 (대부분의 동물처럼) 강간이 만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