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귀태 (문단 편집) === [[현대 유니콘스]] 시절 === [[파일:attachment/강귀태/Example.jpg]]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와 [[동국대학교 야구부|동국대]] 시절 프로급의 장타력을 뽐내며 차세대 공격형 포수로 주목받았다. 이런 기대 속에 2억 1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2000년 이후의 현대 구단은 [[현대전자|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는데도 2억이 넘는 계약금을 안겨준 것을 보면, 나름 상당한 기대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그 다음해에 대졸 최대어로 불리며 입단한 '''[[이택근]]의 계약금이 2억 3천만 원이다'''.]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다. 입단 첫 해인 2002년에는 [[박경완]]의 백업 포수로 74경기에 출전, 타율 0.272의 준수한 타격감을 보이며 프로에 안착하며 차세대 주전 포수로 기대할 만한 모습을 보였다. 다음해인 2003년, 박경완이 FA 자격을 얻어 SK로 이적하자, 현대 구단과 코칭스태프는 강귀태를 주전 포수로 점찍었고, 시범경기에 이어 개막전 주전포수로 출전하면서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개막 2경기만에 부상으로 낙마하였고 그 자리는 강귀태의 백업용으로 영입되었던 [[김동수(야구)|김동수]]가 차지한다. 그 후 김동수가 완전히 부활하면서,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김동수의 백업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실 김동수는 지난 몇 년간 상당히 부진했던 데다 SK에서 방출된 후 은퇴 위기까지 몰린 상태였는데 가까스로 현대의 영입 제안을 받아 현역 연장에 성공한 상태였다. 현대도 김동수를 영입했을 때 주전으로 기대하지 않고 백업 포수나 대타 자원, 미래의 지도자감으로 보고 김동수를 영입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강귀태는 부진하며 김동수에게 기회가 갔고, 이해 커리어 첫 3할 타율과 4년만에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사실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한번 주전으로 낙점한 선수에게 무한애정을 보여주는 당시 [[김재박]] 현대 감독의 스타일 탓에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한 면이 있다. 또 중이염, 팔꿈치 인대 수술, 척추 질환 등으로 4급 판정을 3번 받아서 면제가 되었을 정도로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실력이 정체되어 버렸다. 그나마 2003년, 200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승선하며 우승반지 2개를 챙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