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유 (문단 편집) == 개요 == [[후한]] 말과 [[위(삼국시대)|조위]], [[촉한]]의 장수로 [[자(이름)|자]]는 백약(伯約). 시호는 [[서위]]의 [[우문태]]가 [[추봉]]한 개명왕(開明王)이다. 양주 천수군[* 천수군은 해당 지역의 옛 이름이고, 74년에 '한양군'으로 개명되었다가, 후한말과 위진시대에는 천수군과 한양군이 혼용되었다. 삼국지연의에는 천수군으로만 호칭됨.] 기현 사람으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후계자]]처럼 그려지며, [[제갈량]] 사후 [[삼국지연의]]의 마지막 [[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제갈량의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볼 수 있었던 인물은 [[장완]]과 [[비의]]였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도 제갈량이 강유를 두고 칭찬하는 등 각별한 인연은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현대 한국의 삼국지연의에 큰 영향을 준 모종강본 삼국지연의에선 [[제갈량]]이 104회에서 죽고 그 후부터인 105회부터 그가 죽는 119회까지는 강유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중이 있다. 모종강본이 120회이니 1/8 정도는 그에게 주인공으로서 분량이 가는 것이다. 유비는 1회부터 85회까지 제갈량의 경우 36회부터 104회까지 강유는 92회부터 119회까지 출연하니 다른 둘에 비하면 확실히 비중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 판본에서는 제갈량의 사후를 대놓고 축약하거나 그냥 오장원에서 끊어버리는 삼국지 판본들도 꽤나 많은데 [[황석영 삼국지]]와 [[나관중]]본 삼국지연의에선 제갈량 사후 한 권 반을 차지하는 독보적인 주인공으로 나온다. [[제갈량]]으로부터 '''"[[마량]] 이상의 재능의 소유자, 양주 최고의 인물이자 [[기린(상상의 동물)|기린아]]"'''라고 불리는 절찬을 받았다. 위나라 출신의 항장으로, 개국공신 가문도 아니고 촉한에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촉의 대장군[* 첫 등장 당시 임팩트로 인해 조운과 함께 '청년 장군' 이미지가 강한 강유지만 그가 촉한에서 봉직한 세월만 근 40여 년이고 그 자신의 재능만으로 고위직에 올랐으며 최후까지 노장의 몸으로 촉한을 위해 충성하면서 고군분투하다가 편하게 눈을 감지도 못했다. 충분히 노장, 노익장 소리 들을 만한 인물이나 요화, [[장익(삼국지)|장익]] 같은 숙장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강유의 최측근이자 부장인 유은과 왕사도 강유보다 나이가 많을 정도로 당시 촉한에 강유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노익장들이 군부에 넘쳐나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었다.]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기도 하다. 제갈량이 세상을 떠나고 뒷일을 도맡은 [[촉한]]의 마지막 사령관이자, '''[[삼국지연의|중국 한나라 시대 거대 낭만서사]]'''에서 사실상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유비]]-[[제갈량]]에 이은 '''세번째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갈량이 출사한 나이인 27세에 촉한에 와서 유비가 승하한 나이인 63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우연치곤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30년 동안 나홀로 위나라를 상대로 북벌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제갈량의 육출기산(六出祁山)과 대비하여 구벌중원(九伐中原)이라 하기도 한다.[* 연의에서 묘사되는 구벌중원은 다음과 같다. 1차: 249년 우두산(국산), 2차: 254년 철롱산(적도), 3차: 255년 조수, 4차: 256년 단곡, 5차: 258년 장성, 6차: 258년 기산, 7차: 260년 야곡, 8차: 262년 조양, 9차: 263년 답중. 이 중 6차, 7차 북벌은 완전히 창작이고, 9차 북벌은 실제로는 그냥 가서 주둔하고 둔전한 게 다다. 정확히는, 성도의 정치 싸움을 피할 겸 새 북벌을 하느라 가서 군량과 무장을 마련하는 중이었지만.] 강유의 마지막 분전을 좋아하는 삼국지 팬들도 많은 편. 다만 이것은 촉 위주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삼국연의의 특성 때문인 탓도 있는데 강유 사후에 서진이 삼국통일을 이루기까지는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렸고 오나라도 그 긴 세월을 서진에게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말명초 당대사람들에게 오나라의 서사는 이미 상당히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때문에 나관중이 아예 생략해버린 [[독발수기능]]의 반란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극적인 요소가 당대 삼국지 이야기에 형성되기 어려웠다. 기껏해야 양호와 육항의 심리전 정도랄까. 사실 삼국통일이 촉 멸망 이후에 10년 이상 늦어진 것도 독발수기능 토벌과 사마염의 의지부족 때문인데 나관중이 이걸 생략해버려서 사마염이 괜히 뜸들이다가 한참 나중에야 오나라를 정벌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