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독교 (문단 편집) === [[예수천국 불신지옥]] === [[파일:external/cdnweb01.wikitree.co.kr/img_20131018174916_ae340469.jpg|width=90%]] 개독교+[[개병대]]. 사진의 인물은 무려 '''[[경합범|동시에 3가지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총포화약법]][* 실총이면 10조 위반, 모형이라면 모의총포임을 나타내는 표식([[칼라파트]])이 없기 때문에 11조 위반이다. 전체적인 실루엣과 명확히 보이는 두 개의 총열, 그리고 과거 수렵용 산탄총은 개인 소지가 가능했다는 점 등을 볼 때 '''실총 더블배럴 샷건일 가능성이 있다.''' ], 군복 및 군용장구 단속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상황. [[파일:예수 천국 불신 지옥.png|width=90%]]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관중석에서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빙상장뿐만 아니라 많은 종목의 경기장마다 출현하여 모두를 망신시켰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하 예천불지)은 [[천주교]]의 교리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개신교에서 발전시킨 교리이지만, 이 교리를 한국 역사에서 처음 설파하고 정착시킨 목회자는 [[일제강점기]] [[평안도|서북]]계 [[기독교 근본주의]] 목사였던 최봉석(최권능) 목사(崔鳳奭, 1869-1944)였다. [[https://pck-pcmma.com/132/?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jt9&bmode=view&idx=1702664&t=board|#]] 당시 신사참배 강요 시국에서 예천불지는 강력한 반대 근거였고, 비록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일제 치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의외로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또한, 여느 친일 목사들과 달리 최봉석은 상당히 모범적인 생활을 한 선비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었다.[* 굳이 최봉석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개신교 판도는 [[평안도|서북]]계 근본주의 신학이 대세였고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213~220p 류대영), 또 조선 내 모든 개신교가 강제적으로 금연, 금주, 권학을 강조할 정도로 권면사상이 강했다.] 하지만 [[광복|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6.25 전쟁]]으로 인해 [[평안도|서북]]의 근본주의 기독교인이 대거 남하하게 된다. 빈손으로 내려와 가진게 믿음밖에 없는 그들은 현실 극복 방안으로 신앙에 더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들의 영향으로 "이 세상에서 위로받을 것이라곤 아버지 [[하나님]]밖에 없고,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순교자]] 논리가 교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개신교가 대분열을 겪어도 근본주의가 강화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독재정권부터 급성장한 경제 발전에 비해 시민의식과 신학이 성숙되지 못한 상황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에선 [[근본주의/기독교/개신교|독재정권과 밀월관계를 맺고 신자들을 선동하면서]], 기독교 자유주의에선 독재와 싸우면서 세를 불려갔다. 여기서 각 교회는 교리교육을 등외시하여 목회자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고 합리성과 비평은 연약한 믿음과 불신앙의 발로로 취급하는 오를 범하게 된다.[* 다만 당시엔 그렇게 할수 밖에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군사정권시기라 정보가 통제되고 학문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이는 신학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엔 성서비평학을 따르는 자유주의 교회조차도 신자들의 성서비평을 엄격히 금지했었다. '''당시에 신자들이 잘못 성서비평을 하다 [[이단]]으로 [[흑화]]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였고, 교리교육으로 인한 영성 함양보단 이단 타파와 방지를 중요시한 시기였다.''' 당장 [[통일교]], [[신천지]]와 같은 독재정권 시기에 만든 개신교계 이단들이 이런 꼴인데, 체계적인 교리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 잘못된 성서비평을 하다 만든 사이비 종교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교리는 커녕 라틴어 번역조차 엉터리로 배우고 단순한 라틴어 문법조차 알지 못해 '아! 하나님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구나!' 라고 생각해 '어머니 하나님'을 주장하는 사이비 분파가 대표적인 예시.]]] 그 결과 목사들의 입맛대로 단순한 예정설과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에 경도되어 전도에 과도히 집중하게 되었다. 즉, 모든 개신교가 성향과 상관없이 예천불지에 빠져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시엔 그렇게 하는 게 편했고 호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단은 아니지만 얄팍한 수단이었다는 것. 이들의 예천불지 전도는 주로 역, 행사장, 시위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간간히 뉴스거리가 되어왔다.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95|#]] [[http://game.dailyesports.com/view.php?ud=2014110923434029922|#]]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42|#]]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157|#]] 심지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특집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https://allvod.sbs.co.kr/allvod/vodEndPage.do?mdaId=22000003210|#]] 이들 노상전도꾼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교회에서도 차별을 받던 신자로, 잘못된 교리교육을 받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개신교의 미덕을 배제한 체 오로지 '전도'가 유일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노상전도를 업으로 해도 교회에서 지원을 잘 안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의 인생보다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고 그 결과로 비난을 듣더라도,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없이, 심지어는 하나님이 내린 사명을 수행한다는 자부심까지 느끼면서 예천불지를 외치며 다니는 것이다. [[http://www.kukinews.com/newsView/kuk200911250001|#]] 사실 예천불지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종파는 없지만, 그래도 각 종파의 구원론과 차이점이 있다. [[보편교회]]에서는 예수천국은 맞지만 불신지옥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어느 종파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확실한 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도 [[베드로]]부터 전해지는 형성기부터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기 때문에 단순히 예천불지를 말하려면 [[Extra Ecclesiam nulla salus|논리적으로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즉, 기독교 이전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는가? 기독교를 모르는 문명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는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들은 구원받지 못하는가? 와 같은 문제다. 여기서 [[성경]]과 전승을 논리적으로 도출해 천주교의 [[연옥]], [[고성소]], [[낙원]]. 정교회의 [[델로니아]]와 같은 중간 단계를 고안하면서 이 문제를 극복했었고, 천주교에서는 플라비우스 유스티누스라는 신학자가 선재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론으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교리를 반박하였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226100011|#]][* 이 선재적 그리스도 이론은 [[예수회]] 신학자 카를 라너에 의해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으로 발전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주의의 형성에 방향성을 주었다.][* 물론 카를 라너 또한 '그럼 기독교를 모르는 이교도나 보편교회에 떨어져나온 개신교라도 착하게만 살면(우연하게 기독교가 추구하는 공동선대로 살면) 구원받는가?'라고 비판을 받았다. 이론상으론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적으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선 기독교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모든 [[유럽]]이 기독교화된 환경에서 태어난 개신교는 말 그대로 개혁교회였고, 개혁교회는 제2경전을 제외한 [[성경]]을 중시했기에 [[보편교회]]의 전승에 구속받지 않았다. 칼뱅의 가르침을 중요시하는 [[예장통합]]에서도 '[[마태복음]]에서 나타난 구원 얻는 믿음은 행위가 수반되는 온전한 믿음으로 나타난 행위 지향적 구원론이며, 이는 [[예수]] 전승과 구약 예언의 성취의 관점에서 언약신앙의 전승을 이어받은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행위 지향적 구원. 2017.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오미영.] 반대로, [[예장대신]]에서는 칼뱅의 구원론의 요지는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예정)에 의한 결정이며, 그렇다고 행위가 신자의 구원에 있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고, 그 삶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열매를 맺은 신자는 이제 그 택함과 믿음에 합당한 결실로 행위를 보여야한다'고 해석했다.[* 칼빈의 구원론적 관점에서 본 예정과 행위의 관계. 2016. 12.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동] [[예일대학교]] 신학박사인 진 아웃카(Gene Outka)는 "구원자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과 똑같이 우리가 그렇게 '구원론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지고지순하면서도 극진한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는 성자 예수이지, 인간인 우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계성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탐구 –아웃카, 포우스트, 몰트만을 중심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 2016. 3, 이창호, 268p] [[튀빙겐 대학교]] 조직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하나님만이 세계와 함께, 세계를 위하여 고난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된 인간도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한다'면서 인간과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과 구원받은 인간의 하나님의 고난에의 동참을 결부시키는 주장을 하였다.[* 동일 논문 273p]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