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성시 (문단 편집) == 여담 == 원래 경기도 소속 도시였던지라 분단 이후에도 흔히 떠올리는 "북한 억양"([[서북 방언]], 일명 '평안도 사투리')[* 하지만 탈북민의 말투는 80% 가량은 함경도 사투리, 학술적으로는 [[동북 방언]]인데 이런 말투와 차이가 심하다. '북한말'이라는 인식이 아주 낮다. 하필 '아이 하니?', '~슴다'처럼 이 말투를 쓰던 [[조선족]]이 매체를 타고 유명해지면서 심지어 함경북도 출신 탈북민 [[박유성]] 씨의 경우 북한말을 해보라는 연극영화과 면접에서 고향 말투를 쓰니 면접관이 왜 조선족 말투를 쓰냐고 하던 참사가 있을 정도다.]과는 다른 [[경기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이다. 개성 출신으로 [[2017년]] [[판문점]] [[귀순]]한 [[오청성]] 군이 방송에서 쓰는 말투를 보면 그냥 경기도 청년이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워낙 서울말이랑 비슷해서 귀순 후 딱히 말투 교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북중국경을 통해 탈북한 한 개성 출신 탈북자는 개성 지역 말투가 남한 말투와 별 차이가 없어서 중국에서 남한 사람으로 위장하고 머무를 수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이 운영되던 당시 출입증을 내고 공단내로 배송하던 택배, 퀵 기사들이 전하길 "이보라우"식의 북한 사투리를 예상했지만 거의 서울억양을 구사하는 북한 근로자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개성 출신 탈북자가 말하길 개성 출신은 아나운서가 절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개성 사람들이 남한 억양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평안도, 함경도와 다른 중부 방언의 억양을 사용하는 [[통천군]] 출신[*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과 같은 군 출신이라는 뜻이다. 노동자를 '뇌동자' 정도로 말하는 사투리는 있었다.] [[리춘히]]가 매우 유명한 아나운서가 되었고, 북한의 공용어인 문화어 자체도 서울말의 영향이 강한 언어이기에 언어적 측면에서 아나운서가 되기는 어렵지 않아 대한민국 정부가 수년 간 실효 통치했다는 등의 정치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평양 출신 선생이 개성의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 선생과 학생들이 서로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 이후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따른 봉쇄 사실이 유일하게 대외 매체에 공개된 지역이다. 봉쇄가 장기화되자 북한 권력 2인자 최룡해가 급파되는 등, 개성시 내 생활고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런 봉쇄는 드문 일은 아니며, 11월만 해도 북중 국경의 [[혜산]], [[라선]], [[자강도]][* 아예 도 단위의 봉쇄가 있었다는 것이다.]가 봉쇄되고 [[남포시|남포]], [[평양]]까지 봉쇄된 적이 있다고 한다. [[https://www.chosun.com/politics/north_korea/2020/11/28/WVGL2R4D3FHRJASR2ZPCM56H5I/|#]] 특히 혜산은 중국 전파로 휴대전화를 이용한 연락이 가능하며 사람 모습까지 찍히는 지역이라 11월 1~2일부터 20일 동안 봉쇄해서 주민들이 아우성이었다는 소식을 복수의 매체에서 찾을 수 있다.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통일부]]와 [[경기도]], [[서울특별시]] 그리고 [[강원도]]가 '''개성만월대''' 남북공동 평창특별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 [[김영옥(배우)#s-4|할미넴]]으로 유명한 배우 [[김영옥(배우)|김영옥]]은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했을 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북한의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1948년)의 상황은 철원 등 현재의 강원도 전방지역이 38선 이북의 북한 지배하에 있었고, 개성이 38선 이남으로 대한민국의 실효지배 영토였기 때문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6.25 전쟁이 났을 때 김영옥의 나이는 14살이었다고 이야기도 했는데[* 실제 세는 나이는 13살, 만 나이는 12살이었다.]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불과 2년만에 다시는 개성을 갈 수 없게 된 셈이다.[[https://youtu.be/LwLN9WWtvSw|#]] [[개성 왕씨]], [[내(성씨)|개성 내씨]], [[해풍 김씨]], [[덕수 이씨]] 등이 개성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개성 지방에서 발행되는 신문으로 [[고려시보]]가 있었고, 황해도까지 보급되었다. 발행 기간은 1933~1941년, 1945~1950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