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신교/대한민국 (문단 편집) ==== 민주화 과정에서의 개신교 ==== 하지만 개신교계가 반공독재 정권에 편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세한 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교 좌파]] 참조. 실례로 [[6월 민주항쟁]] 당시 [[광주직할시]]에서는 [[6.29 선언]]이 있기까지 12일 동안 매일 150명에서 300명에 가까운 군중들이 광주서현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00446968?sid=102|#]] 민주화 운동에 관한 것으로는, 학문적으로 민중신학, [[해방신학]]처럼 기독교 신학을 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진보적인 신학들을 한국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실천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종교 간의 대화, 곧 다른 종교를 적대시할 대상이 아닌 같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대화하려는 노력을 했으며, 기독교 교파에 따른 전통들의 다양성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기독교의 공동 신조에 근거하여 존중하고 일치하려는 [[교회 일치 운동]]으로 교회 분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산업화가 진행된터라 노동운동 탄압 곧 노동자들의 권리가 자본가에 의해 짓밞혀지는 경우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산업선교가 실천되기도 하였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노동사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 장공 [[김재준]] 목사가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예배/미사를 집전하자, "이 자리는 전태일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닌, 기독교인들의 나태를 추모하는 자리다."라고 설교한 일, "도시산업선교회가 들어오면 도산한다"는 자본가들의 비방과 형사를 보내 감시하는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개신교인들에 의해 도시산업선교회를 결성하여 활동한 일이 그 흔적이다. 그러나 이런 진보적 개신교인 역시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그 예로 도시산업선교회는 오늘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 [[예장통합]] 교단 산하에 남아있는 영등포산업선교회가 그 명맥을 미약하게나마 이어오고 있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에만 하도 도시산업 선교회 등 친노동운동적인 개신교 단체가 존재했으나 정부의 탄압으로 소멸당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다. 다소 예외일 수 있겠으나, 70-80년대 빈민선교활동과 [[두레]] 공동체 운동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10월 유신]] 반대로 옥고를 치렀다가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연합 상임 이사가 된 [[김진홍(목사)|김진홍]] 목사 같은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