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화파 (문단 편집) == 3세대 개화파 == [[아관파천]] 등을 겪으면서 친일 세력은 몰락하고 친미, 친러 세력이 득세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종의 칭제와 [[대한제국]] 선포, [[광무개혁]]등이 일어나게 된다. 한편 급진 개화파 출신 박영효와 [[서재필]] 등은 [[독립협회]]를 구성해 갑신 정변에서 한층 발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내부적인 한계로 독립 협회 활동도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일본이 점점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내면서 개화파들의 행보들도 엇갈려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독립 운동을 추진한 이들]][* 급진 개화파에는 [[이준(열사)|이준]], [[오세창]], [[권동진]], [[이동녕]], [[서재필]] 등을, 온건 개화파에는 [[이시영(정치인)|이시영]], [[이회영]], [[이상재]], [[김가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과 일본에 붙어 친일파가 되어버린 이들[* 급진 개화파에는 [[박영효]], [[신응희]], [[박중양]], [[이규완(1862)|이규완]], [[유혁로]], [[정난교]], '''[[고영희(1849)|고영희]]''', '''[[권중현]]''', '''[[송병준]]''', [[윤치호]] 등을 온건 개화파에는 [[김종한]], [[조희연(1856)|조희연]], [[장석주]], [[윤웅렬]](친일파인지 여부는 논란 있음), [[이두황]], [[이진호(1867)|이진호]], [[성기운]], '''[[조중응]]''', '''[[박제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로 나눌 수 있다. 개화파들은 대개 독립 운동가와 친일파로 나뉘었지만 중립 입장을 취한 [[이용직]], [[김윤식(조선)|김윤식]] 등도 있다. 이들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광무정부, 독립협회, 신민회 등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신간회 등 독립운동가, 또는 일본에 부역한 친일파로 활동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