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륭제 (문단 편집) ==== 말년의 혼미 ==== 노년에 접어든 재위 말년부터 통치의 대부분을 만주족 측근 [[니오후루 허션]]에게 맡겼는데, 이 허션은 대단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한 여러 일화들이 많은데, 임기응변이나 꾀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션은 건륭제가 50대에 접어든 시기에 벼슬을 시작하여, 20대에 이미 국무총리격인 의정대신[* 다만 명청시절에는 [[승상]]직을 폐지했기 때문에 의정대신이 국무총리와 1-1로 매치되지는 않는다.]에 올랐다. 워낙 승진이 빠르고 건륭제의 무차별적인 총애를 받아서 나중에는 건륭제의 [[동성애]] 연인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처음에는 건륭제의 기대를 만족시키며[* 허션은 타락한 권신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흑화되기 이전에는 허션만큼 부패한 관리나 탐관오리 등을 잘 때려잡고 건륭제를 대신하여 통치를 잘 한 신하도 없었다. 따라서 통치에 유능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권신으로서 국정을 농락한게 문제였지.] 신임을 받고 벼슬이 점점 올라갔다. 건륭제가 70대에 접어들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쇠약해지자, [[권신]] 노릇을 하며 국정을 농단하기 시작했다. 1786년 허션의 벼슬은 화전대학사[* 조선으로 치면 [[대제학]]정도가 되겠다.]와 군기대신(국방장관)을 겸직하여 병권을 쥐고, 실질적인 황제 노릇을 하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중신들을 모조리 몰아내거나 숙청하고 독재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허션은 건륭제 밑에서 24년간 출사했는데 이때부터는 국정에 흥미를 잃은 건륭제를 대신해 실질적인 황제노릇을 하며 가경제가 즉위하고 태상황으로 물러난 건륭제가 붕어할 때까지 13년간 조정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위에서 설명한 매카트니를 접대한 것도, 영국과의 통상을 불허하기로 실제 결정한 것도 모두 허션이었다. 매카트니는 중국에 다녀온 후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많은 중국인들이 허션을 제2황제라고 부른다"고 썼다.] 젊었을 때는 번뜩이던 재주를 가졌던 허션은 중년이 되자 흑화되어, 병권을 군기대신으로 재직하는 동안 태업을 했다. 정규군이었던 [[팔기군]]과 [[녹영(청나라)|녹영]]은 점점 녹슬고, 결과적으로 허션 재임전에 준가르부를 멸망시키고 서역을 평정했던 막강한 청나라군은 허션 재임 당시 발생한 [[백련교도의 난]]에 쩔쩔매면서 진압에 10년이 걸렸다. 허션은 매관매직[* 이 매관매직의 공범이 건륭제라는 이야기도 있다. 즉, 허션이 건륭제의 묵인하에서 뒷돈을 받고 벼슬을 팔고, 그 자금을 건륭제의 유흥이나 예술품 구입비용으로 썼다는 것이다.]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청나라판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다. 즉 관리가 징계를 받게 되었을 때, 돈을 내면 사면을 받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청백리들은 사소한 실수로 중형을 받고 처형되거나 파직되었는데, 탐관오리들은 돈을 내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러 선비들이 허션의 전횡을 비난하는 상소문을 건륭제에게 내었으나, 건륭제는 말년에 상소문을 볼만큼 정무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허션이 이를 보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역적으로 몰아 처단했다. 안 그래도 [[문자의 옥]] 탓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청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허션의 문제점을 알릴 경로가 차단되니 건륭제는 허션의 전횡을 알 수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허션은 건륭제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호가호위]]를 하며 엄청난 권력 및 축재를 할 수 있었다. 가경제 집권후 조사된 허션이 축재한 재산은 1100만냥이었는데, 이것은 황실 예산의 15년치였다고 한다. 게다가 국법을 어기고 몰래 서양과 교역을 주선하여 뒷돈으로 챙긴 엄청난 액수의 영국, 프랑스의 금은화, [[회중시계]]나, [[벽시계]]와 같은 신기한 서양 물품 수백점, 여기에 600명이 넘는 첩도 거느렸다고 한다. 건륭제 말기 청나라 1년 예산이 4000만냥정도였으니, 1년 정부예산의 25%를 개인재산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중 상당수는 건륭제가 허션에게 선물로 준 것도 있다니, 진짜 애인설이 그럴듯 하기도 하다.[* 또는 허션이 건륭제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는데,가경제가 건륭제의 실책을 모두 허션에게 뒤집어 씌우고, 건륭제의 비자금을 허션의 개인적인 부정축재로 몰아 처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근거는 이렇게 몰수된 재산이 국고가 아닌 가경제의 [[내탕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션은 권력이동기에 처신을 제대로 못해 죽은 것이니, 아주 무고한 죽음은 아니다.] 허션은 건륭제가 수렴청정하던 [[가경제]]가 재위기간에도 자리를 유지하다가, 태상황 건륭제가 붕어하자 실권을 잡은 [[가경제]]에게 숙청된다. 가경제는 이런 허션을 [[능지형]]으로 다스리려고 했으나, 허션의 며느리였던 이복누이 고륜화효공주가 간곡히 부탁해 자살형으로 수위를 낮추었다. 하지만 허션이 20년간 타락시킨 청나라 관료조직 및 군대는 이후 청나라가 서양세력에게 얻어터치는 원인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