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만족 (문단 편집) === [[독일인]]? === [[파일:German_Germanic.png]] [* 사소한 오류로, 오른쪽 그림에 아일랜드에 영어가 안 칠해져 있다. [[아일랜드어]]라는 토착 언어가 국어로 쓰이기는 하지만 서쪽 일부에만 한정되고, 대다수의 지도에서는 보통 동부에는 아일랜드어가 사용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정작 아일랜드어보다 화자 수가 훨씬 적은 [[맨어]]를 쓰는 [[맨 섬]]은 영어 사용권으로 칠해졌다. 한편 스코틀랜드 남동부의 진한 주황색은 [[스코트어]]다.] 독일인은 게르만족의 일부일 뿐이지, 독일인이 게르만족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German'이라는 영어 표기 때문에 게르만족을 '독일 민족'과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로는 독일(German)과 구분하여 게르만 족을 German'''ic'''이라 부른다. 물론 [[이탈리아어]]와 [[라틴어]]에서 독일을 [[게르마니아|Germania]]라고 부르니 Germany라는 영어 표현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독일어]]와 [[프랑스어]]에서 독일을 부르는 명칭인 Deutschland와 Allemagne은 영어 이름 Germany보다는 게르만과 더 명확하게 구분된다. 영어 표현과는 별개로 "게르만족은 원래 현대의 독일 지역에서 살았으니 독일이 게르만족을 대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서술했듯 원래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에서 기원하였다. 굳이 출신 지역으로 따지자면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이 원조 게르만족에 가깝다는 것이다.[* [[덴마크어]]에서 독일을 가리키는 단어가 '튀스크란'(tyskland)인데, 유틀란트 반도 최북단을 가리키는 '튀'(thy)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곳에 살던 부족들이 남하하여 지금의 독일을 세웠다는 의미.][* 굳이 따지자면 유틀란트 반도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남부]]가 독일 땅이긴 한데 독일 전체 면적의 5% 수준이다(...) 인구도 [[함부르크]]까지 포함해야 독일 인구의 6%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독일인들의 경우 게르만족 혈통만 있는 게 아니다. 게르만족 남하 이전에는 [[켈트족]]과 [[이란인|이란족]]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로마 제국이 팽창함에 따라 현 독일 중남부 지역은 로마의 [[라틴족]]도 많이 진출하였다. 또한 [[동방식민운동]]으로 원래 서슬라브족, 발트족이 살던 엘베강 동쪽이 독일화됨에 따라 서슬라브족이나 발트족 혈통도 있다. 사실 독일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로마군단에 맞선 토이부르크 숲의 게르만족에서 찾게 된 것은 근대부터의 일이고, 근세까지의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스스로를 '''로마'''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먼 변방의 촌놈이라 여겨지던 프로이센이 폭풍성장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후예인 [[소독일주의|오스트리아 제국을 배제한 독일통일]]을 달성하고 적극적인 독일민족주의를 밀게 되면서 정체성이 새로 형성된 것이다. [* 그러나 중세 시절부터 독일인들은 그들만의 확고한 민족 정체성이 있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9세기 프랑크 왕국이 분열한 후 프랑스는 프랑크 왕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지만, 독일인들은 카롤링거 가문의 대가 끊기자마자 918년 국명을 동프랑크 왕국에서 '''[[독일 왕국]]'''(Regnum Teutonicum, Kingdom of Germany)으로 바꾸었다. 이후 독일 왕국이 확장되는 형식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들어섰으나 근본적으로 게르만족 고유의 전통과 관습을 중시했다. 몇몇 게르만의 풍습을 로마에 맞게 바꾸기도 했지만 주요한 관습들은 게르만족의 전통을 따랐다. [[살리카법]]은 물론이거니와 황제 선출 방식 또한 고대 로마 제국과 달리 게르만족이 부족 사회 시절 족장을 뽑던 방식을 계승 발전시켜 신성 로마 제국만의 [[선제후]] 제도를 완성했다. 제국의 근간이 되는 군사 제도 역시 고대 로마 제국의 레기온과는 완전히 다른 게르만족 부족 전통에서 발전된 종사제에 기반한 봉건 질서에 따른 군사 제도를 확립했다. 신성 로마 제국은 표면적으로 세계 제국을 표방했고, 독일 말고도 이탈리아 왕국, 보헤미아 왕국 등을 제후국으로 두었지만, 이탈리아인 등은 사실상 이등 국민에 해당했고, 독일인이 신성 로마 제국의 일등 국민이었다. 일단 황제는 독일 귀족만 될 수 있었고, 황제를 뽑는 선제후 역시 독일 귀족들만 될 수 있었다. 처음에 황제를 뽑던 선제후는 독일 5대 부족 공국 공작들이었는데, 나중에는 독일의 공국들이 쪼개졌지만 처음에 황제를 뽑았던 5대 부족 공국은 사실상 거의 독일의 전 부족을 망라했다. 반면 이탈리아인은 신성 로마 제국의 신민임에도 황제 선출에 관여할 수 없었다. 보헤미아인들은 나중에 선제후 투표권을 얻었지만, 보헤미아 왕국이 독일 왕국 아래 제후국이 되는 형태였다. 즉 보헤미아왕은 독일왕의 봉신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철저히 독일인들에 의해 굴러갔고, 15세기에는 아예 공식 국명을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으로 확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